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수도 시민증에 평양관리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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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외부세계에선 흔히 북한을 '평양공화국'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수도인 평양 시민과 지방의 주민들은 생활방식이나 당국으로 받는 혜택에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지방과 수도를 구별하여 따로 수도시민증이라는 걸 발급하는 나라는 아마 세계에서도 북한이 유일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거주의 이동이 통제된 북한에서 평양 거주자들에게만 특별히 발급되는 평양시민증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옛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의 면적은 약 1,260㎢로 북한 전체 면적의 약 1%밖에 되지 않습니다. 2008년의 통계에 따르면 평양시 인구는 약 325만 5천여 명이었으나 2010년 행정구역 축소로 현재는 약 260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북한은 평양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1997년부터 특별히 '시민증'을 발급하였는데 2천 년대 들어 평양의 일부 행정구역을 지방으로 넘긴 것도 어찌 보면 평양시민들을 먹여 살려야 할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덜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북한당국은 1998년 11월 26일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286호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도 평양시 관리법'을 채택하였습니다. 평양시 관리법 제4장 29조에서는 평양시 거주 자격에 대해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에서 북한은 지방과 평양시 주변구역에서 중심구역에 거주하려는 공민은 해당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같은 평양시민이라 할지라도 주변구역과 중심구역으로 엄격히 구분해 차별화했습니다.

또 30조에서는 평양시민은 국가의 정책관철에서 모범이 되어 수도시민으로서의 영예를 지키며 평양시민이 국가의 법질서를 엄중하게 어긴 경우에는 평양시민증을 회수한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평양시에서 지방으로 추방한다는 의미입니다.

2000년 7월 24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정령 제1676호로 발표된 '조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등록법' 제7조에는 평양시민증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임을 확인하는 증서로 평양시 거주 17살 이상 공민에게 수여한다고 지적되어 있습니다.

출신성분이 사람의 몸값을 규정짓는 북한에서 평양에서 사는 것은 하나의 큰 특권이라는 의미입니다. 지방은 배급이 끊겨도 평양만은 배급이 유지되는 곳이 북한입니다. 사회주의 제도에서 모든 인민은 평등하다는 북한의 헌법은 거짓이었습니다.

북한 당국의 의도적 조작에 의해 평양시민과 지방의 주민들은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평양시민증'과 '평양관리법'까지 만든 것은 평양시 주민들과 지방주민들을 분리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평양관리법'에서 북한은 '국가계획기관과 해당 기관, 기업소, 단체는 평양시에 공급할 식량과 연료를 우선적으로 생산‧보장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규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수도폰드(예산)'라는 것을 따로 제정했습니다.

지방의 대부분 도로가 비포장도로이지만 평양은 모든 도로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있고 고층건물에도 난방화가 되어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습니다. 김씨 봉건세습 일가는 평양시를 지방과 갈라놓기 위해 갖은 수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생전에 김일성은 "평양시는 혁명의 수도인 만큼 당을 옹호하는 사람밖에 누구도 살 권리가 없습니다. 평양시에는 오직 당의 유일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되고 당 정책을 받들고 한마음 한 뜻으로 살며 일하는 사람들만 살 수 있습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평양관리법'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은 평양시를 현대적으로, 문화적으로 더 잘 꾸리는 것은 '공민의 애국심의 표현이며 영예로운 의무'라며 '평양시를 잘 꾸리기 위한 사업을 전국이 적극 지원하여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또 지방산업 공장에서 생산한 생활필수품을 우선적으로 평양시에 보내는 제도를 세우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김정일은 1980년대 후반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던 때에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과 같은 대외선전 지출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당시 김정일은 다른 나라에서 오는 손님들이 철저한 반공분자라 해도 평양을 한번 구경하면 사회주의를 동경하게 만들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일은 대외선전을 위해 평양에서 살고 있던 장애인들을 강제로 지방에 이주시키기도 하였습니다.

평양시 건설을 위해 지방에서 많은 노동자들을 동원시켰고 1980년대에 문수거리와 창광거리, 광복거리, 북새거리를 건설했습니다. 90년대에는 통일거리와 광복거리 2계단공사가 마감되었고 2천년대에 들어서도 만수대지구를 건설했습니다.

전력난이 극심했던 90년대에는 지방 도시들의 전력공급을 끊고 평양시에만 야간조명을 켜도록 해 북한의 어두운 실상을 숨기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평양의 빈부차가 커지자 시민들은 매 구역의 특성에 따라 이름보다 별명을 더 자주 사용했습니다.

