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시간에는 북한에서 유명한 술로 잘 알려진 양강주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북한에서도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양강도는 감자로 유명한 고장이며 대표적인 특산물로는 들쭉가공제품이 있습니다. 블루베리의 일종인 들쭉은 한반도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식물의 열매인데 그 중에서도 백두산 화산재 위에서 자라는 양강도 들쭉은 다른 지역에서 나는 들쭉에 비해 사람의 건강에 좋은 안토시아닌 성분이 더 풍부하게 들어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북한은 1980년대 초 양강도 삼지연군 무봉노동자구에 800정보(ha)에 달하는 들쭉 밭을 조성하고 혜산시와 삼지연군, 백암군에 들쭉가공공장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삼지연과 백암 들쭉가공공장은 ‘고난의 행군’시기 파괴돼 생산을 못하고 있습니다. 혜산들쭉가공공장은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나 생산되는 제품은 들쭉술 정도가 전부입니다. 1980년대까지 혜산들쭉가공공장은 양강도 특산물인 들쭉단물, 들쭉발효주(와인), 들쭉술과 들쭉사이다 등 여러 가지 들쭉가공품들을 생산해 왔습니다.
혜산들쭉가공공장에서 만드는 백두산 들쭉술은 북한은 물론 중국과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가 붕괴됐음에도 혜산들쭉가공공장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이 공장이 김일성 일가를 위한 ‘9호제품’ 생산기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혜산들쭉가공공장의 ‘9호 제품’들은 이곳 제3직장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혜산들쭉가공공장 제3직장에 대하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혜산들쭉가공공장의 원료는 양강도 삼지연군 무봉노동자구에서 생산되는 들쭉입니다.
들쭉나무는 다 자란 크기가 1m정도인 떨기나무인데 8월말이면 열매는 1cm로 한국의 마트나 전통시장들에서 팔리는 블루베리와 형태는 꼭 같으나 크기가 훨씬 작을 뿐입니다. 백두산 들쭉은 보통 7월말부터 8월 중순 사이에 수확을 합니다. 일반 들쭉은 8~9월이 수확 철이지만 백두산 들쭉은 8월 중순이면 서리가 내리는 삼지연군의 추운 날씨 탓에 일반 들쭉에 비해 열매가 한 달 가량 빨리 익는 것이 특징입니다. 백두산 들쭉은 피를 맑게 해주고 기억력 유지에도 효과가 좋습니다.
또 백두산 들쭉은 산모의 건강회복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은 들쭉을 중국에 수출하면서 값이 너무 올라 엄두도 못 내지만 예로부터 양강도에 사람들은 산모의 면회를 갈 때 백두산 들쭉 원액을 선물로 가지고 가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혜산들쭉가공공장은 양강도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역사도 긴데 혜산시 송봉동 ‘꽃동지’ 봉우리 아래에 위치해 있습니다. 혜산들쭉가공공장은 김일성의 지시로 1961년에 건설되었습니다. 공장이 건설된 후 김일성은 두 차례나 현지지도를 하면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들쭉술을 프랑스의 꼬냑, 스코틀랜드의 위스키와 같은 세계적 수준의 술로 만들데 대해 지시했습니다.
이 공장에서 들쭉을 원료로 생산하는 와인을 들쭉발효주라고 부르는데 주정은 16%입니다. 이 외에 주정이 30%와 40%짜리인 들쭉술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들쭉발효주는 들쭉의 진한 향과 맛으로 인기가 높아 해외에 많이 수출되고 있습니다. 주정이 40%인 들쭉술은 들쭉을 넣어 발효시킨 뒤 증류한 술에 알코올을 넣어 연한 밤색을 띠는 술입니다. 백두산 들쭉술은 1980년대 재일 총련(조총련) 간부들과 총련 산하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북한을 방문할 때 연회석상에 공급되었습니다.
들쭉향이 나는 이 술은 와인처럼 마시다가 한두 잔에 취해버려 처음 맛을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혜산들쭉가공강장에서 생산되는 백두산 들쭉 제품은 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 산하 광명성총회사가 독점적으로 수출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수출품목으로는 들쭉원액과 함께 16%짜리 와인인 들쭉발효주, 40%짜리 들쭉술과 들쭉단묵(젤리)이 있습니다. 이 공장의 3직장은 북한에서 김씨 일가의 먹을거리인 ‘9호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직장은 직원들의 출입도 제한돼 있습니다.
