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숨겨진 진실] 장성택 처형을 통한 공포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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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동포 여러분,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후계자 수업기간이 김정일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던 김정은은 자기의 영도체계를 확고히 수립하는데서 고위간부들에 대한 숙청을 중요시 했고 그 일환으로 인민군총참모장이었던 리영호를 숙청했으며 자기의 고모부 장성택마저 서슴없이 처형하는 공포정치를 폈습니다.

2012년 7월 리영호 총참모장 해임을 계기로 북한당국은 전당, 전군, 전민 등 사회 전반에 대한 당적통제를 강화해나갈 목적으로 2013년 1월 전국 당세포비서대회를 개최했으며 인민무력부장, 총참모장 등 군부 고위간부들의 해임과 복직 등 소위 ‘견장정치’를 통해 충성경쟁을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은 2013년 3월 31일, ‘경제건설 및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발표하였고 김일성 생일 10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는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 “내게 소중한 것은 총알보다 쌀알”이라면서 인민생활 향상을 강조하기도 했죠. 그러나 인민생활 향상 의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인민경제분야에 대한 공적 투자는 증대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에 국가자금을 마구 탕진하다보니 인민생활은 날이 갈수록 더 피폐해졌습니다.

김정은의 지시로 북한당국은 현대판 봉건왕조국가인 김씨왕조의 정권안정화를 위해 헌법에도 핵보유국임을 명시하였고 2013년 2월 12일에는 제3차 핵실험을 단행하였습니다. 핵무기의 소형화와 경량화, 다종화를 주장하면서 북한당국은 그 해 3월에는 북핵 실험으로 빚어진 대북제재를 “북한체제를 붕괴시키려는 미제국주의 세력의 압박과 봉쇄”라며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이 대북제제에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은 인민생활이 더 어려워진 것에 대해 “핵에서 밥이 나오냐”, “우리에게는 핵무기보다 쌀이 더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김정은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김정은은 더 큰 칼을 휘둘러 공포를 극대화하려고 꾀하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2013년 12월, 김정은에 의해 고모부 장성택이 처형된 사실을 잘 기억하고 계시리라 봅니다. 북한당국은 2013년 12월 8일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을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고 노동당원에서도 출당·제명하기로 결정했으며 4일 후인 12월 12일에 특별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내리고 처형하였습니다.

북한당국은 정치국 회의에서 장성택을 “동상이몽, 양봉음위하다가 혁명의 대가 바뀌는 역사적 전환의 시기에 와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리고 2013년 12월 9일자 로동신문 기사에는 장성택 숙청과 관련하여 “최근 당 안에 배겨있던 우연분자, 이색분자들이 주체혁명위업계승의 중대한 역사적 시기에 당의 유일적 영도를 거세하려 들면서 분파책동으로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 감히 당에 도전해 나서는 위험천만한 반당반혁명적 종파사건이 발생하였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북한당국은 장성택을 처형하기 하루 전인 2013년 12월 13일 로동신문 기사에서 장성택이 처형된 핵심적 이유에 대해 “군대를 동원해 군사정변을 꾀했다”며 심문과정에서 장성택이 “나는 군대와 인민이 현재 나라의 경제 실태와 인민생활이 파국적으로 번져지는 데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는 불만을 품게 하려고 시도하였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장성택이 노린 쿠데타의 대상이 바로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라며 “만고역적의 추악한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 놓았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그러면서 쿠데타의 수단과 방법에 대해 “장성택은 인맥관계에 있는 군대 간부들을 이용하거나 측근들을 내몰아 수하에 장악된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려고 하였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또 로동신문에서 북한 당국은 “장성택이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고 국가가 붕괴 직전에 이르면 내가 있던 부서와 모든 경제기관들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총리를 하려고 하였다. 내가 총리가 된 다음에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명목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으로 일정하게 생활문제를 풀어주면 인민들과 군대는 나의 만세를 부를 것이며 정변은 순조롭게 성사될 것으로 타산하였다”고도 하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여러분들은 로동신문에서 강조했던 기사문구 중에는 “장성택이 권력 탈취 후 짧은 기간에 새로운 정권을 외국에서 인정받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망상을 하였다”면서 ‘장성택 우상화 시도, 직권 남용, 라선지구 토지를 외국에 파는 매국 행위, 부정부패’가 그의 반역범죄라고 주장하였던 사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장성택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리룡하, 장수길 등에 대해서는 “장성택이 리룡하, 장수길 등 불평 불만자들을 규합하여 자신이 있던 부서를 그 누구도 다치지 못하는 소왕국으로 만들어 놓았다”고도 했죠.

