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동포 여러분, 내일모레면 새해 설날입니다. 2000년대를 엊그제 맞이한 것 같았는데 벌써 20년이 지났고, 21세기에 들어서 21번째 설날을 맞이합니다.
김일성이 모든 주민들을 기와집에서 살게 해준다고 했지만 해방 후 76년이 되어오는 김씨 일가의 대가 3번 바뀌어 손자인 김정은이 집권하고 있는 현재까지도, 북한의 절대다수의 주민들은 오막살이집에서 추운 겨울 땔감 걱정을 하면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과 한줌도 안 되는 고위층들과 관료들은 온수난방이 되어있는 호화주택에서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김정은의 천국같은 북한의 초대소들에 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과연 김정은이 인민을 위한 지도자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과 자기 족속의 영원한 부귀영화를 위해 북한주민들을 착취하는 현대판 봉건왕족 같은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이 방송을 들으시는 청취자 여러분들이 나름대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북한의 곳곳에 널려있는 수십 개의 초대소들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북한의 고위간부들 속에서도 초대소를 별장 혹은 특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초대소들은 김정은만 이용하는 초대소와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북한을 방문하는 정치인이나 기업가 등 특수 대상을 위해 존재하는 초대소,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 파견되었던 통전부나 정찰국 소속의 연락원, 한마디로 말하면 대남 파견 스파이들이 귀국하면 휴식을 하는 통전부 산하의 초대소 등 여러 종류의 초대소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방북하면서 머물었던 평양시 대성구역 림흥동에 위치한 백화원초대소나 한국 대통령 특사들이 숙식했던 삼석구역에 위치한 고방산초대소는 외신 유명인사들이 방북하면서 머물던 초대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초대소들의 내부건설장식은 평양 고려호텔보다 더 고급스러운 건설자재로 시공되어 있어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의 고급호텔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983년에 건설된 백화원초대소는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2000년에는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 2001년 장택민 전 중국 국가주석,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2007년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 2013년 에릭 슈밋 구글 회장 일행, 2018년 7월에는 북한을 방문한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이 숙식하여 잘 알려졌습니다.
백화원초대소에서 ‘백화원(百花園)'이란 글자는 한자로도 알 수 있듯이 초대소 주변에 100여 종류의 꽃이 심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동쪽으로 약 4km, 10리 정도 떨어져 있는 백화원초대소는 동쪽으로는 대동강이 흐르고 서쪽에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어 경치가 참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백화원초대소의 동쪽으로 보이는 5월 1일 경기장과 모란봉의 경치는 한 폭의 그림과도 같습니다.
북한의 초대소들은 김정일이 생존 시기에 1년에 2달 정도만 평양에 머물고 나머지 300여일 동안은 여러 초대소를 옮겨 다니면서 생활하다보니 각 지역에 있는 김정일의 저택 역할을 했습니다.
김정일이 초대소들을 자주 옮겨 다니며 생활한 이유는 3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본처인 김영숙 몰래 숨겨놓고 동거했던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시간들에서 언급했지만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는 일본에서 태어나 11살에 귀국한 재포출신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서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부인이라고 선포하기에는 부적절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김정일은 고영희를 원산초대소와 강동초대소, 신천초대소 등 여러 초대소들에 숨겨놓고 동거하였고 그 과정에 김정은 형제들이 출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둘째로는 신변안전과 관련이 있습니다. 김정일은 미국 등 유엔군을 파견한 다른 선진국의 정찰위성과 스텔스 폭격기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지구주위를 돌고 있는 수십 개의 정찰위성들은 사람이나 승용차의 이동을 항상 주시하고 있고 북한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 폭격기에서 투하하는 폭탄은 지하갱도에 있는 사람도 폭사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김정일과 김정은은 초대소들에 이동할 때에도 다른 여러 지역으로 자기가 타는 승용차와 꼭 같은 여러 대의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자기의 동선을 알지 못하도록 했고 신변보위를 위한 호위국 군인을 24시간 모든 초대소들에 주둔시켰던 것입니다.
