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취미-여자프로권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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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동포 여러분, 김정일이 사망한 지도 벌써 9년이 되어옵니다. 김정일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인식은 아버지인 김일성을 능가한 독재자, 북한 경제를 파괴해 인민들의 삶을 더 열악하게 만든 최악의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독재자 김정일에게는 여자프로권투를 즐기는 특이한 취미가 있었습니다. 측근 간부들도 항상 성을 내는 표정을 하던 김정일이 여자프로권투만 보면 웃는 모습을 보면서 자주 여자권투경기를 초대소나 중앙당 내에 있는 연회장들에서 조직하곤 하였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해외에 파견된 대사관들에서는 충성경쟁차원으로 건강장수에 좋은 외국산 식자재들과 건강관련 도서, 비디어테이프 등이 김정일에게 증정되었는데 그중에는 ‘머드프로우먼복싱(Mud Pro Women`s Boxing)’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도 있었습니다.

머드프로우먼복싱은 감탕에서 진행하는 여자권투경기를 뜻합니다. 당시 김정일은 이 테이프를 보면서 폭소를 터트렸고 자주 이 테이프를 보았습니다. 김정일의 서기실 실장이었던 이명제는 테이프 장면이 아니라 중앙당 5과로 뽑힌 기쁨조 여자들로 이런 경기모습을 김정일에게 보여주기로 하였습니다.

김정일은 1980년 6차당대회에서 김일성의 유일한 후계자로 공식화되자 자기의 지반을 확장하고 측근들을 규합하기 위해 중앙당 청사 내에 있는 목란관 연회장과 초대소들에서 밤 파티를 자주 즐겼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어떤 때에는 하루건너 한번씩 진행된 밤 연회에는 만수대예술단과 피바다가극단 배우들이 초청되어 공연을 하였고 김정일과 고위측근들은 진수성찬으로 배를 채우며 밤을 샜습니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은 것이 중앙당 5과로 뽑혀와 술좌석에서 김정일과 간부들의 옆에 앉아 수청을 드는 기쁨조 여성들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북한의 역사영화들에서 봉건관료들의 옆에 앉아 수청을 드는 기생들이 나오는 영화 화면들을 본 기억이 날거라고 봅니다. 영화 춘향전에서 사또가 봉건관료들과 함께 진수성찬을 먹으면서 춤과 노래를 듣고 있고 매 관료들의 옆에는 기생들이 술도 따라주고 음식도 입에 넣어주면서 그들을 기쁘게 하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겠죠.

바로 김정일이 측근들과 밤마다 즐기던 연회는 봉건시기의 관료들이 하던 방식과 너무도 흡사하다고 보면 됩니다. 가정들에서는 자기의 딸이 중앙당 5과에 뽑히면 팔자를 고쳤다고 생각했지만 김정일에게는 이들이 한갓 현대판 기생, 노동당시대의 노리개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보통 20여 명 정도의 김정일과 그 측근들이 밤마다 모여들어 이런 밤 연회를 했다는 사실은 김정일의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가 쓴 도서 ‘김정일의 요리사’와 미국 워싱턴포스트 베이징 지국장 애나 파이필드가 쓴 도서 ‘마지막 계승자’에도 나와있습니다.

술을 거나하게 마시면 김정일은 춤을 추는 배우들에게도 나체를 강요했고 저들도 흉측한 알몸을 드러내면서 추잡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은 이제는 비밀이 아닙니다. 김정일은 자기의 옆에서 시중을 드는 기쁨조 여성들은 물론 춤과 노래를 부르려고 연회에 참가한 배우들도 자기의 옆자리에 앉히고 추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김정은의 엄마(생모)인 고영희도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로 이런 밤 연회에 참석해 춤을 추다가 김정일의 눈에 들어 옆자리에 앉아 시중을 들었고 이성적인 행위로 임신을 하게 되면서 김정일의 4번째 부인이 된 여성입니다.

