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숨겨진 진실] 북한이 도발한 제2연평해전

0:00 / 0:00

북녘 동포 여러분, 지난시간에 말씀드린 북한이 1999년 6월에 도발한 제1연평해전에 이어 오늘은 그때로부터 3년이 되던 2002년 6월에 북한이 또다시 도발한 제2연평해전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02년 6월 북한이 제2연평해전을 도발할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제17차 국제축구경기대회인 FIFA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4년에 한 번씩 진행되는 월드컵은 전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경사로운 축제입니다.

각 대륙에서 예선경기를 치러 32개의 나라가 참가하게 되는 월드컵은 여기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그 나라의 위상을 떨치는 계기가 됩니다. 아시아에서는 대한민국과 일본이 매번 월드컵에 참가하는 나라로 세계인들의 촉망을 받고 있죠.

올해 중동의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는 22차 월드컵도 아시아 국가로는 대한민국과 일본, 주최국인 카타르 등 6개 나라가 참가하고 있습니다. 제2연평해전을 설명하면서 월드컵에 대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당시 북한이 해상도발을 할 당시 대한민국 팀이 월드컵 경기에서 4강에 진입하였던 경이로운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월드컵 최종 결승전을 하루 앞둔 2002년 6월 29일, 대한민국과 터키의 준결승전이 진행되던 날, 북한 해군 서해함대 8전대 7편대 소속 경비정들은 제1연평해전에서 당한 패배를 만회하려고 선제포격도발을 해왔습니다. 서해 연평도 부근 북방한계선(NLL) 남쪽 1.1km를 침범한 북한 경비정 684호와 388호의 85mm 전차포 사격에 대한민국 해군 고속정 4척이 교전수칙대로 대응하기 시작했고 대한민국 참수리 편대는 각 편대별로 경비정 1척씩을 맡아 쫓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경비정 684호를 맡은 대한민국의 김찬 소령이 승선한 358호정이 선두를 맡고 357정은 274m 정도 뒤에서 북한 경비정 쪽으로 접근하여 북한 경비정의 남하 항해를 차단하기 위해 북한 해군 경비정 684호의 전진 방향을 가로지르려 하자 북한 경비정 684호는 갑자기 속력을 줄였습니다. 대한민국 고속정 358호정의 뒤를 따르던 357호정은 갑자기 정지한 북한 경비정 684호와의 충돌을 피하려고 급히 방향을 틀었고 이때 두 함정의 거리 457m 되는 시점에서 북한 경비정은 경고사격 없이 선수의 85mm 전차포를 357호정에 사격하면서 교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앞서가던 대한민국 고속정 358호정은 뒤따르다가 북한 경비정의 포격을 받자 즉시 대응 사격을 하려 했지만 357호정에 가려 보이지 않아 일정 거리를 두고서야 북한 경비정을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 경비정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대한민국 고속정 357호정에서는 사상자들이 속출했습니다. 최초 보고에선 승선한 해군 28명 중 전사 4명, 부상 19명, 실종 1명이었지만 실종된 한상국 상사가 후에 바다에 침수된 357호정의 조타실에서 발견되고, 의무병 박동혁 수병이 후유증으로 사망하면서 6명 전사, 18명 부상으로 최종 집계되었습니다.

