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동포 여러분, 최근 전술핵 위협을 노골화한 북한은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발사와 전투기 위협 비행, 9·19 남북군사합의를 위반한 포병 사격 등 전례 없는 무더기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무모한 도발을 일삼고 있는 북한의 무력도발을 보노라면 30년 전 북한이 했던 ‘서울불바다’ 망언을 떠올리게 합니다.
1994년 남북한 회담에서 북측 수석대표였던 박영수의 ‘서울불바다’ 망언은 당시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북한의 반인륜적인 대남정책에 대한 비난은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1993년 3월 12일, 북한이 영변의 미신고 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요구에 불응하며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한반도에는 1차 북핵 위기 국면이 조성되었습니다.
한겨레의 종말을 의미하는 북한의 무모한 핵위협으로 국제사회의 시선은 한반도로 향했고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던 북한은 국제사회와 남한, 해외 민족 구성원들의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남북한 사이 정상회담 및 남북 간 현안 협의를 위한 특사교환과 이를 위한 남북한 실무대표 접촉에 끌려 나오듯 응해 나섰습니다.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대표들의 접촉이 중단과 반복을 이어가면서 8차까지 흘러갔고 1994년 3월 19일의 8차 접촉에서 북한 측 수석대표인 박영수가 회담 도중 이른바 ‘서울 불바다’ 폭언을 하면서 북핵 위기는 크게 증폭되었습니다.
그날 판문점에서 개최된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대표 제8차 접촉에서 북측 박영수 수석대표는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말아요"라고 말했고 이 말을 듣고 분격해서 사죄하길 바라는 대한민국 수석대표에게 "송 선생도 아마 살아나기 어려울 겁니다"라는 망언을 늘어놓았던 것입니다. 북한 수석대표는 이 말을 남기고 회담장을 일방적으로 퇴장하였고 이 소식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다시 한번, 북한에 대해 같은 동족을 향하여 살인적인 전쟁도 불사하지 않는 반인륜 집단임을 성토하는 기자회견과 시위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물론 지구촌의 정의를 소중히 여기는 전 세계의 인류는 21세기에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인, 동족상잔의 6.25남침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의 동족을 처참하게 희생시키고도 여전히 호전성을 버리지 않은 북한에 대해 적대감과 혐오감이 증폭되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마련된 남북한의 대화협상 자리에서 상대방을 향해 직접적으로 전쟁을 불사하겠다며 위협하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천인공노할 호전적인 발언으로 또다시 북한은 스스로 세계무대에서 비정상적인 국가라는 인식을 각인시키게 되었던 것이죠. 더구나 당시 유엔 회원국으로 갓 가입한 북한이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체제 존중과 무력 불가침, 정전협정의 준수를 확약하고 민족의 화해를 도모해 나가기로 합의한 상황에서 ‘서울 불바다’ 발언은 유엔 헌장과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 의지에 대한 신뢰를 기대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언론매체들은 ‘서울불바다’ 망언을 드러낸 북한에 대응해 강력한 군사안보태세를 정부에 주문했고 사설이나 기명 칼럼 등지에서 "북한에 본때를 보여 주자"는 규탄 글들이 넘쳐날 정도였습니다. 북한에 평화적이고 인도적인 지원 차원에서 차관과 원조를 줄 수 있었던 상황이 오히려 망언 한마디에 남북 특사교환이라는 회담자체를 포기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북한의 ‘서울불바다’ 망언으로 인해 북한에 돌아온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북측 수석대표 박영수가 ‘서울불바다’ 설을 운운한지 4개월도 안되어 김일성이 급사했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내린 듯 그해 여름은 유별나게 장맛비가 많이 내려 북한의 농사는 해방 이후 대흉작이 들어 전쟁을 치른 것보다 더 많은 북한 사람들이 굶어죽었습니다. 평화시기임에도 전쟁을 치른 것처럼 3년여 동안은 북한 전역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건강장수를 연구하는 만청산연구원에서 연구사로 근무하던 제가 휴가차 집에 갔다가 사람들의 시신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어 생각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한겨레, 같은 동족을 향해 던졌던 서울불바다 망언에 하늘이 노하여 김일성을 급사로 죽게 했고, 천기가 변덕을 부려 폭우로 농사를 망치게 하여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수석대표 박영수에게 이런 망언을 하도록 지시한 김정일을 저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1999년 6월 서해교전이 발생했을 때에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 차관급 회담에서도 박영수는 북측 수석대표로 참석해 “서해사태에 책임지라”고 말하는 등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곤 했습니다. 그런 박영수는 2003년에 천벌을 받아 제명에 못살고 죽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자기가 했던 ‘서울불바다’ 발언에 대해 사죄의사를 밝히기도 했죠.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해외학자 통일회의'에 참석해 “당시 대한민국이 대북 제재안을 유엔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었고 국방장관이 함흥의 핵시설 폭격여부를 거론해 만약 전쟁이 일어날 경우 서울도 불바다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이 바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뜻으로 와전됐다”고 변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 4월 3일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박정천 비서가 또다시 서울을 거론하는 발언을 하여 국내외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는 “만약 한국군이 그 어떤 오판으로든 우리 국가를 상대로 선제 타격과 같은 위험한 군사적 행동을 감행한다면 우리 군대는 가차 없이 군사적 강력을 서울의 주요 표적들과 남조선군을 괴멸시키는데 총집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민군 총참모부는 한국군이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대북심리전 방송을 위한 확성기들을 설치한 직후인 2010년 6월에도 중대 포고를 통해 "우리의 군사적 대응은 역적 패당의 아성인 서울의 불바다까지 내다본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서울불바다 망언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서울불바다 망언은 그때부터 또 다시 등장하곤 했습니다. 2017년 8월 8일 대한민국 해병대의 정상적인 사격훈련에 대해 북한은 "백령도나 연평도는 물론 서울까지도 불바다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함부로 날뛰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북한이 대한민국을 향해 말하는 서울불바다 망언은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대로 종이범의 처지인 자기들의 가련한 몰골을 드러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50년대 한반도 적화통일 야망으로 625남침전쟁을 일으켰으나 유엔군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정의로운 지구촌을 바라는 전 인류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김일성은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은 “우리 대에 조국을 통일하자”는 구호를 인민군에 하달해 호시탐탐 전쟁기회만을 엿보았지만 굳건한 한미일동맹과 대한민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오히려 체제 붕괴가 두려워 고민하다가 급사했습니다.
해마다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발간하는 국방백서에는 현재 남북한의 군사력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북한의 잠수함들은 구소련이 1950년대 설계해서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에 만든 로미오급 잠수함이며 공군 전투기도 노후된 기종인 미그-15와 미그-17이 대표적이죠.
그러나 대한민국 공군은 F-35A 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해 F-15K, KF-16 등 북한보다 한 세대 이상 앞서는 기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정찰위성, 중고도 정찰용 무인항공기, 고위력·초정밀 지대지미사일, 이지스 구축함(KDX-Ⅲ), F-35A, 한국형 전투기(KF-X) 등 핵심 군사능력 중심의 주요 전력증강 계획 등 군사력의 질적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선별적인 재래식 무기 성능 개량과 함께 핵과 미사일, 장사정포, 잠수함, 특수전 부대 등 비대칭 전력 증강에 집중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미국과 공조하여 '맞춤형 억제전략'을 토대로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한미동맹의 포괄적 미사일 대응 전략'을 더욱 굳건히 하고 있습니다. ‘서울불바다’에 앞서 ‘평양불바다’로 이어져 북한 전역이 잿더미로 타버리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에 김정은은 종이범처럼 으르렁대고만 있는 것이죠.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