조선시대 부민고소금지법과 노동당 신소과

0:00 / 0:00

북녘 동포 여러분, 여러분들 중에서 노동당 신소과에 가서 신소를 해보았거나 친척이나 주변에 아는 분이 신소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보면 볼수록 이씨왕조시대와 너무도 닮은 현대판 김씨왕조 북한, 오늘은 이씨왕조시대에 존재했던 부민고소금지법과 꼭 같은 북한의 노동당 신소과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부민고소금지법(部民告訴禁止法)은 백성들이나 노비들이 봉건관료을 신소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법을 말합니다. 이씨조선왕조가 세워지고 30년이 되어오던 1422년에 제4대왕인 세종대왕시대에 예조판서였던 허조 등의 건의에 따라 제정된 부민고소금지법은 [경국대전] 형전 소원조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나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정치를 잘못하면 국민들에 의해 탄핵되어 감옥에도 갈 수 있지만 북한은 김정은에 대해 말 한마디 잘못하여도 하룻밤 사이에 온 가족이 정치범관리소로 끌려가야 한다는 사실은 북한주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노동당에 소속된 신소과는 북한의 사회주의헌법 제5장 제69조 ‘공민은 신소와 청원을 할 수 있다. 국가는 신소와 청원을 법이 정한데 따라 공정하게 심의처리하도록 한다’는 규정에 따라 설치한 기구입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신소과에 가서 노동당 간부나 인민위원회 간부, 검찰소 검사 등 간부들을 신소하게 되면 그 후과가 너무도 무서운 결과가 빚어지게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마음대로 신소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죠.

제가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만청산연구원에서 근무할 당시에 제가 아는 친구가 자기가 다니는 직장 당비서가 충성의 외화벌이 자금을 횡령한 사실을 신소하였다가 오히려 보복당하여 양강도 백암군 종합농장에 추방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고등중학교 동창생의 부인이 도예술단 배우였는데 도당선전부 간부가 권력을 이용해 미모가 아름다웠던 부인을 강간한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친구가 중앙당 신소과에 그 사실을 신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도당간부는 그 친구가 생계를 위해 밀수를 했던 것을 죄형으로 만들어 검사와 짜고 그를 징역 보냈습니다. 그 친구는 함흥에 있는 9호교화소에 징역가서 1년 만에 교화소에 퍼진 콜레라에 걸려 사망하였습니다.

남편이 사망한 후에 그 부인은 예술단을 담당한 도당선전부 간부의 성적인 요구가 더 심해지자 결국 탈북을 결심하고 압록강을 도강하다가 잡혀 북한으로 북송되어 집결소에서 강제노동을 하였고 후에는 산간벽지로 추방당했습니다.

이를 보면서 사람들은 도당 간부를 욕할 대신 신소를 했던 저의 친구를 비난하면서 “간부를 신소했다가 오히려 목숨만 잃고 집안이 망했다”. “간부를 신고하자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이같이 신소를 했다가 잘못된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았을 거라고 봅니다.

이씨조선시대에도 양반이 같은 양반을 고소하는 것은 허용되었으나 백성이나 노비가 양반이나 자기의 주인을 고소하지 못하게 법으로 규정하였습니다. 백성들 끼리 서로 고소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양반을 고소하는 것은 법도에 어긋난다는 것이죠. 결국 북한에도 신소는 법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서민이 양반을 신소하면 무서운 보복이 뒤따르기에 누구나 당해도 참고 사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도당책임비서나 도인민위원장은 그 지역 간부가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중앙당이나 내각에서 임명해 내려보냅니다. 그리고 시당 책임비서나 군당책임비서, 인민위원회 위원장들도 그 지역 출신이 아닌 다른 지역 간부를 내려보내죠.

조선시대에도 봉건중앙정부에서 도에는 관찰사를, 군에는 군수를 내려보냈습니다. 전국의 8도마다 그 도의 최고 봉건관료인 도관찰사를 임명해서 내려보냈고 80여개의 군과 170여개의 현들에 군수와 현감들을 파견했습니다.

