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동포 여러분, 지난 시간에 김정일의 지시로 김정일의 처조카였던 이한영 씨가 1997년 2월 15일에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암살된 사건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5개월이 지난 1997년 7월, 북한으로부터 남파된 부부 간첩 최정남과 강연정은 3개월 만에 체포되었고, 그들의 증언으로 대한민국을 전복하려고 북한의 지령을 받으며 반정부활동을 해오던 민주민족혁명당이 일망타진되었습니다.
부부간첩 중 남편 최정남은 1962년 5월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태어나 1984년 4월 대학 재학 당시 간첩으로 선발되어 1989년 7월에 노동당에 입당했고 아내 강연정은 1969년 10월에 평양에서 태어나 1986년 9월에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간첩으로 선발되어 1994년 8월에 노동당에 입당하였습니다. 간첩훈련을 받으면서 부부간첩으로 파견하기 위해 두 사람을 결혼시키려는 대남연락소의 결정으로 이들은 1990년 11월에 결혼해 1992년 1월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도 남조선혁명을 완수한다는 의미로 ‘남혁’이라고 지었습니다.
부부간첩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 중반까지 거의 10년 동안 간첩훈련을 받았습니다. 정치대학으로 불리는 간첩양성학교에서 정치사상학습과 한국의 정치, 경제, 남한의 표준어 학습, 남한 교과서와 주간지를 이용한 시사교육, 한국 TV와 드라마·뉴스·오락 프로 등 시청각 교육, 체력 단련, 야전 생존 훈련, 통신 훈련 등 다양한 간첩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94년 11월부터는 중국 베이징, 심양, 연길 등을 오가면서 중국어 실습과 해외 환경적응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간첩들을 단신으로 파견하고 나머지 가족들을 북한에 인질처럼 남겨두었던 북한 대남연락부는 부부라면 한국에서 은신하여 활동하기 편리하다는 이유로 이들 부부간첩을 파견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권총 2정과 약 3만 달러의 공작금, 가짜 주민등록증과 가짜 경찰 신분증 등을 갖고 출발했습니다. 그들의 침투경로는 배를 타고 바다로 침투하는 것이었습니다. 선박으로 남포항을 출발한 간첩부부는 남과 북의 해군 작전 지역에서 벗어난 공해로 나가 남쪽으로 항해한 뒤, 제주도를 돌아 일본 대마도 부근 공해상에서 거제도로 접근했습니다.
북한 대남연락부는 당시 위성 기술력으로는 공해상에 나와 다른 일반어선들 짬에 끼우면 추적이 어렵다는 것을 이용해 무장한 침투 안내원 20명, 호송 안내원 3명을 탑승시켜 이들이 무사하게 한국에 상륙하게 하였습니다. 공해상에서 선박으로 이동한 간첩부부는 8월 2일 밤 9시경 거제도 앞 공해상에서 5톤 정도의 무게를 가진 반잠수정에 옮겨 탔고, 11시경 거제도 해안 500m 지점에서 수중침투장비로 갈아입고선 11시 30분경 대한민국의 경남 거제군 갈곶리 해안으로 상륙했습니다.
상륙한 후 최정남, 강연정 부부는 약 20일 동안 대한민국의 경상북도 경주시, 부산광역시, 광주광역시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은닉장소인 드보크를 설치하고 현지 적응훈련을 하고 나서야 8월 23일에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숙소를 정했습니다. 이 간첩부부가 받은 임무는 첫째로, 고정간첩들인 고영복과 심정웅에 대한 요해와 검열이었습니다. 검열을 마치고 심정웅에게 암호 해독법과 신형 무전기 사용법을 교육하고는 북한에서 조국통일상 수상 소식을 전해주며 유사시 서울 지하철을 마비시킬 방안을 알아내려 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인 고영복을 통해 당시 60살이었던 서울대 사회학과 김모 교수를 포섭하고 셋째로, 새로운 공작 대상자로 전국연합 산하 울산연합 정모 씨(35)와 전주시의원 박모 씨(34)를 포섭하는 것이 주 임무였습니다.
추가로 받은 임무는 김일성종합대학 총장과 노동당 국제비서 등 북한 고위직에서 근무하다가 같은 해인 1997년에 망명한 황장엽 선생의 거주지를 파악하고 암살 시도를 하는 것,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동향 수집, 비행기·열차·버스 시간표 수집, 경북대 김순권 교수가 개발한 우량 옥수수 종자 입수, 전자 주민등록증 입수 등도 있었습니다.
