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동포 여러분, 북한에서 주체사상에 대하여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를 대하는 관점과 입장을 가지도록 하는, 인류사상사에 처음으로 확립된 사람중심사상”이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의 정치문화는 여전히 구세기적인 봉건사회의 정치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북한에서는 사회의 영역을 크게 정치, 경제, 문화로 구분하지만 정치문화에 대한 정의는 무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정치문화(政治文化)에 대해 “사회집단의 정치적 기분·태도·평가·의무감·약속 등을 포함하는 정치체제의 심리적 측면 또는 내재화된 정치체제”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정치문화는 당시대의 국가구성원인 국민들이 인식하는 가치관과 그에 따른 행동을 나타내게 됩니다. 시대와 국가에 따라 주민들의 정치적 신념과 가치관, 사고방식이 다르며 이러한 신념체계나 가치체계의 총체를 문화하고 부릅니다. 이 문화 속에 정치적인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과 연관된 것을 정치문화(political culture)라고 합니다.
신적인 존재로 우상화되고 있는 김씨 일가의 3대 세습 그리고 현재 김정은에 대한 신조화, 신격화는 현대 발전된 나라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구세기적인 정치문화적 양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북한의 구세기적인 정치문화는 이조봉건사회에서 왕권을 중시하고 신적인 존재로 여겼던 당대사회의 정치문화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벌주의적인 신분계층사회였던 이조왕조시대의 정치체계의 특징은 유교사상을 사회의 기본 이데올로기로 한 봉건관료체계였으며 왕에게 권력이 집중된,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체제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그런데 북한의 현실은 어떤가요? 마치 이조왕조시대와 너무도 신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핵심계층과 적대계층을 따지고 간부등용을 성분토대에 기초해서 진행하고 있고, 주체사상이라는 오직 하나의 사상만을 강요하면서 국가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북한의 현실은 이조봉건사회의 정치체계, 정치문화와 너무도 닮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조왕조시대에도 왕권을 위협한 사건들이 종종 발생하곤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사건들로는 1506년 조선 제10대 왕인 연산군을 몰아내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인 중종반정, 1624년에 있었던 이괄의 난, 1882년의 임오군란, 임꺽정과 장길산의 난, 동학혁명 등입니다.
북한에서 조선역사(한국사)시간에 전혀 언급하지 않는 이괄의 난은 조선 15대 왕이었던 광해군을 몰아내고 그의 배다른 동생인 정원군의 맏아들 인조를 왕위에 오르도록 하는데 큰 공을 세운 함경도 북병영의 병마절도사 이괄이 지휘했던 왕위 쟁탈전을 말합니다. 이괄은 1622년(광해군 14년)에 조선 15대왕 광해군을 제거하기 위한 거사를 지휘한 업적으로 함경도로 돌아가지 않고 당시 수도인 한성부(오늘의 서울)에 남아 좌포도대장의 직책을 부여받고 치안유지를 담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1624년 3월 6일에 이괄은 역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궁궐에서 문초를 당하자 자신을 역모로 꾸며 문초하도록 했던 자들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괄은 구성부사(龜城府使)인 한명련(韓明璉) 등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투항한 일본군 100여 명을 앞세워 개천을 점령하고 평안도의 순천(順川), 자산(慈山), 중화(中和), 황해도의 수안(遂安), 황주(黃州) 등을 차례로 점령하고 개성(開城)으로 진격했죠. 인조는 명나라에 파병을 요청하였고 점차 기세가 쇠약해진 이괄의 반란군은 패하였으며 이괄은 부하 장수들이었던 이수백(李守白), 기익헌(奇益獻)에게 살해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괄에 의해 왕으로 추대된 선조왕의 열 번째 서자였던 흥안군도 처형되었고 이괄의 난에 동조했던 세력들도 처참하게 처형되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에 있었던 이괄의 난과 같은 사건들이 지금 현대판 김씨왕조국가인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북한이 여전히 봉건왕조같은 구세기적인 정치문화가 성행하는 낡고 병든 사회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여러분들은 북한에서 있었던 ‘8월종파사건’이나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의 투서사건, 프룬제 군사아카데미사건, 6군단사건 등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영원한 김씨왕조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소련파, 연안파, 갑산파, 남로동파 등 정치적인 경쟁세력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했던 김일성의 숙청정치는 이괄의 난과 같은 이조봉건왕조시대의 처형방식보다 더 처참했습니다.
그러기에 북한전문가들은 이조왕조시대의 봉건적인 권위주의, 파벌주의, 계급주의 등은 현대 김씨왕조 정치체제와 너무도 흡사하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서강대학교 이상우 정치학 교수는 저서 ‘북한정치변천’에서 “북한사회에 소련 소비에트식 일당지배 전제정치가 도입될 때 북한 주민들이 크게 저항하지 않은 것은 조선 전제정치제도, 왕조시대의 절대주의 정치체제에 친숙한 북한주민들에게는 생소하지 않은 체제여서 그대로 순응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학자들은 선진화된 자본주의 정치문화, 서양식 참다운 민주주의를 경험해보지 못한 북한 주민들이 이조봉건사회의 정치체제와 정치문화, 정치의식 눈높이에서 세뇌되다보니 봉건사회의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조왕조시기는 왕권의 가부장적 권위주의, 삼강오륜(三綱五倫)에 의한 정치적인 장유유서 (長幼有序)와 사회질서, 중앙에서 지시를 하달하면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상명하복적인 정치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이러한 봉건왕조의 신분제도가 존재하는 정치문화와 정치의식이 혼재된 가운데 해방 후 북한에 진주하여 북한사회전반을 장악한 소련공산당과 소련군정에 의해 북한에서는 김일성 체제가 강제적으로 이식되게 되었습니다.
해방 후 1945년부터 1947년까지 북한에서 함흥학생사건, 신의주학생사건 등 저항운동이 있었지만 소련군에 의해 진압 당했고 민족지도자로 김일성보다 더 인기가 높았던 조만식 선생은 소련의 신탁 통치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소련군에 의해 1946년 1월 체포돼 감금당했으며 6.25남침전쟁 기간에 김일성에 의해 살해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닐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이 자본주의에 대해서였습니다. 인류가 원시사회, 노예제 사회를 거쳐 봉건사회가 붕괴되고 자본주의 사회로 점차 진보하면서 대한민국과 같은 발전된 선진국가들이 자본주의를 선택한 것을 보고 그리고 공산주의를 한다고 했던 소련이나 중국마저도 자본주의사회로 복귀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을 보면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2009년에 생사를 건 탈북을 하여 대한민국에 와서야 비로소 북한은 여전히 봉건사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가 아닌 김씨왕조 독재국가임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상과 민주화된 모습을 보면서 북한사회는 오직 김정은과 그 측근들만을 위한, 가장 부패하고 반인민적인 제도이며 자율적인 시장경제를 억제하는 사회이기에 절대로 경제가 발전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 달에 일해서 버는 생활비가 월 3000 달러를 넘는 것이죠. 이것은 하루에 100 달러 이상을 벌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과연 북한에서 하루에 100 달러를 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나라의 발전정도, 선진화된 척도는 이렇게 경제생활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오직 김정은과 고위 특권층만을 위한 현대판 봉건왕족국가, 북한의 정치문화는 이렇듯 여전히 수백 년 전의 이조봉건사회의 구세기적인 정치문화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김씨왕조국가 북한은 지구상에 가장 가난한 빈곤국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