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동포 여러분, 저는 이전에 북한의 반 인민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조선시대의 연좌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북한에선 지금도 시행하고 있는 김정은 시대의 연좌제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좌제는 가족 구성원 중에 한 사람이 죄를 범하면 그 가족과 심지어 친척까지 연대책임을 지우는 제도를 말합니다. 연좌제는 근대 형법상의 형사책임 개별화의 원칙이 확립되기 이전에, 고대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범죄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 자까지, 함께 형사책임을 지는 제도로 봉건사회가 붕괴되고 자본주의 공화제가 형성되면서 금지된 처벌 제도입니다.
조선시대 말기 1894년에는 갑오개혁 칙령으로 ‘범인 이외에 연좌시키는 법은 일절 시행하지 말라(罪人自己外緣坐之律一切勿施事)’는 일종의 형사책임개별화원칙이 선언됨으로써 연좌제가 폐지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김씨 왕조의 영원한 세습을 위해 봉건사회에나 존재하던 연좌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이것이 민주화 투쟁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많은 북한 주민들이 연좌제로 억울하게 죽어가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13조 3항에서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신설하여 연좌제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헌법에 따라, 만약 아버지나 형을 비롯한 가족 내 구성원이 국가를 전복하는 반국가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본인 당사자에게만 처벌하는 ‘형사처벌 개별화원칙’을 철저히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본인뿐 아니라 사돈의 8촌까지도 연좌제로 구속, 정치범관리소 수감, 해임철직, 추방, 출당 등 각종 처벌을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무고한 주민들이 죄 없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북한의 연좌제는 언제부터 생겨났으며 그 반동성의 여파는 얼마나 큰가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동아공영권을 실현하려는 야망으로 아시아 전 지역을 침략하고 야만적인 학살을 강행하던 일본이 미국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핵폭탄 투하로 1945년에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우리 민족이 해방되었다는 사실은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일제가 패망했지만 소련군의 군정이 실시된 북한에서는 스탈린의 지시로 소련군 붉은군대 88저격여단 대위 출신의 김일성이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와 북조선공산당 최고지도자로 등장하면서 북한에서는 여러 파벌 간 암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당시 북한의 파벌들로는 빨치산파, 소련파, 연안파, 국내파, 남로당파가 있었습니다. 이 5개의 파벌은 소비에트식 사회주의체제 건설이라는 공통된 목표 하에 북조선임시정부라는 하나의 커다란 정치적 집합체로 결집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굳혀 나갔습니다.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파들은 6.25남침전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전쟁이 끝나가던 1953년을 전후하여 제거되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면 20여만 명이 넘는 남조선 노동당 세력이 항쟁을 일으켜 조국통일이 달성된다는 박헌영의 제안을 듣고, 전쟁을 일으켰던 김일성은 전쟁 실패를 남로당파에 뒤집어씌워 숙청을 강행했던 것입니다.
1956년 8월 소련파 박창옥과 연안파 최창익, 윤공흠 등은 김일성의 독선적인 경제발전노선을 반대하여 공개적으로 반김일성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반당. 반정부, 종파분자로 숙청되면서 북한 역사에는 8월 종파사건이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남로당파에 이어 소련파, 연안파를 차례로 숙청했던 김일성은 1967년 북한 내각 부수상이었던 박금철을 중심으로 한 갑산파, 일명 국내파라고 불리던 세력까지 숙청하면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숙청된 세력들이 본인은 물론 일가족, 심지어 친척들마저 정치범관리소에 구금되면서 북한의 곳곳에 정치범관리소들이 생겨났고 1970년대 김정일이 후계자로 등장하면서 김씨 왕조의 영원한 세습을 위해 김평일과 김성애, 김성갑 등 곁가지 제거를 위한 정적 숙청과 연좌제로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정치범으로 숙청되었습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혁명사상을 주체사상으로 이론화하고 이를 노동당의 지도사상으로 공식화하면서 노동당 중심의 강력한 통치체제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에, 소위 간부계층에 대한 철저한 인사검증체계를 도입하였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봉건사회처럼 연좌제의 여파로 본인이 아무리 노동당에 충성하여도 정치, 사회 등 주요 직책에서 배제되었고 핵심계층에 속했던 사람마저 본의 아닌, 가족이나 친척 때문에 연좌제의 피해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로는 간부 선발에서 친가는 6촌까지, 외가는 4촌까지 검증하는 체계를 도입하게 되는데 이것이 훗날 연좌제 도입의 단초가 되었고 반당 행위에 가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숙청된 자들의 친가 6촌과 외가 4촌 전부를 정치범수용소에 감금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김정일의 업적쌓기를 위한 무리한 평양시 대건설공사와 낙후된 국가계획경제체계로 1990년대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하게 되었고 1990대 초 동유럽 공산권 국가의 붕괴로 외부지원이 끊기면서 북한 경제는 최악의 상태로 전락했으며,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기에 생존을 위한 탈북 행렬이 늘어났습니다.
현재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탈북민은 3만 4천여 명이 넘습니다. 만약 이들의 친가 6촌과 외가 4촌까지 모두 정치범으로 제거하게 된다면 북한의 간부사업에서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게 될 것임을 김정일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정일은 2000년대 이후로는 기존의 연좌제 범위를 당사자 본인과 직계가족만으로 한정해 정치범수용소에 감금하도록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도 존재하는 북한의 직계가족에 대한 연좌제는 그 적용 이유와 실행 방식에 있어서 유례가 없는 가장 반동적이고 반인륜적인 처벌 방식입니다. 김일성이 해방 후 모방하였던 구소련과 중국공산당도 북한 같은 가혹한 연좌제 처벌 방식을 채택하지는 않았습니다.
김씨 왕조는 우리민족은 예전부터 일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친척, 친우에 대한 애정이 깊어 정치와 업무 시에도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서로의 정을 나누는 특성이 있다는 것을 이용하여 이런 반인륜적인 연좌제를 도입하였던 것입니다.
연좌제는 용납될 수 없는 반인권적 횡포입니다. 김씨 왕조는 자신들에게 충실했던 사람일지라도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 또는 국가반역자로 몰아 처형하고 당사자의 직계가족은 물론이고 친척과 동료들을 정치범관리소에 감금하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감행하였습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는 구호를 제창하면서도 노동당의 노선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하여 본인은 처형되고 가족은 물론이고 친척과 동료들까지 감금되어야 하는 북한의 연좌제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탈북민들 중에도 할아버지의 과오 때문에 철없던 어린 나이에 정치범관리소에 수감되어 인간 이하의 천대와 멸시를 받았던 이들과 정치범관리소에서 정치범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던 보위부 출신 탈북민들도 있습니다.
이들에 의해 지구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북한의 정치범관리소의 실체가 드러났고 김씨 왕조가 저들의 반인민적인 통치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강행하고 있는 연좌제의 반인륜성도 폭로되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지금 당장이라도 연좌제를 폐지하는 길만이 통일 한반도에서 자신이 김일성과 김정일이 저지른 죄과로 연좌제 심판을 받지 않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며, 본인도 더 이상 북한 주민들을 정치적인 이유로 탄압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