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 주모자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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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동포 여러분, 김일성이 6·25남침전쟁을 일으켜 같은 민족인 남북한 동포 390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던 살인마였다는 사실은 이제는 비밀이 아닙니다.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시기 매끼 진수성찬으로 배를 채우면서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천문학적인 돈을 탕진하여 300만여 명의 북한주민들을 굶겨 죽였습니다.

그리고 김정은은 우리 겨레를 한꺼번에 몰살할 수 있는 대량살인무기인 핵과 미사일 개발에 국고를 마구 탕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등장한 초기인 2010년 3월에 일으킨 천안함 폭침사건을 통해 그의 살인적인 유전적 기질을 파헤쳐 보려고 합니다.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김정은의 지시로 북한 해군에 의해 서해바다 한국 해역에서 정상적인 근무를 수행하던 한국군함 천안함이 폭침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200톤급의 군함인 천안함이 폭침되면서 46명의 한국 해병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건 이후에 국제조사단이 동원되어 증거들을 분석하는 과정에 천안함 폭침사건이 북한당국의 소행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조사단은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에서 발사한 어뢰 공격으로 침몰되었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했고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북한 군 고위간부들에게 신임을 얻고자 천안함 폭침사건을 기획하고 지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북한당국은 김정은이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고 선전했지만 인민군 고위간부들 마저 이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것처럼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으면 대학시절에 동창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이라도 공개되어야 하지만 아직도 북한당국은 김정은의 대학시절 사진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니면서 대학 본관에 있는 ‘김정일동지 사적관’을 학급별로 자주 관람해 정치사상학습을 하곤 했는데 이곳에는 김정일이 대학시절에 찍은 수백여 장의 사진들이 그대로 보존돼 공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이 집권해 10년이 넘었지만 김정은이 다녔다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마저 김정은의 대학시절의 사진이 공개된 사적관이 없다는 사실은 북한당국이 지어낸 ‘김정은 군사대학 졸업설’은 가짜라는 것이 판명된 셈입니다.

김정은은 김정일과 만수대무용배우인 재포출신 어머니 고영희 사이에 태어나 할아버지인 김일성에게조차 손자로 알려지지도 못했던, 서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 할아버지와 찍은 단 한 장의 사진도 없으며 현재까지도 북한당국이 공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후계자로 등장하면서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고 공개했으니 무언가 해서라도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충동을 느낀 김정은은 측근들을 시켜 자신의 군사업적 쌓기를 위한 도발을 기획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당시 인민군 정찰총국장이었던 김영철이 김정은의 지시로 천안함 폭침을 기획하고 지휘했다는 것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천안함 폭침사건 합동조사단은 2010년 5월 20일에 인양한 군함의 머리부분(함수)과 꼬리부분(함미), 선체의 변형 형태와 사고 해역에서 수거한 증거물들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천안함은 북한에서 제조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절단으로 침몰되었다”고 최종 발표했습니다.

합동조사단은 한국의 10개 전문기관의 전문가 25명과 군 전문가 22명, 국회추천 전문위원 3명, 미국·호주·영국·스웨덴 등 4개국 전문가 24명으로 구성된 전문능력이 뛰어난 조사단이었습니다. 정밀조사는 과학수사와 폭발유형분석, 선체구조관리, 정보분석 4개 분과로 구성되어 진행되었습니다.

조사단은 선체손상 부위를 정밀계측한 결과 ‘충격파와 버블효과로 선체의 기본골조가 건조 당시에 비교해 보았을 때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고 함선의 머리 쪽과 꼬리 쪽의 하단에서 위로 꺾인 것은 수중폭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함선이 좌우로 강하게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함선 안정기에 고스란히 남겨진 압력흔적과 열이 가해진 흔적이 없이 잘린 전기줄들, 가스터빈실의 구형압력흔적 등은 수중폭발에 의한 강력한 충격파와 거품효과로 함정이 절단되어 침몰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입증했습니다.

함선에 탔던 생존 군인들과 백령도 해안포 부대 군인들의 진술에서 거의 동시적인 2차례의 폭발음이 들렸고 2~3초간 높이 약 100m의 백색 섬광 불빛, 그리고 솟구쳤던 물기둥 등도 수중폭발에 의한 폭침사건임을 증명해주었습니다.

중요한 증거는 천안함 침몰해역에서 수거된 프로펠러, 추진모터, 조종장치 등북한 북한 어뢰 조각들이었습니다. 이 북한 어뢰 부품들은 북한에서 해외로 수출할 목적으로 인쇄해 여러 나라들에 배포한 어뢰 소개 자료의 설계도에 명시된 크기와 형태가 일치했고 추진부 뒷부분 안쪽에 “1번” 이라는 한글 표기는 대한민국이 확보하고 있는 북한의 어뢰에 “4호”라고 표기된 표시방법과 일치했습니다.

전문가들은 “1번이란 글씨는 제조과정에서 기술자들이 써놓은 것으로 보인다”며 완성단계에서 어뢰에 알루미늄 외피로 씌우기 때문에 이 어뢰를 다루는 북한 군인들은 어뢰 내부에 이런 글씨가 있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군을 지휘 경험이 없는 김정은이 후계자로 등장하면서 아버지인 김정일이 내세웠던 선군정치를 대를 이어 이끌 적임자라는 것을 인정받으려고 천안함 폭침 같은, 동족을 희생해서라도 ‘실력 인정’이 시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노동당 선전선동부와 인민군 총정치국에서는 비공개 강연회에서 천안함 폭침사건을 현명하게 이끈 김정은의 군사전략가적 기질을 인민군 장병들에게 주입시켰고 이 사건이 발발한지 반년이 되는 2010년 9월 27일에 김정은은 인민군 대장 칭호를 수여받았습니다.

물론 당시 군 장령들과 고급군관들 속에서는 만 26살인 김정은이 대장이 된 것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는 괴이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일당독재, 현대판 노예왕족 국가인 북한에서 이에 반박했다가는 자신뿐 아니라 온 가족이 몰살당한다는 공포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북한에서 군관(장교)이 되어 별을 하나 더 올리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지 잘 아실 것입니다.

당시 김정은이 인민군 대장이 되면서 찍은 기념사진이 노동신문 1면에 크게 게재되었습니다. 잠바복을 입은 김정일과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군 고위간부들 속에는 검정색 쯔메르(인민복)를 입은 김정은이 앉아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항상 잠바차림이었지만 김정은은 첫 등장부터 할아버지인 김일성이 즐겨입던 쯔메르 옷을 입었던 것입니다.

2009년 2월부터 군부대부터 서서히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던 김정은의 모습은 천안함 폭침으로 대한민국의 해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이를 통해 군사전략가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대장으로 등장해 김정일의 유일한 계승자로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김정은의 대장 견장에는 6·25남침전쟁으로 동족을 대량 살인한 김일성의 유전기질을 물려받은 김정은의 동족을 살인한 피가 묻혀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은 2010년 10월 노동당 창건 65주년을 맞으며 진행되는 기념식 김일성광장 주석단에 김정일과 나란히 등장해 살인기질의 모습을 전 세계에 드러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