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왕조의 갑오개혁과 폐쇄사회 김씨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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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동포 여러분,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북한에서는 일련의 경제개혁들이 실시되었습니다. '우리식 경제관리방법'과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로 대표되는 북한의 경제개혁 조치들은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 비하면 상당히 진전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죠. 그러나 여전히 북한의 이 같은 경제개혁이 중국이나 베트남 등 다른 나라들에서 진행된 개혁개방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으로부터 127년 전, 이조왕조시기에 있었던 갑오개혁 내용보다도 더 보수적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1894년에 있었던 갑오개혁에 대해 설명하고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폐쇄국가인 김씨왕조의 반인민성을 폭로하려고 합니다.

갑오개혁이 일어났던 1890년대 주변국 일본은 이미 서구문화를 받아들여 봉건적인 사회로부터 자본주의 사회로의 전환점에 있었습니다. 자본주의 산업경제의 틀이 세워지면서 항만이 준설되었고 등대가 설치되어 연안수송을 위한 항로가 정비되었으며 전신용 회선이 부설되어 통신망이 구축되었고 영국식 우편제도도 수립되었습니다. 철도가 부설되어 1872년에는 일본 최초의 철도가 개통되었고 '엔'이 일본 전영토의 공용화폐로 정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처럼 이조왕조나 중국 청나라 봉건왕조같은 낙후한 봉건국가를 뒤집어엎고 일본처럼 자본주의 국가를 세우려는 갑신정변이 발생했습니다. 청취자분들도 잘 아는 갑신정변으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 개혁파들에 의해 1884년 음력 10월 새로운 혁신적인 새 정부가 발족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의 속국처럼 조공을 바치던 이조왕조를 배격하고 자주권을 확립하여 독립국가로서 위상을 확보하며 문벌을 폐지하는 등 개화파가 제시한 개혁적인 정책은 3일 만에 청나라를 등에 업은 수구세력들에 의해 폐지되었습니다.

근대국가를 꿈꿨던 개화파의 갑신정변은 실패로 끝났고 김옥균과 박영효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죠. 선창 밑에 숨어 3일 만에 나가사키에 도착한 김옥균 일행은 일본에서 고단한 망명생활을 시작했고 이조봉건왕조는 이들을 죽이려고 꾀했습니다. 김옥균이 일본에서 1886년에 고종 왕에게 올린 편지에는 "청국과 일본은 모두 신용할 수 없는 나라로 조선은 결코 이들에게 의지하면 안 된다. 구미와 교제에 힘쓰면서 안으로 내정을 개혁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점을 강조했고 1894년 마지막 승부수로 당시 청나라를 이끌고 있던 이홍장과의 담판을 위해 청나라로 건너갔다가 조선에서 보낸 자객 홍종우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갑신정변 후 10년이 되던 1894년, 드디어 조선에서는 '갑오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갑오개혁은 1894년부터 약 19개월에 걸쳐 추진된 개혁 운동입니다.

1894년 6월 21일 고종 왕의 왕궁인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은 김홍집을 내세워 근대사회 형식의 내각을 수립하였고 '군국기무처'를 설치하였습니다. 군국기무처의 개화파가 추진된 조선의 서구화, 근대화 개혁은 정치·경제·군사·법률 등 사회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 넓은 범위의 개혁이었습니다. 갑오개혁은 '갑오경장(甲午更張)'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갑오경장에서 경장은 '정치적ㆍ사회적으로 묵은 제도를 개혁하여 새롭게 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갈아엎는 개혁에 비해 전반적인 틀은 바꾸지 않고 새롭게 변화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은 이틀 후인 1894년 6월 23일에 선전포고 없이 중국 청군을 기습하여 청일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갑오개혁으로 설치된 내각은 궁내부 설치와 의정부의 6조를 '8아문'으로 고치는 관제와 직무 개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궁내부를 설치한 것은 왕실이 의정부 업무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여 왕권의 약화를 노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정부의 6조를 8아문으로 고치면서 의정부의 3정승제를 폐하고, 총리대신 1명만 두는 체제로 변경하였습니다. 8아문은 국가 일반 행정과 지방 행정을 담당하는 내무아문, 외교를 담당하는 외무아문, 재정을 담당하는 탁지아문, 사법을 담당하는 법무아문, 교육을 담당하는 학무아문, 토목 공사를 담당하는 공무아문, 군사를 담당하는 군무아문, 농업·상업과 같은 산업 전반을 담당하는 농상아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서구문화를 받아들이고 산업화를 추진하여 군사분야에서도 동양의 맹호로 거듭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갑오개혁으로 봉건사회의 문벌제도가 폐지되었고 연좌제도 폐지되었습니다. 북한에서 현재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비롯한 선친들이 정치적으로 과오를 범하면 자식들도 정치범관리소에 끌려가는 연좌제는 어떻게 보면 역사를 거슬러 갑오개혁 이전으로 되돌아간 낡은 폭압제도라고 할 수 있죠.

