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이모의 미국망명

0:00 / 0:00

북녘 동포 여러분,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를 시작으로 급격히 많아진 탈북민들이 한국과 중국, 영국, 미국, 캐나다 등 전 세계 수십여 개국에 망명하여 지금은 그 수가 약 20여 만명을 넘습니다. 그중 현재 한국에 온 탈북민은 3만 4천여 명이고 영국에는 600여명, 미국에는 210여 명, 그리고 카나다(캐나다)와 도이칠랜드(독일), 화란(네덜란드), 벨지크(벨기에), 등 수십여 개국에도 수명에서 수백여 명에 달하는 탈북민들이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탈북민들이 살고 있는 국가는 중국인데 전문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약 15만 여명의 탈북여성들이 중국 한족이나 조선족과 결혼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김정은의 이모인 고영숙과 이모부인 이강이 미국에 망명하여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김정은도 탈북자 가족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은 김정은 이모가족의 탈북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김정은의 친엄마인 고영희보다 5살 아래인 고영숙은 40살이 되던 1998년에 남편인 이강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당시 고영희는 유선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이고 김일성이 사망되고 은둔생활을 이어가던 김정일에게는 북한체제를 고수하느냐 아니면 인민의 심판을 받을 것인가 하는, 매우 중대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고영숙은 김정일이 소개해준 남편과 결혼식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김정일이 직접 ‘처제의 신랑감은 이 남자’라며 짝을 지어줬다는 것이 언론 기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이쯤 되면 김정은의 이모부는 김정일의 신임을 받았던 사람임에도 미국으로 망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왜 김정은의 이모인 고영숙과 이모부인 이강 부부가 미국으로 망명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로는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가 유선암으로 진단받고 치료를 했지만 재발하면서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망하기 1년 전인 2003년에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건강이 악화되었고 프랑스에서 유선암 과 뇌 관련 치료를 받았는데 언니가 사망하게 되면 저들의 처지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언니 고영희와 일본에서 태어나 6살 나던 1962년에 가족들과 함께 북한에 귀국한 김정은의 이모 고영숙은 언니가 김정일의 눈에 들어 정식 부인이 아닌 이성적인 동거대상으로 김일성의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초대소들에서 첩과 같은 존재로 살다가 병까지 걸리자 불만이 없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김정일에 의해 이미 버림을 받은 성혜림과 본처 김영숙의 삶을 보면서 언니의 사망으로 김정일의 새 부인이 생기면 권력사투로 당해야 할 미래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다음으로 이들의 망명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90년대는 김정일에게 가장 큰 심리적 타격을 주었던 년대였습니다. 구소련을 비롯한 동유럽국가들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로 복귀하면서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 나라들에 의탁해왔던 북한으로서는 큰 난관에 봉착한 셈이었습니다. 거기에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고 연이어 들이닥친 자연재해로 농사까지 망치면서 수백만 명이 굶어죽은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체제는 붕괴가 코앞에 닥쳐온 듯 싶었습니다.

당시 북한붕괴를 내다본 많은 사람들이 망명을 하였는데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당중앙위원회 국제비서였던 황장엽 선생이 1997년에 한국으로 망명했고 같은 해 애급(이집트) 대사로 있던 장승길 대사도 미국으로 망명을 했습니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면서 이 나라들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많은 북한 유학생들이 러시아와 독일, 한국 등으로 망명하고 고위간부들과 외교관들까지 망명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도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게 되었고 결국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로 김정은의 이모 부부가 탈북하게 된 이유는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던 김정은 형제들의 뒷바라지 등 해외생활을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현재 많은 탈북민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도강하여 중국과 동남아시아, 몽골, 소련 등을 거쳐 탈북하지만 김정은의 이모는 스위스 주재 북한 대사관 성원으로 위장해 당당하게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기에 망명을 결심만 하면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북한에서 김정일을 제거하려고 시도했던 군부 구테타사건인 6군단사건,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의 투서사건, 러시아 프룬제 군사아카데미 유학생 사건, 노동자들을 탱크로 짓뭉겨 살해한 송림사건 등 북한 김정일 체제는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점점 붕괴를 눈앞에 둔 듯 했습니다.

거리에는 꽃제비들이 득실했고 굶어죽은 사람들의 시신은 길거리에 방치되었으며 먹을 것을 얻으려고 떠돌이에 나선 사람들로 열차는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거주와 출근을 통제하던 북한의 감시시스템도 허물어졌고 군부대들에서도 탈영하는 군인들이 많아졌습니다.

김정은의 이모 고영숙과 이모부 이강은 김정은이 출생한 이후로 1980년대 중반부터 망명한 1998년까지 십여 년 넘게 스위스에서 대사관 성원으로 해외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1996년 스위스 베른에 유학을 온 김정은 형제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스위스에 머물다가 결국 망명했던 것입니다.

김정은의 이모 고영숙과 이모부 이강은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이유로 스위스로 나온 기회에 망명하지 않으면 더 이상 출로가 없다고 생각하고 1998년에 스위스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 망명의사를 은밀히 타진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김정일과 그 가족의 사생활을 잘 알고 있는 김정은 이모 부부를 망명시키면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기에 이들 가족을 1998년 5월에 극비밀리에 미국으로 망명시켰습니다.

김정은의 이모인 고영숙 가족이 미국으로 망명하자 김정은의 외삼촌 고동훈 가족도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가 사망한 2004년 이전인 2000년대 초에 유럽의 한 국가로 망명했습니다. 자기의 여동생과 오빠가 망명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는 병상에 누워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자기를 버리고 망명한 형제들이 야속해 “혼자 살겠다고 나를 배신하고 도망치다니 반드시 찾아내 꼭 갚아주겠다”고 말했던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미국에 망명해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정은의 이모 고영숙은 얼굴 성형수술로 자신을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하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정부도 이들이 북한당국의 테러로 희생되지 않도록 보호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해외 언론매체들에 따르면 미국으로 망명한 김정은의 이모 부부는 언니인 고영희를 의료선진국인 미국에 데려와 치료하려고 시도했던 사실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당시 북한이 붕괴되면 인민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김정일도 망명시키려고 미국정부에 건의했던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이들이 망명한 이듬해인 1999년에 대한민국의 안기부 요원들이 미국을 방문하였는데 미국 CIA가 주선해 김정은의 이모부인 이강과 면담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당시 이강은 안기부 요원에게 “한국정부가 원한다면 김정일을 공작차원에서 해외망명을 유도하고 그를 북한으로부터 격리시킨 다음에 남북통일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원하면 자기가 적극 협력 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오늘 방송에서 알 수 있듯이 김정은도 이모 고영숙과 그 가족, 외삼촌 고동훈과 그 가족이 모두 망명하여 미국과 서방세계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