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숨겨진 진실] 북한의 화학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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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동포 여러분, 지난 시간에 북한의 핵무장화를 위한 핵개발 역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지난해 2022년 9월 8일 김정은이 ‘핵무기 선제타격 법제화’라고 할 수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를 제정하면서 북한이 보유한 대량살상무기(WMD)가 보다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대량살상무기(WMD, Weapons of Mass Destruction)는 인간을 대량 살상할 수 있는 무기를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생물무기, 화학무기, 핵무기, 방사능 무기(Nuclear, Biological, Chemical, Radioactive Weapons) 이렇게 4종류를 가리키며 이를 영어문자 앞 글자를 따서 'NBCR 무기' 등으로 부릅니다.

오늘은 북한이 개발하고 있는 화학무기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신경작용제(VX)를 포함해 최소한 2500~5000 톤의 화학무기를 보유한 북한에 대해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과 러시아 다음으로 대규모의 화학무기를 보유한 세계 3위의 화학무기 국가”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화학무기는 기체 혹은 액체로 살포되며 작용제의 특징에 따라 질식작용제, 수포작용제, 혈액작용제, 신경작용제 등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자극의 부위에 따라 피부자극제, 호흡기자극제, 눈 자극제 등으로도 구분합니다. 화학무기를 ‘가난한자의 무기’ 일명 ‘빈자(貧者)의 무기’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핵무기를 비롯한 다른 대량살상무기보다 적은 비용으로도 제조할 수 있어 가난한 나라들에서 전략적 무기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화학무기를 최초로 사용한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약 1,580년 전인 기원 441년부터 449년까지 8년 동안 치른 페르시아전쟁에서 송진을 태워 유독가스로 공격한 것입니다. 본격적인 화학무기 사용은 1차 세계대전으로 군사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독일군이 1915년 4월 22일 벨지끄(벨기에)의 이쁘르 지역에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게 150톤의 염소가스를 살포하여 전과를 거두면서 화학무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죠. 2차 세계대전에도 화학무기가 사용되었고 그 이후에도 국지전에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고엽제를 사용하였고 1980년대 이라크 후세인 정권이, 2013년에는 시리아 정부군이, 2017년에는 김정은이 이복형인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독극물(VX)로 암살하였던 사건들이 화학무기 사용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04년 대한민국 외교안보연구원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화학무기를 보유하였거나 현재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국가로는 북한, 러시아, 중국, 미국, 이스라엘, 인도, 이라크, 이란,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등 12개국입니다.

북한의 화학무기에 대해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은 2017년 2월 13일 김정은이 배다른 형인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화학무기 일종인 VX로 암살하고 2달 후인 그해 4월 시리아에서 정부군이 반군과 난민을 향하여 화학무기를 사용하여 사망자 1,300여 명, 부상자 400여 명이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2015년에 북한과 시리아가 화학무기 제조와 관련되어 비밀리에 협업을 한다는 정보가 국제사회에 공개됐고 시리아의 화학무기 제조기술이 북한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2017년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과 맞물리면서 북한의 화학무기에 대한 관심은 확산되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화학무기 보유량에서 1위와 2위였던 구소련은 약 4만 톤, 미국은 약 3만 1천여 톤의 화학무기를 폐기선언을 하고 현재 약 90%정도를 폐기한 상태입니다. 결국 최대추정 보유량이 5천여 톤인 북한이 저절로 세계 최고의 화학무기를 보유한 셈이죠.

북한의 화학무기 개발은 1961년 12월 15일 김일성이 노동당 제2기 2차 전원회의에서 화학화를 선언하면서 화학무기와 생물무기 연구 및 생산시설을 구축해 자체로 화학작용제 생산능력을 갖출 데 대해 지시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은 화생방전과 관련된 생산체계 구축과 생산시설의 갱도화를 지시했고 1960년대에 이어 1970년대에 화학무기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화학무기를 대대적으로 생산해 비축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비날론 박사로 유명한 리승기 박사가 화학무기 개발의 선두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05년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태어난 리승기 박사는 일본 교토제국대학 공학부 공업화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와 도쿄에서 화학섬유연구소 연구사로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장으로 근무했던 리승기 박사는 전쟁 시기 김일성의 지시로 납북되어 1950년 7월 31일에 월북하여 평안북도 청수에서 비날론 공업화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전후 1954년 구소련과 중국이 일본으로부터 획득한, 화학무기개발 프로그램을 전수받은 북한은 평양에 시험공장을 설립하고 꾸준히 화학무기 개발을 진행해오다가 1980년대 이란과 이라크 전쟁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되는 것을 보고 더 적극적으로 개발을 진행하였습니다.

제가 1980년 김일성종합대학 예비과에 입학하고 1981년에 생물학부 본과에 입학하면서 군부대 연구소에서 현역으로 생물학부에 입학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것처럼 북한의 2경제연구소인 국방과학분야의 연구기관들에서는 청년들을 현역생으로 이공계 학과에서 공부시켰다가 군수산업 연구기관들에 재취업시켜 근무시키고 있습니다.

당시 함께 공부하던 그 친구들이 군수관련 연구소에 대해 서약서를 쓰고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다보니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드문드문 지나가는 이야기로 화학무기 관련 실태에 대해 말하곤 했습니다. 북한의 화학무기 생산공장은 12개 정도이며 저장시설로 6개소가 있으며 170여개의 갱도에 화학무기를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2004년 북한이 화학무기 원료인 시안화나트륨(NaCN) 120여 톤을 중국을 거쳐 수입하면서 현재도 북한의 화학무기 개발은 진행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은 화학무기 개발에 이어 그 해독제 연구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닐 때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무좀이 퍼져 애를 먹었던 일이 있습니다. 그때 한 학급 동창생의 아버지가 고급군관으로 복무하였는데 평양시 형제산구역에 있는 4호창고에서 연고식으로 된 화학무기 해독제를 가져다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으로는 낫지 않던 무좀이 그 화학무기 해독제를 바르고 단번에 낫는 것을 보고 북한의 화학무기 개발과 함께 해독제 개발도 진행하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화학무기에 대한 실체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의 화학무기 생산시설은 8개소, 화학무기 연구소는 4개소, 화학무기 저장시설은 6개소인 것으로 공개했습니다. 자강도 강계에는 연구시설과 생산시설이 있으며 청수, 만포, 순천, 남흥, 안주, 함흥, 화성 등에 생산시설과 연구소가 위치해 있습니다.

북한의 화학무기 개발을 위한 화학물질 생산공장으로는 425비날론공장, 흥남 화학비료공장, 청진화학섬유공장, 남흥청년화학공장, 만포화학공장, 순천비날론공장, 사리원칼륨비료공장 등입니다.

김정은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이어 생화학무기 개발로 한반도를 전쟁의 불도가니로 몰아가려 하지만 굳건한 한미동맹과 경제대국의 재정적인 토대로 강력한 군사력을 겸비한 대한민국을 건드렸다가는 현대판 김씨 왕조의 붕괴로 이어질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