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현대화를 통한 세뇌 선전-보천보전자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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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동포 여러분! 1980년대 후계자로 공식화되면서 김정일이 강조한 것이 ‘혁명전통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하자’라는 구호입니다. 1983년 7월 22일에 왕재산경음악단을 창단한데 이어 2년 후인 1985년 6월 4일에 보천보전자악단을 창립하도록 한데는 혁명전통교양을 통한 백두혈통을 강조하려는 속심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설명해드린 왕재산경음악단에 이어 보천보전자악단의 설립배경과 악단의 구성, 활동내용 등을 살펴보면서 이 보천보전자악단이 김정일의 후계세습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보천보전자악단의 ‘보천보’는 1937년 6월 4일에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동북항일연군 소속의 제1로군 제2군 6사를 맡았던 김일성 소부대가 보천군에 있던 일본군주재소를 기습한 보천보전투를 기념하여 지은 명칭입니다. 김정일이 왕재산과 마찬가지로 보천보를 악단명칭에 붙인 이유는 항일 노투사들의 공적을 높여주어 환심을 사서 자기의 후계 세습의 정당성을 부각시키는데 있었습니다. 북한당국은 만수대예술단의 전자음악연주단에서 분리되어 창단된 보천보전자악단에 대해 “우리식의 전자음악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김정일은 보천보전자악단의 창단 배경에 대해 “음악 연주 수단과 연주 형식을 세계적인 발전 추세를 고려하였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조선노동당 출판사에서 출간한 김정일선집 10권에는 김정일이 음악예술부문 창작가, 예술인들과 한 담화 중에 “오늘 세계적으로 전자 공업이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전자기술을 이용한 여러 가지 악기들이 수많이 나오고 있으며 그것을 전문적으로 이용하는 전자 악단도 많이 나오고 있다. 사실 전자 악기는 최신과학기술의 산물로써 색깔과 음향, 리듬을 연주가의 요구대로 조절하여 연주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악기보다 형상을 더 색깔 있고 폭넓게 할 수 있는 좋은 점이 있다”고 강조한 것만 봐도 보천보전자악단 창단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전자 악기는 김정일의 지시로 1960년대에 만수대예술단에서 시범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고 보천보전자악단이 창단되면서 활성화되었습니다.

보천보전자악단을 창단하면서 지휘자와 연주자, 가수 등도 새로운 신진인물들로 구성하였습니다. 인민배우들인 전혜영과 김광숙을 비롯하여 리분희, 김경숙, 조금화, 김정녀, 윤혜영이 이 악단에서 잘 알려진 가수들입니다. 피아노 연주가들인 전권과 장정원, 엘렉톤 연주가들인 강철호, 강금철, 리문, 신시사이저 연주가들인 김문혁, 김승렵, 권경학, 전기 기타 연주가들인 송광, 박의현 등 연주가들도 잘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전문교육과정을 거쳤고 체계적인 훈련과 연습 과정을 거쳐 창단 성원으로 등용되었습니다.

김정일은 1995년 1월 1일에 중앙당 책임간부들과 한 담화에서 “보천보전자악단은 내가 1980년대부터 키워왔는데 1990년대에 와서 은을 내기 시작하였다. 보천보전자악단 배우들은 10대의 어린 예술인들을 데려다 한 10년 동안 키운 사람들인데 지금은 그들이 우리나라 음악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 내용은 악단 구성원들을 양성하는데 김정일이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왕재산경음악단 작곡가였던 리종오는 보천보전자악단 곡들도 작곡하면서 1991년 5월에 김일성상을 수여 받기도 하였고 보천보전자악단의 유명 배우인 전혜영도 19살 나던 1991년 11월에 공훈배우 칭호와 함께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 받았습니다.

보천보전자악단의 주요 전자악기로는 신시사이저와 엘렉톤, 전자 기타, 전자 베이스였습니다. 여기에 피아노와 드럼 등 악기들이 추가로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보천보전자악단은 소편성 악기팀과 행사공연 성격에 따라 신시사이저 4대, 전자종합악기 3대, 전기 기타 2대, 그리고 피아노와 드럼 등 악기들을 포괄하는 큰 규모의 악기편성연주팀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보천보전자악단 여성가수들이 경쾌한 전자악기 연주에 맞춰 몸을 흔들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 역시 북한주민들에게는 너무도 생소하였습니다. 노래는 독창보다 팀을 구성하여 소중창 형식으로 부르곤 하였는데 대표적인 팀 구성은 김광숙, 리분희, 리경숙, 조금화, 전혜영으로 구성된 5인조 가수팀이었습니다.

그들이 부른 노래들은 김일성 송가와 김정일 찬양가가 주를 이루었으며 여기에 조국에 대한 신념과 북한주민들의 생활을 반영한 노래들도 무대에 올리곤 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도 잘 알려진 보천보전자악단의 노래로는 전혜영의 <휘파람>과 <도시처녀 시집와요>, 리분희의 <녀성은 꽃이라네>, 리경숙의 <반갑습니다>와 <내 이름 묻지 마세요> 등이 대표적인 가요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활을 반영한 노래보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고 우상화선전에 활용된 노래들이 더 많다는 사실은 보천보전자악단이 새로운 전자악기들을 이용하여 체제 선전을 더 중요시 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가수별로 부른 노래들을 보면 김광숙의 <너보다 정다운곳 나는 몰라라>, <사랑의 봄빛>, <사랑의 미소>, <생이란 무엇인가> 등 백곡이 넘습니다. 리경숙도 <내 이름 묻지 마세요>, <인민주권가>, <수령님 바라시는 오직 한길에>, <우리는 수령님의 제자>등 50여 곡이 김일성송가, 김정일 찬양가입니다. 북한주민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아 온 가수인 전혜영의 가요들을 보더라도 그가 학생시절에 불렀던 <지도자선생님 고맙습니다>, <나는야 꽃봉오리>, <흰눈송이야>, <나는 소년단원>을 비롯하여 <김정일화>, <하나의 대가정>, <그 품을 못잊어>, <수령님과 장군님은 한분이시네>, <장군님 찬눈길 걷지 마시라>, <장군님 품은 우리 삶의 요람> 등 백곡이 넘는 노래가 김정일에 대한 충성가요들이었습니다. 당시 북한당국은 처음에는 녹음기 카세트에 이 노래들을 복사하여 평양을 비롯한 각 지역들에서 판매, 보급하였고 CD알이 나오면서 여기에 복사하여 앨범으로 ‘독창곡집’을 만들어 판매하였습니다.

조금화는 저음가수로서 북한주민들에게 유명하였습니다. 조금화가 부른 가요 60여 곡 중에서 <진도아리랑>, <강강수월래>, <토장의 노래> 등 몇 곡만 민요풍의 노래일 뿐 대다수의 노래들이 김정일 찬양가요였던 것입니다.

리분희가 부른 < 뵙고 싶어>, <젊음을 드리고 싶어>, <그 품 떠나 못살아>,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당중앙의 불빛>, 김정녀가 부른 <정일봉은 제일봉일세>, <장군님의 일요일>, <김정숙어머님 우리어머님>, <우리의 사회주의는 세계 제일 최고네>, 현송월의 <장군님과 해병들>, <우리의 심장은 하나>, <우리의 노래는 승리의 노래> 들을 봐도 보천보전자악단이 김정일 우상화선전의 최전선에 있었던 악단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보천보전자악단은 일본과 중국 등 해외공연을 진행하면서 그 나라의 노래들도 부르면서 북한체제에 대한 선전을 하여 왔지만 신시사이저 연주자 김원일의 숙청,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악단들의 등장과 함께 몰락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