북한 해군 경비정 684호정의 85mm 전차포 선제포격이 있은 지 20분 만에 대한민국 고속정의 대응 포격으로 함정에 탑재되었던 모든 포탑들이 파괴되었고 포격 불능상태가 되었으며 갑판에 나와 있던 북한 해군들이 포탄에 맞아 모두 쓰러지는 모습이 목격되었습니다. 살아남은 북한 해군들은 발사관과 보총, 대대기관총 등의 소병기 공격만을 해왔지만 대한민국 고속정의 집중 공격으로 조타마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계속 빙글빙글 돌다가 예인을 받고서야 25분 만에 퇴각하였습니다. 대한민국 함정들은 북한 해군 경비정들이 퇴각하는 것을 레이더로 확인한 후 확전을 방지하기 위해 복귀하였지만 85mm 전차포 5발, 2연장 37mm 함포 19발, 4신 고사총 234발 도합 258발과 88식 보총, 73식 대대기관총, 발사관, 78식 저격보총, 31식 60mm 박격포를 포함한 각종 중화기 공격을 받고 격벽에 구멍이 뚫려 침수된 고속정 357호정은 기지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북한 해군 684호정은 대한민국 고속정 357호정의 좌현에 집중적으로 포격을 가하였는데 위치별로 보는 주갑판 상부에 122발, 주갑판 하부에 136발씩 피격됐고, 주갑판 하부 중 선체에 치명적인 흘수선(바닷물과 선체가 접하는 부분)에 모두 42발의 피격 흔적이 있었으며, 특히 85㎜ 전차포에 의한 피격 5발 중 2발이 흘수선 부근에 명중돼 축구공만한 구멍이 나있었습니다. 북한 경비정의 선제공격을 받은 대한민국 고속정 357호 해군들은 중구경 40㎜ 기관포 6발과 20㎜ 함포 674발을 발사하여 북한 경비정 684호정을 무력화하였고 대한민국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내고 퇴각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북한 해군의 제2연평해전 도발이 있은 후에 대한민국 해군은 강력한 응징을 위해 해군 교전 수칙과 함대의 화력 구성을 개선하였습니다. 함장의 지휘 권한을 강화하여 북한의 도발에 즉각 대응하도록 했습니다. 경고방송, 시위기동, 차단기동, 경고사격, 격파사격 등으로 복잡한 교전수칙을 간소화하고 시위기동과 경고방송을 동시에 하도록 하여 [경고방송 및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3단계로 단순화하였습니다.

제2연평해전 당시 윤영하 소령이 저격당한 함교 옆 부분에 방호판을 설치하였고 승조원들에게 지급되던 기존 구형 방탄모를 케블라 재질의 신형 방탄모로 교체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방부는 북한 도발에 강력대응하기 위해 신형 고속함 PKX를 개발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영해를 방어하기 위한 신형 고속함 PKX는 가스와 디젤 혼합 엔진을 장착하고 스크류 대신 워터제트 방식 추진체계를 도입하여 수심이 낮은 해역에서도 작전 수행이 가능하며 함선의 속도도 향상되었습니다.

16정의 PKX를 건조하면서 제2연평해전 함선의 이름을 전사자들의 이름을 달도록 해 첫 번째 건조함선은 윤영하함으로 붙였고 차례로 함선의 이름을 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2연평해전이 있은 후 15년이 되는 2017년에는 전사한 장병 6명의 아버지가 새로 건조된 고속함 6척의 명예 함장으로 위촉되어 전사한 아들의 이름을 딴 고속함의 명예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은 “군함으로 부활한 전사한 아들의 임무 수행 모습을 6용사의 부모님들이 자랑스럽게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면서 “위촉식은 제2연평해전 6용사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이어가겠다는 취지로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제2연평해전에 참전했던 ‘참수리 357정’의 정장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 씨는 “명예로운 일”이라며 유가족의 아픔을 헤아려 준 해군에 감사를 표하면서 “윤영하함을 볼 적마다 아들이 다시 살아나서 서해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승조원 여러분들이 윤영하와 함께 서해를 지키고 있으니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도발로 희생당한 북한군 해병들은 결국 김씨 왕조의 영원한 세습독재체제를 위한 대포밥으로, 노예군대로 젊은 청춘을 값없이 바쳤습니다. 최근 김정은이 자기의 딸과 함께 군부대 등 여러 곳을 시찰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자기의 자식은 귀중히 여기면서도 북한주민들과 청년들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희생을 요구하는 반인륜성에 경악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정은은 더 이상 북한의 청년들을 저들의 부귀영화를 위한 대포밥으로 내몰지 말아야 하며 10년의 지옥같은 군복무를 강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