10대에 결혼하던 낡은 봉건관습인 조혼이 금지되었고 과부의 재혼이 허용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분제 철폐였습니다. 갑오개혁에서 이조왕조가 건국된 1392년을 원년으로 하는 '개국기년'이 채택되어 중국 청나라 덕종의 연호인 '광서(光緖)'는 폐지되었습니다. 이것은 중국 청나라의 부속국가처럼 왕의 세습도 중국 황제에게 승인을 받고 해마다 중국에 바치던 조공국가에서 자주적인 독립국가로 되었음을 선포한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떻게 보면 중국의 속국에서 일본의 식민지로 바뀌는 과정으로 평가할 수 도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1894년 6월부터 1895년 4월 사이에 10달 동안 진행된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조선의 지배권은 일본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이조왕조시기에 화폐제가 등장하면서 쌀, 콩, 무명, 베 등으로 내던 조세들이 화폐로 내도록 하는 조치가 취해졌고 일본화폐가 통용되도록 하기 위해 외화사용도 허용되었습니다.

근대적인 경찰제도가 처음으로 실시되면서 경무청이 설치되었고 '경무청관제직장(警務廳官制職掌)'은 최초의 경찰조직법으로 일원화되면서 봉건사회에 존재하던 사법기구인 포도청이 폐지되었습니다.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하자 본격적으로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본 공사로 부임하고 있었던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가 20개의 조항을 내놓았습니다. 당시 일본의 지배권은 해방 후 북한에서 구소련 공산당과 소련점령군의 행세와 너무도 닮았습니다. 갑신정변으로 일본에 망명가 있었던 박영효가 내무대신으로 전격 임명되면서 2차 갑오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를 역사학자들은 '제2차 김홍집-박영효 연립내각시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제2차 갑오개혁은 일본의 침략의도가 내포되어 있기는 하지만 낡은 봉건사회의 유물을 없애고 당시로서는 선진화된 서구문화를 받아들인 매우 혁신적인 개혁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조왕조 제26대 왕인 고종에 의해 갑오개혁의 골자를 담은 '홍범14조'가 발표되었습니다.

홍범14조의 내용은 첫째로 "청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독립(自主獨立)의 터전을 튼튼히 세운다" 둘째로 "왕실의 규범을 제정하여 왕위 계승 및 종친(宗親)과 외척(外戚)의 본분과 의리를 밝히며" 셋째로 "왕은 대신(大臣)들과 의논하여 정치를 하며 왕비나 후궁, 종친이나 외척은 정사에 관여하지 못한다" 넷째로 "왕실에 관한 사무와 나라정사는 구분하여 진행한다" 다섯째로 "의정부(議政府)와 각 아문(衙門)의 직무와 권한을 명백히 제정하며" 여섯째로 "백성들이 내는 세금은 모두 법령(法令)으로 정한 비율에 의하고 함부로 명목을 더 만들어 불법적으로 징수할 수 없다" 일곱째로 "조세나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경비를 지출하는 것은 모두 탁지아문(度支衙門)에서 관할하며" 여덟째로 "왕실의 비용을 솔선하여 줄이고 절약함으로써 각 아문과 지방 관청의 모범이 되도록 하고" 아홉째로 "왕실 비용과 각 관청 비용은 1년 예산을 미리 정하여 재정 기초를 튼튼히 세운다" 열째로 "지방 관제를 빨리 개정하여 지방 관리의 직권을 제한하고" 열한 번째로 "나라 안의 총명하고 재주 있는 젊은이들을 널리 파견하여 외국의 학문과 기술을 전습 받으며" 열두 번째로 "장관(將官)을 교육하고 징병법(徵兵法)을 적용하여 군사 제도의 기초를 확정한다" 열세 번째로 "민법(民法)과 형법(刑法)을 엄격하고 명백히 제정하여 함부로 감금하거나 징벌하지 못하게 하여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열네 번째로 "인재 등용에서 문벌에 구애되지 말고 관리들을 조정과 민간에서 널리 구함으로써 인재 등용의 길을 넓힌다"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이렇듯 갑오개혁의 내용은 지금의 북한의 제도보다 더 선진적인 개혁을 담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조봉건국가에서 일제 강점기 식민지봉건국가로 존재하다가 해방 후 김씨 왕조에 의해 여전히 봉건왕조국가로 존재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낙후한 국가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다음시간에는 이조왕조의 을미개혁에 대해 설명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