김정일의 변태적인 욕구는 왕재산경음악단의 무용배우들에게 거의 반나체로 춤추게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북한에서 비공개로 나돌고 있는 왕재산경음악단 무용배우들이 반나체 상태로 무대를 뛰어다니며 춤을 추는 CD알판 영상들을 보지 못한 북한주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북한에 있을 때 이 영상을 보면서 이 춤 장면을 통제하는 것에 대해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생소한 그 영상은 급속하게 북한주민들 속에서 퍼졌고 사람들은 외국인들이 오면 보여주기 위해 준비한 왕재산경음악단의 공연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점차 이것이 김정일과 그 측근 고위간부들이 밤 연회 때 보는 공연장면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인민의 지도자라고 하면서 겉과 속이 다른 김정일의 반인민성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진수성찬을 먹으면서 춤과 노래를 들곤하던 밤 연회는 언제부터인가 김정일의 제안으로 기쁨조 여성들의 프로권투시합이 추가되었습니다.

외국에서 들여온 비디오테이프로 이런 경기장면을 보았던 김정일에게는 반나체 춤에만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진탕 치듯 먹고 나서 거나하게 술에 취해 배우들과 춤을 추기도 했고 옆에 앉아 시중드는 기쁨조 여성들을 마구 만지면서 모욕적인 행위를 하는 것으로도 만족치 않았던 것입니다.

김정일과 그 측근들이 밤 연회에서 기쁨조 여성들을 권투를 하도록 하고 그들이 맞아서 쓰러지고 피를 흘리면 좋아라고 웃어댔던 사실을 이 연회에서 일본음식을 만들어 봉사했던 후지모토 겐지가 자세하게 자기가 쓴 도서에서 밝혔습니다.

일본에 처와 두 딸이 있었던 유부남인 후지모토 겐지가 김정일의 전속요리사로 되어 밤 연회에 자주 불려가 간부들이 보는 앞에서 일본음식을 자주 만들다보니 1998년 어느 날에는 밤 연회에서 김정일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엄정녀라는 가수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에는 중앙당 청사 내에 있는 9번 연회장인 목란관에서 이 여가수가 김정일 앞에서 다른 기쁨조 여성과 권투를 하게 되었는데 처음 선수와 이겼던 엄정녀 여성이 두 번째 여성과의 경기에서는 코피까지 흘리면서 패하게 되었습니다. 후지모토 겐지는 경기에서 진 엄정녀에게 손을 내밀어 다정한 목소리로 “수고했어요”라고 말하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습니다.

이미 엄정녀에게 마음이 가있던 후지모토 겐지의 속내를 알아차린 김정일은 후지모토 겐지에게 “후지모토, 복싱 경기를 본 소감이 어떤가?”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여자 권투는 더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했고 김정일은 다시 “엄정녀가 두 번이나 시합을 했기 때문인가?”라고 물었습니다.

후지모토 겐지가 “그 때문이 아니라 여자가 코피를 흘리는 모습이 안쓰러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김정일은 후지모토 겐지에게 “엄정녀를 좋아하냐?”고 물었고 다시는 일본에 돌아가지 못하게 그리고 계속 자기에게 일본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게 하려는 속셈으로 20살이나 나이가 어린 엄정녀를 일본인 요리사의 아내로 맞이하도록 했습니다.

김정일의 변태적인 욕구를 위해 가정에서는 부모들의 사랑을 받다가 중앙당 5과에 선출되어 팔자를 고치는 것처럼 여겼던 기쁨조 여성들은 이렇듯 코피를 흘리면서 김정일에게 기쁨을 드리려고 싸워야 했던 것이 현대판 노예왕국, 북한의 숨겨진 모습입니다.

김정일이 즐기던 여성프로권투경기는 지금도 김정은과 그 측근들이 연회장들과 초대소들에서 진행될 것이며 이런 변태적인 이들의 욕구는 북한이 정상국가로 바뀌지 않는 한 멈춰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