또한 로동신문에서 북한당국은 “장성택이 직권을 악용하여 수도건설과 관련한 사업체계를 헝클어 놓아 몇 년 사이에 건설건재기지들을 폐허로 만들다시피 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수도건설단위 기술자, 기능공 대열을 약화시켰으며 중요 건설 단위들을 심복들에게 넘겨주어 돈벌이를 하게 만들어 놓음으로써 평양시 건설을 고의적으로 방해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과연 장성택이 위와 같은 범죄를 노골적으로 했을까요? 아무리 장성택이 김정일의 매부이고 김정은의 고모부라고 할지라도 군부가 있고 보위사령부와 국가안전보위부가 있는 한 쿠데타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입니다.

로동신문에 밝힌 내용 중에는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 팔아먹도록 하여 심복들이 거간꾼들에게 속아 많은 빚을 지게 만들고 지난 5월 그 빚을 갚는다고 하면서 나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에 김정일의 지시로 북한당국이 나선지구를 중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에 개방하면서 당시에 벌써 50년 토지임대로 다른 나라들로부터 달러를 받고 팔았다는 사실은 이미 비밀이 아닙니다.

로동신문에는 “2009년 만고역적 박남기 놈을 부추겨 수천억 원의 우리 돈을 남발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혼란이 일어나게 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도록 배후조종한 장본인”이라고 강조하였고 “정치적 야망 실현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각종 명목으로 돈벌이를 장려하고 부정부패 행위를 일삼았다”며 “2009년부터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 자료들을 심복졸개들에 유포시켜 자본주의 날라리풍이 우리 내부에 들어오도록 선도하였고 가는 곳마다에서 돈을 망탕 뿌리면서 부화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고도 했죠.

북한당국은 “2009년 한 해에만도 제 놈의 비밀 돈 창고에서 460여만 유로를 꺼내 탕진한 사실과 외국 도박장 출입까지 한 사실 하나만 놓고 보아도 놈이 얼마나 타락, 변질되었는가를 잘 알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북한당국이 말하는 장성택이 비자금 460만유로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안갈 것이라고 봅니다. 460만 유로면 달러로 491만 달러가 됩니다. 지난 1월 평양에서 1달러가 북한돈 약 6,700원이라고 하죠. 그러면 491만 달러는 북한돈으로 약 329억 원이 됩니다. 1천만 원도 아름찬데 1억 원이 아니라 330억 원이라니 가늠이 가나요? 국제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한민국의 승용차의 한 대 가격이 보통 3만 달러라고 한다면 약 110만 대의 승용차에 해당한 가격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과연 장성택이 김정일이 죽고 2년 만에 이런 막대한 자금을 비축했다면 이해가 되나요? 절대로 그럴 수 없죠. 김정일이 죽으면서 김정은에게 물려준 돈이 약 46억 달러라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장성택과 그 주변세력들에 대한 김정은의 숙청에 대해 김정일이 죽은 직후부터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장성택이 처형되면서 김정은은 장성택 측근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강행했습니다. 해외에 나가있던 외교관들과 무역일꾼들이 장성택의 처형을 보면서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미국이나 영국 등에 망명하였고 대한민국에도 많은 고위간부들이 탈북하여 입국했습니다.

그들은 김정일 사망 후에 후계자로 등장한 김정은이 고위간부들에 대한 공포정치로 자기의 유일적 영도체제를 확고히 하고 전당, 전군, 전민에 강압적인 폭압정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장성택을 제물로 이용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