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스위스 유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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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동포 여러분, 고난의 행군시기인 1996년에 김정은이 동생 김여정과 함께 유학을 가면서 고영희도 스위스에 가서 어린 김정은 형제를 돌봤습니다. 오늘은 김정은과 그의 엄마인 고영희가 스위스에 보낸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김정은의 형 김정철은 ‘박철'이라는 가명으로 스위스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차로 7분 거리에 있는 베른국제학교에 다녔고 후에 스위스 유학을 갔던 김정은은 1998년부터는 리버펠트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서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2009년 1월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알려지면서 김정은이 유년시절에 유학생활을 보냈던 스위스에서의 일상에 대해 스위스 ‘베르너차이퉁’ 신문, 미국 ‘워싱턴타임즈’, 프랑스 ‘르 피가로’ 일간지 등 많은 언론매체들이 관심을 가지고 취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위스의 유명 일간신문인 베르너차이퉁은 김정은이 박운이라는 가명을 사용했고 아버지는 스위스 주재 북한대사관 운전수의 아들로 학교에 입학했던 것으로 입학서류에 기재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김정일은 김정은 형제가 본처인 김영숙의 자녀가 아니라 자신의 첩에 불과한 무용수 출신의 고영희와의 사이에 생긴 자녀들이라는 것이 국제사회에 드러나는 것이 불편하였기에 사실을 감추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학생활을 시작해 2년이 되어오던 1998년에 김정은이 외국 친구들에게 자기가 ‘조선의 왕의 아들’이라고 고백해 서방언론들에서는 입학서류 상으로는 이름은 박운, 아버지는 대사관 운전수로 기재되었지만 혹시 김정일의 후궁, 한마디로 말하면 첩의 자녀일 수 있다는 의혹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영희도 자기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 유엔 북한 대표부 외교관 손정일이라는 여권을 소지하고 다니면서 자기의 본명을 숨겼습니다. 그런데 스위스 정보당국은 고영희가 김정일의 전용비행기인 북한 고려항공사 마크를 단 러시아제 일류신 62편기를 타고 스위스로 왔고 공항을 통과할 때마다 가방과 물품들이 북한의 일반인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고급사치품들만 사용하고 있기에 이를 면밀히 주시했습니다.

그리고 스위스 정보당국은 김정은의 엄마인 고영희가 북한 외교관들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지어 서방의 일반인들도 가격이 비싸서 출입을 저어하는 취리히 반호프슈트라쎄 쇼핑가에 자주 드나드는 것을 보면서 일반 외교관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취리히 반호프슈트라쎄 쇼핑가는 스위스에서도 유명한 세계적인 고급상품 매대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입니다. 북한주민들이 개인들에게 할당된 ‘충성의 외화벌이과제’를 위해 고사리, 송이버섯 등을 채집하거나 광석을 채집채취하면서 벼랑에서 떨어져 죽거나 갱이 무너져 생죽음을 당할 때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는 이렇게 달러를 흥청망청 써댔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영희는 스위스에서 생활하면서 제네바 호숫가에 있는 호화판 병원에 다닌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북한 외교관 신분은 거짓이며 김정일과 연관된 여성이라는 것이 스위스 정보당국에 의해 서서히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또 당시 스위스 주재 북한대사였던 리수용이 드문히 김정은이 다니는 학교에 찾아오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그가 어린 김정은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김정은도 대사관 운전수 아들이 아니라 김정일이 숨겨둔 여성의 아들일 수 있다는 의혹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김정일이 사망하기 1년 전인 2010년에 스위스, 네덜란드 등 서방나라들에서 대사로 근무하다가 귀국한 리수용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직책을 맡을 정도로 김정일과 김정은의 신임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를 거쳐 국제관계대학 프랑스어과를 졸업한 리수용은 1970년대에는 외교부 국제기구 국장, 당 조직지도부 서기실에서 근무하면서 김정일의 신임을 받고 1980년부터 30년 동안 해외에서 재외대표부 공사, 대사로 근무했습니다.

특히 리수용은 '리철'이라는 가명으로 스위스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로 근무하면서 스위스 은행들에 저금(예금)되어 있던 김정일의 개인 외화자금을 관리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위스에 유학을 온 김정은 형제들에게 필요한 외화를 보장해 주었습니다.

당시 김정일이 ‘충성의 외화벌이’를 통해 걷어들인 외화를 해외에 숨긴 돈이 약 46억 달러에 달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닙니다. 이 돈으로 고난의 행군시기 쌀을 사서 북한주민들에게 배급이라도 풀었다면 단 한명의 북한주민들도 굶어서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영희는 리수용이 준 돈으로 스위스에게 화장품과 고급시계, 고급 의류, 음식을 샀고 김정은 형제들을 데리고 백화점들에서 물건들을 사주었습니다.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시절에 장난감에 흥미를 가지고 자주 자기가 요구하는 장난감들을 사달라고 고영희에게 졸랐습니다. 12살에 스위스에 유학을 갔던 김정은이 가장 호기심을 가진 것은 놀이감 비행기였습니다.

고영희는 키가 다른 애들보다 작았던 김정은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 농구를 해서라도 키가 커지기를 바랐습니다. 고영희는 161센티미터 작은 키의 김정일처럼 김정은이 성인이 되어서도 키가 작아지면 어쩌랴 싶어 농구를 해서라도 키가 커지기를 바랐고, 그래서 백화점에서 세계적으로 값이 비싼 농구공과 운동화를 사주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은 농구보다 장난감 비행기를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고 고영희가 사주지 않으면 함께 생활했던 이모와 이모부에게 졸라서 놀이감 비행기를 사달래곤 했습니다.

점차 김정은도 농구를 즐기기 시작했고 어떤 날에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농구공을 안고 잤다고 지금은 망명하여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모 고영숙이 증언했습니다. 김정은의 같은 학교 동창이었던 포르투갈 외교관 아들인 조엘 미카엘로는 김정은과 자주 농구를 즐겼고 스위스 TV 통로(채널)로 미국 프로농구 대전인 내셔널 바스켓볼 어소세이션(NBA)을 함께 보곤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은 점차 게임도 농구게임을 즐겼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농구선수들을 알게 되면서 후계자가 된 이후에 평양에 전 미국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을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고영희는 김정은 형제가 유학을 하는 기간에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명한 유희장인 디즈니랜드, 스위스 알프스산 스키장, 프랑스 지중해 해수욕장, 이탈리아 유명식당인 ‘알 프레스코 레스토랑’ 등에도 자주 데리고 다니면서 서방문화를 경험해보게 했습니다.

김정은은 형 김정철보다 성격이 급하고 참을성이 부족했다는 것이 함께 공부를 했던 유학생들과 이모 부부의 증언입니다. 김정은 형제를 돌봤던 이모 고영숙은 김정은이 성격이 급하고 참을성이 부족했다며 엄마인 고영희가 무엇인가를 요구하면 음식을 먹지 않는 방식으로 반항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들으신 것처럼 북한당국이 ‘김정은이 고난의 행군시기 북한주민들과 꼭 같은 어려운 생활을 경험했다’고 한 선전선동이 얼마나 거짓말투성인지 잘 알게 되었으리라고 봅니다.

김정은은 유년시절에 경험한 스위스 유학생활을 통해 발전된 다른 나라의 경제수준과 평등하고 안정된 자유세계가 북한에도 실현되면 좋을 것임을 모르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발전된 사회는 성분제도도 없고 국가수반이 자녀들에게 세습을 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지금 같은 독재체제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