예하면 중앙당간부들이 많이 살고 있는 중구역 창광동은 권력 촌, 재포(재일귀국동포)들이나 영화배우, 외교관들이 많이 사는 북새동과 서흥동을 부자촌,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 선교구역을 빈민촌이라고 부르는 실정이었습니다.

김정은이 집권한 후 평양과 지방의 빈부격차는 더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방에 대한 국가계획위원회의 재정지출은 거의 차단되었지만 평양에 대한 자금투입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습니다. 평양도 이젠 돈 많은 부자들의 세상으로 변했습니다.

60년대와 70년대에 지은 아파트들을 허물어 개인이나 외화벌이 기관들에서 새로 집을 지어 팔아먹는 형편입니다. 지방에서 고급 아파트 한 세대의 값이 25만 달러지만 평양시에서는 40만 달러가 있어야 이런 아파트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고려호텔과 양각도호텔, 해방산호텔, 청년호텔 등 평양시의 호텔들에서는 외국인들 외에도 북한 에서 돈 많은 간부들과 외교관들, 그들의 자식들까지 외국요리에 수영과 오락을 즐기면서 수도시민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금은 돈 없는 평양시민들은 지방으로 밀려나는 신세입니다. 돈 많은 지방의 부자들이 평양시민권을 사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는 꿈도 못 꾸었지만 지금은 돈이면 평양거주권을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평양시의 가난한 주민들 속에서 이제는 시민권이 최후의 비자금(비상자금)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서 자식들이 병이 나도 약 한 첩 쓸 수 없는 평양시민들은 지방의 돈 많은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팔고 있습니다.

지방의 부자들은 가난한 평양 주민들에게 10만 달러를 주고 시민권을 사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나니 백만 달러가 있으면 노력영웅도 공화국영웅도 될 수 있다는 말이 평양시민들 속에서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형편입니다.

김정일 사망 후 권력을 잡은 김정은은 정치사상적으로 순결하고 토대가 좋은 핵심계층으로 평양시민들만 평양시에 거주시킬 데 대해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2011년 12월부터 2012년 말까지 대대적인 주민검토와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같은 조치를 놓고 체제불안을 느낀 김정은이 평양시에 출신성분이 좋은 사람들만 채워 권력유지를 강화하려 했다는 분석이 북한의 지식인들 속에서도 많았습니다. 평양시민이 많아지는 것을 제한하기 위한 법적 조치들도 연이어 취해졌습니다.

지방 사람과 결혼을 하면 무조건 지방으로 거주지를 옮기도록 했고 더욱이 농촌출신과 사는 신랑이나 신부들은 '농촌연고자'라는 딱지를 붙여 매해마다 2차례씩 강제로 소환해 검열을 하는 제도를 매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번 평양시에서 밀려나는 주민들은 하나같이 힘없고 돈 없는 가난한 계층이었습니다. 이렇다 나니 평양과 지방의 극심한 차이는 물론이고 평양시민 들 속에서도 잘사는 계층과 못사는 계층 사이에 보이지 않는 증오 감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젠 평양의 부유층들은 고급아파트에 식모(가정부)와 가정교사까지 따로 고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김정은이 그토록 외치던 '사회주의 부귀영화'이고 겉과 속이 다른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입니다.

해당화관에서 한끼 식사에 50달러 이상을 탕진하는 특권층들은 배급이라는 말을 잊은 지 오랬습니다. 추운 날씨에 장마당에 나가서 하루하루 근근이 벌어 먹고 사는 지방의 가난한 백성들이 이들에게 과연 인간으로 보일지 의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지방인민들을 착취한 대가로 유지되는 게 북한의 수도 평양입니다. 하기에 평양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지방의 인민들을 착취하는 자들이라고 낙인을 찍어도 분명 지나친 비유는 아닐 것입니다.

평양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북한에서 큰 재산입니다. 그 속에서 배를 떵떵 두드리며 사는 큰 간부들은 흡혈귀에 지나지 않습니다. 김씨 일가가 만들어 낸 거대 도시 평양, 그곳에는 돈 많은 특권층들이 또 다른 세상을 엮어가며 큰 소리치며 살고 있습니다.

이제 북한의 지방 인민들도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 김씨 왕조가 만들어 낸 평양시민이라는 특권적 지위를 허물어 버리고 하루빨리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날이 와야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