간첩부부가 6번이나 접선한 고정간첩 심정웅은 월북했던 삼촌의 영향으로 중학생 때부터 북한에 전향한 뒤 유사시 서울의 지하철망을 파괴할 목적으로 40년 가까이 지하철공사에 잠복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간첩부부는 심정웅에게 암호 해독법과 신형 무전기 사용 방법을 알려주었고 그가 조국통일상을 수상한 소식을 전했으며 김정일에게 바치는 충성의 편지를 쓰도록 해 편지도 받아냈습니다. 또한 유사시 지하철을 마비시킬 방법도 전달받았습니다. 간첩 심정웅이 고안해낸 서울지하철 마비 방법은 지하철에 고이는 물을 퍼내어 개천가 및 한강 등지로 방류하는 집수정 장치에 폭탄을 설치해 터트리는 방식으로, 한순간에 수백만 명의 서울시민들을 참수시키는 특대형 테러방식이었습니다.
간첩부부는 1997년 10월 21일 대한민국의 반정부 인사로 이미 북한에 흡수돼 활동하던 울산연합의 조직원 정모 씨를 접선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간첩부부를 접선한 정모 씨는 이들이 대한민국의 안기부가 보낸 요원이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보낸 것으로 착각하고 역으로 “남녀 2명이 찾아와 북한에서 왔으며 북으로 함께 가자고 말했다”며 간첩신고를 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안전기획부(안기부)는 신고를 받고 요원 파견을 한 적이 없었기에 북한 간첩의 소행으로 판단하고는 1997년 10월 27일 오전 11시 30분 울산 코리아나 호텔 커피숍에서 부부간첩을 검거했습니다. 현장에서 체포되자 강연정은 남편인 최정남을 향해 "여보, 여보…"란 외마디 소리를 냈고, 최정남은 별다른 반항 없이 수갑을 채우는데 응했습니다. 간첩부부는 체포된 후에야 자신들이 활동하면서 북한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고백하였습니다. 버스를 타면서 잔돈을 기계에서 자체로 받는 방법, 여성 생리대와 갓난아기의 기저귀를 분간하는 방법, 국수양념 치는 방법 등 북한에서 훈련 시 받지 못한 내용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말투 연습을 월북한 남한출신 교관들로부터 많이 받았지만 실제 대한민국에 파견되어 와서는 자신이 없어 식당에 가서도 대화를 하지 않고 서로 멀뚱멀뚱 쳐다본 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간첩부부가 체포되기 전에 감추어두었던 간첩장비들은 체포 이후에 발굴되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전국 각지에 6개의 은닉장소인 드보크를 매설해놓았는데 여기에서 나온 무기로는 체코제 권총 3정, 실탄 170발, 독총, 독약 앰풀 등 인명 살상 장비 10종의 205점이었고 무전기, 난수표 등 기타 간첩장비 54종까지 합하면 총 284점이었습니다.
당시 발견된 장소는 경북 경주시 민속공예촌 야산, 서울시 관악산, 서울 관악구 봉천동 장군봉근린공원 등이었습니다. 볼펜 끝을 몸에 대고 누르면 독침이 튀어나와 피해자를 즉사시키는 볼펜 독침, 액화 청산가리가 들어있어 깨물면 조금만 들이마셔도 사망하는 자살용 독약 앰풀 등도 발견되었습니다. 여간첩 강연정은 유사시를 생각해 접선하기 전에 독약 앰풀을 삼켰고 체포 후에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는 대변에 섞어 나온 독약 앰풀을 깨물어 먹고 자살했던 것입니다.
강연정을 감시하던 안기부 요원이 황급히 앰풀을 빼앗았지만 강연정이 고농도의 독극물을 순간에 들이마시고 현장에서 즉사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간첩들을 잡으면 내시경으로 검사하고 의료기기로 투시하여 적발하지만 그 당시로는 독약 앰풀을 미리 삼킨 것을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김씨 왕조의 대포밥이 되어 자기의 목숨을 값없이 바친 북한의 젊은 청춘들, 그 노예의 삶은 현대판 특대형 노예주 김정은에 의해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