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동포 여러분, 오늘은 1969년 12월 11일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된 대한항공의 여객기 YS-11기 납북사건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69년 12월 11일 오후 12시 25분경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을 태우고 강릉을 출발하여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이륙한 지 약 14분 만에 강원도 평창군과 강릉시 대관령 일대 상공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되었습니다. 결국 승객들을 태운 채로 함경남도 정평군 선덕리에 있는 선덕비행장에 강제 착륙하였습니다.
선덕비행장은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비행장으로 함흥시의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약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군용비행장입니다. 북한 평양방송은 사건 발생 약 30시간 뒤인 12월 13일 새벽에 대한항공 YS-11기가 대한민국 조종사 2명이 자진 입북하면서 비행기가 승객을 태운 채로 월북하게 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전 세계가 51명의 대한민국 주민들을 강제로 납치한, 북한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규탄하였고 국제사회에서 수세에 몰린 북한당국은 2달이 되어오던 1970년 2월 5일에 납북자들을 송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10일이 되는 2월 14일에 판문점을 통해 39명만 돌려보내고 승무원 4명과 승객 8명은 끝내 송환시키지 않았습니다.
사건 발생 초기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대한민국 여객기 조종사 유병하가 월북을 결심하면서 여객기와 승객들이 북한으로 오게 되었다고 발표했지만 송환된 39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고정간첩인 조창희가 한창기라는 가명을 사용해 대한민국에서 간첩활동을 하다가 북한 대남연락부의 지령을 받고 여객기 납북사건을 감행하였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단독 납북사건을 감행한 조창희는 북한의 지령대로 권총을 소지하고 여객기 앞쪽 좌석에 앉았다가 이륙한지 약 14분 후에 비행기 앞 선체에 있는 조종실에 침입해 권총으로 조종사들을 위협해 납북시켰던 것입니다.
대한항공 YS-11기 납북사건을 비롯한 북한의 한국인 납치행위에 대해 대한민국 통일부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KAL기 납치피해자 송환을 위한 대책협의회 등 여러 단체들이 유엔인권이사회 인권최고대표사무소 강제적·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에 납치사건 진정서를 제출하였습니다.
누구의 아들이자 딸이며, 부모인 11명의 납북자들은 고향인 대한민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안부도 모른 채 여전히 북한에 남아 그리운 고향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릴 거라고 봅니다. 미송환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과정에서 북한이 자진 월북할 의사도 없는 그들을 강제로 잡아두고 송환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여객기 조종사인 37세의 유병하 기장과 최석만 부기장은 자기 업무에 충실하고 가장으로 처자들에게 항상 따뜻한 아버지였고 23살의 성경희, 정경숙 여객승무원들도 그리운 아빠, 엄마를 한없이 존경하고 맡은 업무를 성실히 해왔던 대한민국의 평범한 회사원들이었습니다. 영동방송 PD였던 32세의 황원 감독은 어린 자녀들을 둔 다심한 아빠였고 같은 방송국의 카메라맨이었던 28세의 김봉주 촬영가, 49세의 임철수 씨, 강릉 합동인쇄소 대표인 48세의 이동기 씨, 한국슬레이트 강릉지점최정웅 대표, 국민운동 경기지부 장기영 지부장, 자혜병원 채헌덕 원장은 자기의 회사를 가지고 있거나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성실하게 일하던 대한민국 국민들이었습니다.
대한민국으로 송환된 사람들에 의해 북한에서 그들이 당한 고문실태를 알게 되자 전 세계와 남한 국민들이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북한 대남연락부는 승객들을 모두 한 사람씩 따로 분리하여 격리수용하고 반항하면 강제마취를 시키거나 전기고문을 하는 등 중세기적인 고문을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4시간 이상씩 강제학습을 시켜 세뇌시키려고 하였고 회유와 기만, 고문을 반복하면서 조종사들에게는 기자회견을 할 경우에 자진월북했다고 말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결국 12월 20일 공개된 기자회견에서 두 조종사는 자진월북을 했다고 거짓 진술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고문을 당했고 무서웠으면 강제납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진월북하였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는지는 청취자 여러분들은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북한 간첩 조창희가 여객기가 대관령 상공에 이르렀을 때 조종실에 들어갔고 그 직후부터 방향이 바뀌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강제납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죠. 그리고 서쪽으로 가던 여객기가 갑자기 북쪽으로 기수를 돌려 동해 상공에 이르렀을 때에는 2대의 북한 전투기가 여객기에 접근하여 방향을 북쪽으로 향해 가도록 위협비행을 했던 사실과 북한의 군용비행장인 함경남도 정평군에 있는 선덕비행장에 착륙했을 때 북한 간첩 조창희가 먼저 내린 것만 봐도 강제납북임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대한항공 YS-11기 납북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대한민국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항공기 탑승객에 대한 검문검색 강화', '공항 직원에 대한 사법권 부여', '민간항공기 승무원들의 무기 휴대 허용', '항공기 승객의 익명 및 타인 명의의 사용 금지' 등의 한층 강화된 항공기 보안 대책을 수립하였습니다.
당시 미송환자 중에 여객기 승무원이었던 성경희 씨가 32년만인 2001년 2월에, 평양에서 진행된 제3차 이산가족 방문단으로 북한을 방문한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이 공개돼 충격을 주었습니다. 미송환자 11명의 가족들은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북에 남겨진 자기의 부모나 형제들의 생사여부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송환자 중에 영동방송, 지금의 MBC 방송 PD인 황원 감독의 아들 황인철 씨도 이산가족 상봉을 마치고 돌아온 성경희 씨 어머니로부터 북한에 강제로 남겨진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살 때 아버지가 북한에 강제납북되는, 북한당국의 반인륜행위로 하여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아온 황인철 씨는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를 결성하고 대표로 활동하면서 누가 이산가족상봉을 하더라도 다른 미송환자들의 생사여부를 알아보자고 이미 약속을 했던 것이죠.
6.25남침전쟁 이후 북한에 납북된 민간인만 해도 94,121명에 달합니다. 2019년 5월 ‘북한에 납치·억류된 대한민국 국민 송환과 피해자 중심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촉구대회’가 열리고 1969년 KAL기 납치피해가족회, 6·25국군포로가족회,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노체인, 나우, 데일리엔케이, 물망초,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인권증진센터, 북한전략센터, 북한정보자유화국제연대, 북한정의연대, 성공적인통일을만들어가는사람들, 엔케이워치, 열린북한,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징검다리, 통일미디어, 통일아카데미, 휴먼아시아 등 북한인권단체들이 공동기자회견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들은 공동기자회견문에서 1969년 12월 11일 북한 테러범 조창희에 의하여 공중 납치된 대한항공 YS-11기 승무원 및 승객 11명을 포함하여 2000년까지 최소 516명의 대한민국 국민들을 국제법을 어기고 반인륜적으로 억류하여 수십 년 동안 가족과 갈라놓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사람이 제일이라고 하면서도 현대판 김씨 왕조의 영원한 세습과 구시대적인 적화통일야망을 버리지 못한 김정은과 북한의 특권족속들은 강제납북으로 보고 싶은 가족과 헤어져 남쪽 고향하늘만을 쳐다보는 그들 모두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