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동포 여러분, 큰 도둑이 재판관이 되어 좀도둑을 재판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제가 2009년 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한 후 서울생활을 한지도 이젠 13년이 되어오지만 지금도 북한에서 살아온 날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변하기는커녕 점점 더 낙후되어 가는 북한의 상황을 바라볼 때면 안쓰러운 마음을 걷잡을 수 없습니다.
부정부패의 왕국, 뇌물사회, 황금만능, 마약천국, 인권불모지 등 북한을 가리켜 국제사회가 비판하는 표현들은 너무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심각한 것은 부정부패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오늘은 김정은 시대에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북한의 부정부패현상과 이를 척결한다고 하는 북한식, 정확히는 김정은식 부패척결의 내막을 폭로하려고 합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2019년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당과 대중의 혼연일체를 파괴하고 사회주의제도를 침식하는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의 크고 작은 행위들을 짓뭉개버리기 위한 투쟁의 열도를 높이자”고 호소한 사실을 기억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후에 평안북도를 비롯하여 여러 지역들에 중앙당 검열그룹을 파견해 간부들의 부정부패를 척결한다면서 대대적인 검열이 강행되었고 군부 내부의 부정부패에 대한 검열도 진행되었습니다. 사실 부정부패 척결과 관련된 이러한 조치는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서 숙청과 공포정치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2016년 12월에 진행된 전국초급당위원장대회에서도 김정은은 당 조직 내부에서 만연한 부정부패행위에 대해 지적했고 2017년 신년사에서도 “일심단결의 화원을 어지럽히는 독초인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 행위를 뿌리 뽑기 위한 투쟁을 드세게 벌려야 한다”고 언급했었죠.
당시 이에 대해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은의 부정부패 척결 의지는 사회전반에 대한 진정성 있는 변화의지보다도 부정부패라는 죄명을 들씌워 간부들을 숙청하는 과정을 통해 북한 전반에 대한 공포통치로 충성경쟁을 불러일으키려는데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우선 부정부패에서 ‘부패’라는 단어의 의미를 보면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말대사전에는 “부패는 정치사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변질하여 못쓰게 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사전에서 예를 든 것이 “부패하고 무능한 봉건통치배”입니다. 이것은 부패라는 말은 왕족정치를 하였던 봉건사회의 유물이라는 것을 암시해준 셈입니다.
조선말대사전에는 ‘비리’라는 어휘에 대해 “역대 봉건통치배들은 온갖 비리와 사기협잡으로 부정축재한 모든 불로소득으로 호의호식하여 왔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정부패나 비리는 봉건사회의 유물이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실제로 북한이 현대판 봉건왕조국가임을 감안한다면 북한 체제로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정부패현상은 나라의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 성행하게 되며 여러 정당들이 존재하면서 서로 견제하는 민주주의 국가보다 북한처럼 노동당의 일당독재가 존재하는 국가일수록 더 농후하게 나타납니다.
식의주를 해결하기 위한 생존과정에서 부정부패현상은 더 심하게 나타나게 되고 그 과정에 권력이 참여하면서 권력형 부정부패로 번져 그 규모는 더 커지게 됩니다. 북한을 가리켜 세계는 ‘현대판 왕조국가’, ‘뇌물 백화점’, ‘부정부패 왕국’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10년이라는 긴긴 세월이 7번이나 지나갔고 할아버지에 이어 손자 대에까지 이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인권유린의 생지옥으로 남아있는 북한의 현실은 부정부패의 온상인 노동당의 당 세도가 여기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국가의 일원인 일반주민들이 자기의 의사를 마음대로 표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권력을 가지면 그 권력을 이용하고 싶은 충동을 가진다고 합니다. 때문에 이런 권력자가 사회가 준 권력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통제를 받아야 독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일당독재인 노동당과 노동당 위에 군림하는 김정은의 권력은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북한 김씨 왕족의 2대 권력자였던 김정일은 노동당을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선물정치’를 내세웠습니다. 경제난으로 어려웠던 1990년대 북한의 선물정치는 간부들만을 위한 북한사회의 진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인민의 지상낙원이라고 했던 북한의 곳곳에서 굶어죽은 사람들의 시신들이 전쟁을 치른 도시를 방불케 했고 간부들이 뇌물횡령행위는 극도에 달하였죠.
제가 북한에서 양강도인민위원회 지방공업관리국 기술준비소에서 근무하면서 양강도 혜산시에 있는 지방공업관리국 산하의 공장기업소들을 책임지고 매일 생산실태 요해를 위해 다닌 적이 있습니다.
구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붕괴되고 사회주의권 국가들 사이의 경제협조가 파괴되면서 북한의 경제는 바닥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원자재는 물론 생산설비들마저 공급이 중단되고 전력공급마저 끊기면서 파산직전에 이른 북한의 공장들은 전쟁을 치른 때처럼 되돌아갔습니다.
노동자들은 노동단련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출근하지만 전력난, 원료난 등으로 일을 할 수 없기에 앉아서 한담만 하다가 퇴근하곤 했습니다. 제품생산을 할 수 없으니 당연히 월급이라고는 손에 쥐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장사를 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해도 공장에 수입금이라는 명목의 돈을 내야 했습니다. 그것마저도 노동과장이나 지배인, 당비서에게 뇌물을 주어야 이런 특혜 아닌 특혜를 받을 수 있었죠.
1990년대에 이어 2000년대, 2010년대, 오늘날의 2020년대에도 뇌물과 부정부패는 끊이질 않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2016년 5월 6일부터 9일까지 진행되었던 조선노동당 7차당대회에서 김정은이 “현 시기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구현하는데서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행위는 추호도 용납할 수 없는 주적”이라면서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행위를 철저히 없애기 위한 사상투쟁과 조직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행위는 일반인들이 범하는 과오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김정은이 간부들에 대한 숙청과 처벌을 통한 공포정치를 계속 진행할 것임을 강조한 연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2년 이후 김정은이 권력을 잡고 나서 김정일 시신운구차 8인방들을 제거하던 숙청바람이 4년이 지난 2016년, 김정은의 당대회 보고서 공개 이후에 또다시 북한 전역에서 재개되었습니다. 7차 당대회 이후 2016년 7월경에 내각부총리 김용진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자세불량으로 참석했다는 지적을 받았고 국가안전보위성의 조사과정에 반당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총살되었다고 합니다.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최휘도 선전선동사업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김정은의 지적을 받고 지방에 혁명화를 내려갔습니다. 김정은의 심복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김영철은 무리하게 통일전선부 권한 확장을 추진하는 등 권력 남용이 원인이 되어서 약 한 달 동안 농촌에 혁명화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였던 태영호 공사가 대한민국으로 망명하자 2016년 10월에는 외무성 궁석웅 부상이 협동농장 혁명화 처벌을 받았고, 외무성의 유럽담당 부서의 간부 4명이 지방으로 추방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이후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처형된 간부는 130여 명에 달하며 2016년에는 1월부터 9월 사이에만 64명이 공개처형 되었다고 합니다. 부정부패를 공포정치, 숙청통치의 도구로 활용하는 북한에서는 간부들이라고 해서 결코 편안한 지상낙원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밑바닥에서 생활고에 눌려 허덕이는 북한주민들의 삶은 부정부패와 뇌물로 인해 더 처참한 삶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