셋째로는 경치나 기온, 내부건설형식 등이 차이나는 다른 초대소들에 옮기면서 지루한 삶에서 항상 새롭고 신선한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였습니다. 모든 초대소들에는 영화관과 사격장, 말을 타는 승마장, 예술단 공연을 위한 무대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초대소 건물들은 외국에서 수입한 고급 대리석으로 장식해 고급스러움은 세계적으로 가장 가난한 북한의 실정과는 너무도 차이나는 건축물이어서 밖에서 초대소에 들어오면 지옥에서 천국에 들어선 기분입니다.
김정은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원산초대소는 김정일이 생존시기 연중 가장 많이 찾았던 초대소입니다. 이곳에는 둘레가 900미터인 전용 승마장과 영화관, 농구장시설이 있고 동해에 바로 닿아 있어 갖가지 해양체육(스포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어린 시절 형 김정철과 원산초대소에서 자주 즐긴 해양체육종목으로는 수영, 요트, 물(제트)스키, 바나나보트 등이었습니다. 바나나보트는 바나나 모형의 공기를 주입해 사람이 타고 즐길 수 있는 해양놀이기구입니다.
원산초대소에는 김정은 형제가 즐기던 거대한 이동식 수영장도 있습니다. 배가 하나의 수영장인 이 이동식 수영장의 길이는 50m에 달합니다. 그리고 수영장에는 길이가 10m인 물미끄럼대(워터슬라이드) 두 대가 있었습니다. 이 이동식 수영장을 원산초대소에서 함흥에 있는 72호 초대소까지 끌고 가서 그곳에서 즐기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 김정일의 일본요리를 전문으로 보장했던 일본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자기의 저서 ‘북한의 후계자 왜 김정은인가’에서 “이런 초대소 시설이나 김정일 패밀리의 생활상은 풍요로운 나라 일본에서 온 나조차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놀라웠다. 그러나 그들의 성역바깥으로 한 걸음만 나가면 그날의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원산초대소 이외에도 북한에는 백두산초대소, 함흥72호 초대소, 강동32호 초대소, 창성초대소, 묘향산초대소, 신천초대소, 구월산 단청초대소, 평양 진달래 22호 초대소, 목란관초대소, 고원 영흥초대소, 사리원 정방산초대소, 남포 영남초대소, 연풍초대소, 신의주 석하초대소, 삼지연초대소, 경성초대소, 칠보산초대소 등 수십 개의 초대소가 김정은과 그 가족의 부귀영화를 위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함흥 72호 초대소에서는 백사장이 있는 동해에서 물스키를 즐기거나 일본산 자전거를 타면서 여가를 보냈고 강동초대소에는 기쁨조들을 불러다가 밤파티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구월산에 있는 단청초대소에서는 온천 사우나를 하면서 밤파티로 쌓인 피로를 풀었고 겨울에는 신천초대소에서 꿩사냥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김정일은 고원에 있는 영흥초대소에서는 송어를 잡아 송어구이를 해먹으며 배를 채웠고 평양동물원 인근에 있는 진달래초대소에서는 골프치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창성초대소도 김정일이 자주 찾아 오토바이와 말타기, 물스키를 즐기던 초대소였습니다.
초대소들에서 사용된 그릇들은 프랑스제였는데 바닥에 떨어트려도 깨지지 않는 특수재질인 파인 세라믹 제품이었습니다. 그리고 탁상시계들도 스위스에서 수입한 고급시계였습니다.
이렇듯 김정일과 김정은은 북한주민들에게 낙원같은 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한다며 ‘인민을 위해 복무함’, ‘인민대중 제일주의’ 구호를 곧잘 외우지만 초대소들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을 자신들만을 위한 천국으로 만든 인간일뿐, 인민을 위한 지도자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