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숨겨진 진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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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동포 여러분, 1주일 후면 대한민국에서는 앞으로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전 국민적인 대통령 선거를 실시합니다. 이번에 치르게 되는 대통령 선거에는 14개 정당, 정치단체들에서 선출된 14명의 대통령 후보들이 후보등록을 마쳤고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됩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참가한 후보자들이 속한 당의 명칭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국민의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국가혁명당, 노동당, 새누리당, 새로운물결, 신자유민주연합, 우리공화당, 진보당, 통일한국당, 한류연합당 등 다양합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를 접하면서 수십 개의 정당이 존재하는 대한민국과는 달리 오직 노동당의 일당독재만이 존재하는 북한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지가 의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여러 정당들이 자기의 후보자를 선출하여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국민들의 민주적인 투표를 통해 배출하는, 공명정대한 선거를 말하지만 북한에서 거행하는 선거는 오직 노동당이 선출한 후보자 한 사람에 대해 찬반을 결정하는 비민주적 선거입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해방 후 북한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던 정치조직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대해서도 혁명역사 시간에 배워서 잘 아실 것이라고 봅니다. 이 명칭에도 ‘민주주의’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국호에도 ‘민주주의’를 넣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북한에서 해방 후에 결성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결성과 그 반동성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2021년 1월에 진행된 조선노동당 제8차 당대표자대회에서 조선노동당 규약이 새롭게 개정되었습니다. 새로 개정된 당 규약에는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 무력을 몰아내고 온갖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며, 일본 군국주의의 재침 책동을 짓부시며, 사회의 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하며,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 내용은 해방 후 1945년 10월 13일에 각 도당 책임일꾼들 앞에서 했던 김일성의 연설내용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설에서 김일성은 “광범위한 대중을 쟁취하고 적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면 공산당 대열을 강화하고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었죠.

해방 후 분단된 한반도에는 남과 북이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공산당 진영으로 분열되어 서로 다른 정치체제가 도입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공산권국가들과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의 냉전이 시작되면서 김일성은 공산적화통일을 위한 통일전선전략을 제시하였습니다.

김일성은 1945년 3월부터 진행된 미소공동위원회가 5월에 결렬되자 미국과 소련의 교섭으로 통일정부가 수립될 수 없다고 보고 북한지역에 우선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남조선에서의 민주화 혁명’을 목적으로 하는 ‘민주기지’를 창설해야 한다며 민주주의 근거지 건설노선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1945년 12월 17일 ‘모스크바 3상회의’ 결의로 한반도는 5년 동안 미국, 영국, 중국, 소련 4개국에 의한 신탁통치가 결정되자 남한은 이에 대해 전격 반대하였지만, 김일성은 소련공산당과 소련군정의 지시를 받들 것을 천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소련공산당의 앞잡이로서 자기의 본색을 드러낸, 소련군 출신 김일성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한 연설 ‘북조선공산당 각급 당 단체들의 사업에 대하여’에서 김일성은 “왜 우리에게 통일전선이 필요합니까? 그것은 전체 인민을 단결시키며 국내의 정치경제 생활을 빨리 정돈하며 우리나라를 통일된 민주주의적 독립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에 존재하던 조선공산당 서울시위원회도 22개 단체들과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연설에서 서울시위원회는 “동포들이여! 우리들의 임무는 무엇인가? 민주주의적 통일정권을 세워야 하며 일본제국주의의 남은 해독을 씻어 버리고 모든 봉건적 관계를 깨뜨리며 대산업을 일으켜 전민족의 경제생활 등을 향상하여 높은 문화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공통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는 ‘민족통일전선’을 급속히 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통일전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통일전선 안에서 공산당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공산당조직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김일성의 주장이었습니다. 김일성은 1945년 12월 18일에 진행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 집행위원회에서 ‘당의 공고화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습니다. 연설에서 김일성은 “통일전선에서 공산당이 주도권을 쥐기 위하여 당조직을 강화하고 당의 사상 의지를 강화하며, 당규율을 강화하고 당 간부 양성사업을 통해 훈련 양성하며, 제때에 대책을 강구하여 정책을 세울 수 있도록 보고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1946년 8월에 김일성은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 합동대회에서 ‘북조선로동당’ 창립에 대해 역설하면서 “오늘 북조선은 조선의 민주주의 개혁의 후방기지가 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발원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대남통일전선의 목적에 의해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은 ‘반미 구국통일전선’, ‘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 등 외곽정당 단체들을 앞세운 남북 간의 ‘협상대화전술’, ‘남한 내 전위조직 결성’, ‘대남공작원 남파침투’와 ‘무력도발’, ‘대남방송 및 체제 선전물 살포’와 ‘시각 매체를 이용한 선전활동’이 강화되었습니다.

소련공산당의 지시와 소련군정의 무력행사를 배경으로 북한의 통일전선은 한층 강화되었고 신탁통치 논쟁을 계기로 각 정당 및 사회단체들의 통합된 의견일치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독자적인 ‘통일전선조직’을 창설하고 이를 통해 ‘통일전선전술’을 이미 상당히 진전시킨 북한에서는 광범위한 통일전선이 형성되어갔습니다. 1946년 7월 22일에 진행된 북조선민주주의정당·사회단체대표회의에서 김일성은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위원회를 결성할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습니다.

이 연설에서 김일성은 “여러 민주정당과 사회단체의 공동노력에 의하여 북조선에는 앞으로 통일적 민주조선을 건설할 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닦아졌다”며 “여기에는 ‘직업동맹’, ‘농민동맹’, ‘민주청년동맹’, ‘여성동맹’, ‘예술연맹’ 등 376만 명이 참가하여 광범한 통일전선에 기초하여 참다운 인민의 정권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세웠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의 이러한 민족통일전선은 남한정치에 개입할 구실을 만든 기회가 되었으며 1946년 1월 31일 남한에도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그해 6월에는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과 남한의 ‘민주주의민족전선’ 두 통일전선체는 하나로 연합되어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결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70여 년 전에 결성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은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주목적으로 하는 정치조직이었으며 이들의 공산화 야망은 결국 1950년 6․25 남침전쟁을 불러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