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한글창제와 북한의 문맹퇴치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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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동포 여러분, 현재 지구상에는 약 70억 명의 인류가 살고 있으며 사용하는 언어는 그 종류가 7천여 개를 넘는다고 합니다. 그 중에 5천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는 한국어를 포함하여 25개에 불과합니다.

최근 세계언어학연구소 소속의 민족어연구팀인 에스놀로그(Ethnologue)는 한국어가 세계 언어사용순위 15위이며 남북한을 포괄하는 한반도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많은 나라에서도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조선시대 제 4대 왕인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일과 창제자, 그리고 창제의 기본원리가 알려져 있는 문자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여전히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업적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김씨일가를 우리 민족사 5천여 년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가문’이라며 우상화 선전을 극대화하는 북한당국의 선전선동 전략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오늘은 세종대왕에 의해 창시된 한글에 대해, 그리고 세종대왕의 업적을 숨긴 채 김일성의 지시로 북한에서 했던 문맹퇴치운동의 숨겨진 흑막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세종실록 41권, 세종 10년인 1428년 9월 27일 기사를 보면 형조 판부사(判府事) 허조(許稠)가 세종대왕에게 ‘진주(晉州) 사람 김화(金禾)는 제 아비를 죽였사오니, 율에 의하여 능지처참(凌遲處斬)하소서’라고 아뢰자 왕이 ‘계집이 남편을 죽이고, 종이 주인을 죽이는 것은 혹 있는 일이지만, 이제 아비를 죽이는 자가 있으니, 이는 반드시 내가 덕(德)이 없는 탓이로다’라고 탄식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상소를 본 세종대왕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일은 충효를 모르는 백성의 어리석음에서 일어난 일이다’ 라고 탄식하며 조선과 중국의 효자, 충신, 열녀를 뽑아 그 행적을 그림으로 남긴 삼강행실도를 편찬하라고 지시하죠. 그러나 그림만 보고서는 당시 백성들이 충효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쉽게 익힐 수 있는 글자를 창제할 결심을 하게 됩니다.

당시 우리 조상들은 우리 글자가 없다 보니 우리말을 이두한자로 표기하였는데 양반들 외에 절대다수의 백성들은 한자를 보고 읽을 수 없었습니다.

세종대왕은 당시의 법전인 경국대전과 농사법 도서인 농사직설 등을 일반 백성들도 마음대로 보고 읽으며 쓰기 쉬운 글자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조선시대 가장 두뇌가 우수한 학자들이 모인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지금 한글이라고 불리는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종대왕은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등 소리를 발성하는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 따 자음을 만들었고 태양, 땅, 사람 등 자연의 조화를 본 따 모음을 만들어 마침내 1446년 음력 9월 10일 훈민정음이 반포되죠.

‘백성들이 자기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으니 스물여덟자의 자음과 모음으로 우리글을 만들어 모든 백성들이 쉽게 익히어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이것이 당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유에 대해 했던 말입니다.

10년 넘게 밤낮없이 한글창제를 위해 노력하다가 눈까지 어두워진 세종대왕의 업적에 대해 역사학자들과 언어학자들은 한글을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낳은 결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한 또 하나의 이유로 삼국시대 이후에 도입된 한자어의 발음이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중국 한자의 발음과 너무도 차이나게 되면서 원음과 거의 유사하게 하기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의 뜻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세계의 저명한 국제기구와 과학연구기관 등에 종사하는 학자들은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극찬하고 있습니다. 언어학 연구에서 세계 최고인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언어학대학에서 세계의 모든 문자를 놓고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을 기준으로 한 순위를 결정했는데 우리나라 한글이 당당히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지구상에 현재 말은 있으나 글이 없는 언어가 수천여 개가 된다고 합니다. 글자가 없이 말만 있는 이런 소수민족의 언어에 어떤 글자를 적용할 수 있을지 관심사죠. 그래서 유네스코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말은 있으나 글자가 없는 언어 2900여 종에 가장 적합한 문자를 찾는 연구를 진행했는데, 최고의 평가를 받은 것 역시 한글이었습니다.

미국의 작가 펄벅은 "한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라며 세종대왕을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말했으며 영국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은 "한글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역사다큐멘터리 작가 존맨도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말했죠.

유엔 산하의 유네스코(UNESCO)에서 제정한 상 중에는 세종대왕상(世宗大王-賞)이 있습니다. 이 상의 정확한 명칭은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입니다.

1989년에 제정돼 1990년부터 지난 30여 년간 인도, 튀니지, 중국, 페루 등 세계 곳곳의 단체에 문맹 퇴치의 공로로 세종대왕상이 수여됐죠.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메달 그리고 2만 달러의 상금이 지급됩니다.

문맹퇴치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북한에서 김일성에 의해 진행되었던 문맹퇴치운동에 대해 잠깐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해방 직후 북한에는 약 250만여 명의 문맹자가 있었습니다. 당시 북한인구가 900만여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3명 중에 1명은 문맹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은 1946년 11월에 진행된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결정 제113호에서 처음으로 문맹퇴치운동을 벌릴 데 대해 강조했고 1947년 4월 북조선 인민위원회 결정 제25호, 1947년 11월 북조선 인민위원회 결정 제33호 등에서 문맹퇴치를 위한 성인교육을 국가적 사업으로 광범히 전개할 데 대한 과업을 제시했죠.

북한의 문맹퇴치운동은 어디까지나 김일성이 북한주민들에게 글을 배워주어 그들이 노동당이 제시하는 당정책을 소개하는 신문과 김일성의 노작을 읽고 사상적 노예로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맹퇴치운동을 벌리면서 북한당국이 내밀었던 구호와 정책이 ‘건국사상총동원운동’과 ‘리계산운동’입니다. 1946년 12월 1일부터 1947년 3월 31일까지 북한의 농촌들에서 진행된 ‘동기농촌문맹퇴치기간’에 ‘농촌민주선전실’들에서 ‘동기농촌문맹퇴치반’이 운영되었고 전국의 농촌에 조직된 2,780개의 문맹퇴치반에서 매일 2시간씩 한글교육이 진행되었습니다.

북한당국은 한글을 배워주면서 선동원들을 동원해 대상의 준비정도에 맞는 통속적인 각종 제강을 가지고 강연회, 좌담회, 토론회의 형식으로 새로운 건국사상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해설선전사업을 적극 벌렸던 것입니다.

‘리계산운동’은 해방 전에 머슴살이를 하던 강원도 산골에 사는 리계산이라는 여성이 1947년 8월 김일성을 접견한 후에 한글을 배워 김일성에게 편지를 쓴 것을 계기로 하여 북한에서 전국적으로 독려했던 문맹퇴치운동입니다.

이러한 문맹퇴치운동 결과 북한주민들은 북한의 선전매체인 ‘노동신문’을 비롯해 김일성과 김정일의 선집, 노작,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 등 김씨 우상화 선전매체들을 읽고 세뇌되었던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의 우수성보다 현대판 봉건왕조독재체제의 영원한 계승을 위해 문맹퇴치운동을 통해 북한주민들을 세뇌시킨 김일성의 뒤를 이어 김정일은 사상교육, 인간개조 등 정신무장에 더 큰 관심을 가졌고 김정은도 정치사상교양을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한한 우주공간과 광활한 지구촌에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는 폐쇄적인 북한에도 흘러들어가 김씨왕조의 붕괴를 촉진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이예진,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