3직장에서는 들쭉으로 술과 발효주(와인), 단묵(젤리), 단물(쥬스) 등 김일성 일가가 소비할 제품만 생산하기에 출신성분이 좋고 건강검진에 이상이 없어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직원들은 3달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아 이상이 없어야 합니다. 혜산들쭉가공공장 제3직장 직장장은 여성이었는데 저는 그의 남편 방세열과 친구지간이었습니다. 1987년 5월에 제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강원도 김화군에서 3대혁명소조 생활을 할 때 방세열은 김화군 원남리에 소조원으로 파견되었습니다.
3대혁명소조는 해마다 여름과 겨울, 두 번으로 나눠 휴가를 받는데 방세열은 휴가를 다녀 올 때마다 ‘9호제품’으로 생산된 들쭉가공품들을 가득 챙겨왔습니다. 저는 방세열을 통해 들쭉가공품도 일반제품과 특제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방세열은 들쭉술을 내놓으며 늘 “장군님(지도자)만 마시는 술”이라고 자랑하면서 자기 아내가 일하는 제3직장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훗날 저는 양강도 인민위원회에 배치돼 혜산들쭉가공공장 제3직장을 직접 돌아 볼 기회도 가졌습니다.
혜산들쭉가공공장에서 생산하는 일반 들쭉가공품은 꽃동지 봉우리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을 이용해 만들지만 제3직장에서 생산하는 ‘9호제품’으로 생산하는 들쭉가공품들은 북한에서 유명한 신덕샘물을 특별열차로 들여다 사용을 하고 있었습니다. 평안남도 룡강군에서 나오는 신덕샘물의 운반은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 간부 5과에서 보장해 주었습니다. 일반들쭉가공품은 겉으로 드러난 건물에서 생산을 하지만 제3직장은 따로 인민보위대가 지키는 초소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3직장은 꽃동지의 봉우리를 파서 만든 큰 인공 동굴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출입구는 자동차가 드나들 수 있는 철로 만든 대문과 사람이 드나드는 작은 출입구로 나뉘어져 있는데 내부는 여름철에도 두꺼운 내복을 입을 만큼 추웠습니다. 공장의 간부로부터 이곳 3직장을 지나가는 꽃동지의 샘물이 여름철엔 동굴 안을 차게 식혀주고 겨울철엔 온기를 보장해 준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제가 공장을 돌아보던 1996년은 ‘고난의 행군’으로 수많은 인민들이 아사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곳 직장자재창고에서는 ‘9호제품’에 들어갈 사탕가루(설탕)를 삽으로 퍼서 옮기고 있었습니다. 공장 간부들의 눈치를 봐가며 들쭉 단묵을 몰래 나눠 먹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측은했습니다. 인민은 굶어 죽는데 김씨 일가는 저렇게 배를 채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분노가 치솟기도 했습니다. 김씨 일가에게 공급되는 와인인 발효주는 이곳 3직장에서 17년간 보관 숙성을 시키고 멸균처리를 한 다음 가늘고 긴 술병에 포장됐습니다. 종업원들은 출근을 해서 퇴근을 할 때까지 멸균 마스크를 절대로 벗을 수가 없도록 규정되었습니다.
직장 내부는 기온이 다른 것만 빼면 동굴 속이라는 느낌이 전혀 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김씨 일가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제3직장이 없었으면 혜산들쭉가공공장도 ‘고난의 행군’ 시 양강도의 다른 들쭉가공공장들처럼 해체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혜산들쭉가공공장은 김씨 일가의 재산으로 명맥을 유지해왔습니다. 인민은 어떻게 되든 오직 김씨 일가를 위해 존재하는 사회, 김씨 일가의 노예들만 살 수 있는 세상인 북한의 실체를 혜산들쭉가공공장 제3직장만 돌아보면 금방 느끼게 될 것입니다.
혜산들쭉가공공장과 같은 인민의 재산을 북한의 인민들이 되돌려 받는 날, 저는 그날이 통일의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시금 약속드리며 지금까지 진행에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