이씨왕조의 봉건중앙정부는 지방에 파견한 관료들의 권력행사에 힘을 실어주고 무고죄 등을 미리 억제한다는 이유로 부민고소금지법을 제정했던 것입니다.

이씨왕조시대 조선후기 지금의 도당책임비서 격인 평안도 관찰사였던 이서구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합니다. 어느 날 이서구는 재상을 지낸 한 양반과 집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소란을 피운 자기 집 노비를 죽인 일이 있습니다.

한창 담소를 하는데 밖에서 자기의 주인인 이서구를 욕하는 소리가 났는데 이를 듣고 주인 이서구는 집안의 노비 우두머리인 수노(首奴)에게 사연을 묻고는 소란을 피운 노비를 수구문 밖으로 끌고 가서 때려죽이라고 말했죠.

해질 무렵이 되자, 수노가 돌아와 “때려 죽였습니다”라고 보고하자 주인 이서구는 “그는 죄를 지었으니 죽어 마땅하지만, 우리 집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이니 장례 절차는 후히 해줘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관청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아전들에게 이서구는 “이자는 우리 집 노비인데 윤리를 어지럽혔고 관청에 신고하면 입에 담기가 몹시 수치스럽기에 죽인 것”이라고 말하자 찾아온 아전들이 돌아갔습니다.

당시 사건이 기록된 고서 ‘금계팔담’에는 ‘이서구는 나이 젊은 명사로서 일처리가 엄정하면서도 번거롭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으니, 이 어찌 원대한 그릇이 아니겠는가’며 높이 평가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당시 주인이 노비를 죽이고도 위세를 부리면서 당당하게 관청에 신고할 수 있는데도 그런 번거로움이 싫어서 조용히 일을 처리한다며 사람을 죽였는데 이를 아주 장한 일로 기록한 것만 봐도 당대 사회가 얼마나 반인륜적인 사회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씨조선시대 법률에는 주인이 자기의 노비를 때려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때려서 죽였다 하더라도 사전에 관청에 폭행이유를 알리면 죽은 경우에도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죽이고도 이를 질병으로 앓다가 죽었다고 주장하면 벌을 면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노비가 주인을 때리면 교수형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노비인 머슴이나 종들은 자기 주인은 물론이고 그 집안의 어린 애들에게도 깍듯이 인사를 하면서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것이죠.

이렇게 관청 관료들이나 주인들의 우월적 권리가 형법적으로 보장되었기 때문에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노비들은 물건처럼 취급되어 마소처럼 노동을 시키고 아무리 가혹하게 수탈을 해도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의 절대다수의 인민들은 현대판 김씨왕조의 노비의 삶을 살고 있기에 간부들이 잘못해도 마음대로 신고할 수 없으며 신고했다가는 오히려 복수를 당해 징역살이를 하거나 정치범관리소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높은 간부가 아니어도 직장의 당비서나 지배인의 잘못을 신고하였다고 하여 직장에서 해고되는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 혹은 경제범죄를 만들어내 감옥에 보내고 심지어 정치범관리소에 끌려가서 목숨을 잃는 현대판 봉건왕조국가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반동적이고 반인륜적인 국가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인간의 존엄이 가장 참혹하게 무시당하고 인민들이 노예의 삶을 강요당하는 북한인권을 문제삼고 국제회의를 하고 있으며 북한의 김정은 독재정권의 붕괴만이 북한주민들을 살리는 길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백두산줄기나 625참전용사(조국해방전쟁참가자)가 아니어서, 또 토대가 좋지 않아서 노동자, 농민, 광부나 탄부로 살아가야 하는 현대판 노예인 북한의 절대다수 인민들의 삶은 지금의 현대판 봉건왕조국가인 김씨왕조가 사라지기 전에는 지옥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씨왕조시대의 부민고소금지법처럼 살인독재자 김정은과 고위특권층들, 이들의 밑에서 아부아첨을 하면서 살아가는 간부들의 잘못을 보고도 참아야 하고 올바른 소리를 했다고 하여 죽어야 하는 북한의 현실을 생각하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