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숨겨진 진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의 모순점

1990년 김일성이 최고인민회의에서 연설하는 모습.
1990년 김일성이 최고인민회의에서 연설하는 모습.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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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동포 여러분,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북한의 대남통일전략은 1980년대에 이르러 새로운 경지에 접어들게 됩니다. 김일성이 1980년 10월 10일에 개최된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에 보고에서 제시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은 한반도의 공산화를 위한 새로운 대남통일전략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것처럼 김일성이 제6차당대회 보고문에서 제시한 새로운 통일방안은 대한민국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며 공산당 활동을 합법화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북한당국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에 대하여 “남과 북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상호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 위에서 동등하게 참가하는 민족통일정부를 구성하고 통일 정부 밑에 북과 남이 권한과 의무를 지니며 각각 지역 자치제를 실시하는 방식의 연방국가를 수립하여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연방 형식의 통일국가에서는 남과 북이 같은 인원의 대표와 적당한 인원의 해외동포 대표를 세워 최고민족연방회의 및 연방상설위원회를 구성하여 지역 정부를 지도하고 연방국가의 전반적인 사업을 관할하면서 10가지 시정방침을 집행하게 된다고 강조했죠.

우리는 북한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하면서 내세운 소위 ‘남조선혁명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남통일전략의 핵심을 ‘반제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으로 규정하고 이 혁명을 달성하기 위하여 제시한 세 가지 과업이 공개되면서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을 붕괴시키고 한반도 전체를 김씨왕조의 지배하에 넣으려는 속심이 여실히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그 세 가지 과업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대한민국은 북한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의 창립방안을 거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연방공화국의 첫째 과업은 반제민족해방투쟁에서 걸림돌이 되는 미군을 철수시켜 자주독립국가를 세운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6․25남침전쟁을 미국과 한국군이 일으킨 북침전쟁이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역사적인 자료들은 김일성이 구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모택동을 찾아가 전쟁을 일으키려고 승인받은 사실이 드러난, 한반도의 공산적화를 위한 남침전쟁이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간한 ‘건군사’(2002)에는 1949년에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이 철수하게 된 이유와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킨 역사적인 자료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내용으로는 6가지 항목이었습니다.

첫째로, “한반도는 국제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소련이 북한을 남침시킬 가능성은 없다.” 둘째로, “중국인민해방군이 한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없다.” 셋째로, “북한의 군사력은 한국에 비해 열세이기 때문에 제대로 남침을 시도하지도 못할 것이다.” 넷째, “한국군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북한군에 비해 우세하다.” 다섯째, “미군은 철수 시에 많은 군사장비를 남겨놓고 갈 것이므로 한국군이 쓸 총탄 정도는 문제없을 것이다.” 여섯 번째, “로버츠 준장 등의 미 군사고문단이 한국군을 잘 이끌어 줄 것이고, 추가적인 군사원조도 있을 테니 안심하라.”

이러한 이유를 대고 미군은 1949년 6월에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주한미군 철수 이틀 전인 6월 27일에 한국정부는 미국주재 한국 대사 장면을 미국 대통령 트루먼에게 보내 “미군 철수는 시기상조다. 정 철수를 할 거면 그에 앞서서 한국에 대한 충분한 무기, 장비 지원이 필요하다”며 “그것 역시 무리라면 태평양 지역에 별도의 방위동맹이라도 신설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위에서 설명해드린 미군 철수의 이유는 한국정부가 미국에 보낸 조병옥 특사에게 미 육군성의 알버트 워더마이어 중장이 1949년 7월 7일에 대담을 통해 설명한 내용이었습니다.

미군의 이러한, 한국주둔 미군 철수는 한국을 공산화하려는 김일성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결국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발발했고 북한 인민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때로부터 30년이 지난 1980년 10월에 6차당대회에서 김일성이 제시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서 중요한 과업으로 제시한 미군철수는 또다시 남침전쟁을 일으켜 한반도를 김씨왕조의 통치하에 두려는 대남통일전략이었던 것이죠.

다음으로 북한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의 두 번째 과업은 한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법으로 규정한 국가보안법 폐지였습니다. 북한으로 말하면 국가안전보위부를 없애야 한다는 황당하고 무례한 요구였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적인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행위들을 막아 국내외의 불순한 국가정복세력들의 활동을 차단하기 위한 법이며, 특히 북한에서 파견한 남파 간첩들의 반국가활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국가안보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한국의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 내에 기생하면서 대한민국을 붕괴하려는 공산세력들과 남파 간첩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김일성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세 번째 이유로 공산주의 이념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인 통일혁명당을 주축으로 하는 혁명의 주력군이 양성되고 한국 내 공산당 활동이 합법화하기 위해서라도 연방제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김일성이 내놓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이 제시된 시점에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경에 대한민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에 의해 살해되고 대한민국은 정치 혼란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당하고 12․12 숙군 쿠데타로 군부를 장악한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대통령은 1980년 5월 17일에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게 되고 광주에서 일어난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대한민국은 국가 안보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붕괴시킬 시점이라고 단정한 북한당국은 반미, 국가보안법 폐지, 공산당 활동 합법화 등을 내세운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으로 한국의 청년학생들과 지하에서 대한민국의 붕괴를 꾀하던 반정부인사들, 남파간첩들이 총궐기하여 북한의 대남통일전략에 따라 활동하도록 했습니다.

북한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고 공산주의 사회도 아닙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봉건왕조처럼 대를 이어 왕권을 후대에로 세습할 수 없었기에 스탈린이나 모택동도 자녀들에게 권력을 세습하지 않았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진 북한의 봉건왕조는 국호마저 앞선 왕조의 조선을 그대로 옮겨 사용하면서 국제사회는 북한을 여전히 낡고 부패한 현대판 김씨왕조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북한당국은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하면서 조선왕조시대보다 더 낡고 반인민적인 봉건국가인 고려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과연 김씨왕조가 바라는 통일국가는 선진화된 자유민주주의국가가 아니라 김씨왕조의 영원한 부귀영화를 보장할 21세기의 고려왕조라고 생각하니 누가 이를 선뜻 호응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김씨왕조의 앞날은 망해버린 고려왕조나 조선왕조와도 같이 인민의 심판만을 기다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