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숨겨진 진실]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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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동포 여러분, 1980년대에 이르러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린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전 세계인들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고도성장을 이룩했습니다. 결국 1988년에는 발전된 나라들에서만 개최하는 올림픽 경기를 대한민국 서울에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의 지시로 북한 대남통전부는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려고 하늘과 땅, 바다에서 무자비한 도발과 테러를 강행했습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10개월 전인 1987년 11월 29일에 있었던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입니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대한민국 여객기가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를 경유해 한국으로 오던 중 인도양 상공에서 공중 폭파된 사건입니다.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양곤에서 아웅산묘소 폭파사건을 일으켜 국제무대에서 테러국가로 지목된 북한 대남연락부는 테러방식을 그 누구도 모르게 한다는 전략으로 바꾸어 해외에서 대한민국 여객기를 폭파할 계획을 꾸몄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올림픽이 개최된다는 것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결정되자 김정일은 서울올림픽을 무조건 막으라는 지시를 대남연락부에 하달한 것입니다. 따라서 대한항공 폭파사건은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이 서울올림픽의 안전문제를 세계에 여론화하여 서울에서 올림픽경기가 개최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려 한 반인륜적인 테러사건입니다.

북한 대남연락부는 1980년대 초에 여성공작원들을 양성하기 위해 김일성종합대학과 평양외국어대학 등 중앙대학들에서 약 200여 명을 선발하여 테러훈련을 시켰습니다. 평양외국어대학에 재학 중이던 김현희도 여기에 뽑혀 테러범 공작훈련을 받게 되었죠. 마침내 1984년 7월 김승일과 김현희, 두 명의 북한 공작원들이 일본인 부녀로 가장하여 테러를 감행하기 위한 다양한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이 두 명의 공작원들은 테러를 완벽하게 거행하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해외 항공기의 상황, 공항의 검색 및 탑승 절차 등의 실습을 거치는 철두철미한 공작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1984년 8월 15일부터 1개월 동안 현지 적응훈련을 위해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거쳐 덴마크의 코펜하겐,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스위스의 제네바, 프랑스 파리 등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였습니다.

김승일의 딸로 가장한 공작원 김현희는 1962년 3월 11일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수동에서 아버지 김원석과 어머니 임명식 사이에서 태어나 평양외국어대학 일본어과를 재학하던 중에 공작원으로 선발되어 7년 8개월의 공작원 훈련교육을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쿠바주재 북한대사관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쿠바에서 생활한 경험도 있었던 김현희는 꿈이 외교관이 되는 것이었으나 공작원으로 선발되었기 때문에 자기의 꿈을 실현할 수 없었죠.

김현희는 1985년 1월부터 6월까지 일본인으로 완벽하게 가장하기 위해 일본에서 북한에 납치된 일본여성 다구치 야에코로부터 일본어를 더 심도있게 교육받았고 중국어도 집중적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1985년 7월부터 1987년 1월까지 중국 광둥성 광주시와 마카오 등지에 파견되어 중국의 언어와 생활풍습을 체득하는 등 장기간에 걸친 해외 공작원 교육을 받았습니다.

충분한 훈련을 통하여 파견준비가 완료된 김현희, 김승일 공작조에 1987년 10월 7일 김정일의 특별지시가 하달되었습니다. 대남연락부 부장을 통해 하달된 친필공작 지시문 내용이 대한민국 여객기인 KAL기 858편을 공중에서 폭파해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진행되게 될 서울올림픽을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시를 하달받은 김현희, 김승일 공작조는 11월 27일 19시 경, 별도의 국제열차편으로 당시 유고슬로비아의 수도였던 베오그라드에 도착한 최모 씨로부터 일본산 ‘파나소닉’ 라디오로 위장한 시한폭탄과 술병으로 위장한 액체 폭발물을 넘겨받았습니다.

김현희와 김승일 테러공작조는 폭발물을 넘겨받은 후, 다음날인 11월 28일 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출발해 아랍에미리트 수도인 아부다비와 태국의 수도 방콕을 경유하여 대한민국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는 대한항공 858기에 탑승했습니다. 당시 26살이었던 테러범 김현희는 쇼핑백에 넣어 소지하고 있던 시한장치 폭발물을 좌석번호 7B, 7C 선반 위에 올려놓았고 다음 경유지인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공항에서 몸만 빠져 나왔습니다.

테러범들인 김현희와 김승일은 여객기에서 내렸지만 서울까지 가는 대한항공 858기의 기장이나 승무원, 여객들은 선반에 테러범이 놓고 내린 폭발물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시 대한항공 여객기에는 해외에서 일하다가 귀국하는, 100 명이 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타고 있었죠.

대한항공 여객기는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출발해 다음날인 11월 29일 낮 2시경에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미얀마 양곤 관제소에 ‘정시 방콕 도착 시간과 위치정상’이란 최후 교신을 한 후 4분이 지난 낮 2시 5분경 공중 폭파되었고 승무원들과 여객 115명 전원이 공중폭파로 사망하는 대참사가 빚어졌습니다. 폭발 후 15일이 지난 12월 13일 미얀마의 양곤 동남쪽 해상에서 공기주입 펌프, 파손된 대한항공기용 구명보트 등 부유물 7점이 발견되었고 이로써 여객기가 비행 중 폭발에 의하여 추락되었다는 것이 최종 확인되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폭발한 여객기에 2명의 의문의 일본인이 탑승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대한민국 정부의 수사방향이 정해졌고 일본인 이름인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로 위장한 북한 대남공작원 김승일, 김현희에 대한 추적이 국제적인 공조 하에 진행되었습니다.

여객기가 폭파되고 3일 만인 12월 1일에 두 북한 테러범들은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되었으나 김승일은 독약을 삼켜 즉사했고 김현희도 담배로 위장한 독약을 먹고 자살하려고 했으나 바레인 경찰들에 의해 실패하게 되었죠. 김현희는 자신이 일본인이라고 했다가 여권이 가짜임이 밝혀지자 중국인으로 행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위조된 일본 여권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으로 송환되어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대한민국 정부에서 청산가리 앰플을 깨물어 자살하는 것은 북한의 수법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여 결국 12월 15일 밤 한국으로 압송되었습니다.

김현희는 중국인으로 자처하면서 한국말을 모르는 척 하려 했으나 수사관들이 “계속 거짓말을 한다”고 저들끼리 얘기하는 소리를 듣고 중국말로 “내가 무슨 거짓말을 하느냐?”라고 말하여 결국 한국말을 안다는 사실이 들키기도 했죠. 수사관들이 일본의 TV 브랜드를 말해보라고 하자 성급하게 ‘진달래’라고 하였고 수사관들이 “그건 북한제 TV야”라고 하자 그때부터 심문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증거들이 나오면서 김현희는 북한 공작원임을 시인했고 이 사실을 알자 김정일은 김현희 가족들을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보냈습니다.

김현희는 1990년, 재판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북한 대남연락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이유 등으로 전격 사면되었습니다. 그리고 1991년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라는 제목의 도서를 출간하여 대한항공 858 여객기 폭파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북한의 특대형 대남도발은 동족의 생명을 마구 희생시키면서라도 저들의 영원한 현대판 노예왕족국가를 유지하려는 김씨 일가의 반인륜행위의 극치를 낱낱이 보여주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