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숨겨진 진실] 북한의 도발은 어떻게 변화했나

0:00 / 0:00

북녘 동포 여러분, 북한이 광복 이후 매해 수차례씩 대남 도발을 해왔다는 사실을 지난 시간들에서 설명드렸습니다. 북한의 도발은 해상과 공중, 휴전선 일대 등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고 2000년대 들어와서는 그 수위 역시 급격히 변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3대 세습, 현대판 김씨왕조 독재로 주민들에게 고통과 참화를 강요하고 있는 김씨 왕조는 영원한 권력 계승을 위해 가장 걸림돌이 되는 대한민국에 대해 끊임없는 도발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소련의 군사무기 지원과 중국 인민 지원군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6.25 남침전쟁을 일으켰던 김일성은 전후에도 한반도의 공산 적화 통일을 목표로 끊임없이 도발해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상태를 초래하였습니다. 이 같은 도발은 김씨왕조 독재 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내부를 결속하는 동시에 대한민국 내부에 갈등을 조성해 정부의 정통성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북한은 이를 ‘대남공작’또는 ‘대남혁명’이라고 부릅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대남도발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진 3대에 걸쳐 그 유형도 변화해왔다고 강조합니다. 김일성 시대의 도발 유형은 국지도발, 간첩침투, 요인암살, 납치 등 직접적인 테러와 도발이었다면 김정일이 집권한 이후에는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발사 시험, 사이버 테러 등 새로운 도발 양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푸에블호 납치사건(1968), 대한항공 YS-11기 납치사건(1969),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미수로 인한 육영수 여사 사망사건(1974),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1976) 등의 테러 및 납치 사건들은 김일성 시대에 벌인 대남 도발이었습니다.

김정일 시대에는 김일성과 김정은 시대의 도발 유형들이 혼재한 도발 양상을 보여줬습니다.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1983), 대한항공 858편 폭파(1986), 1995년 임진강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1996년에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9년과 2002년, 북한 함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일어난 제1차, 제2차 연평해전 등은 김정일 시대에 북한 대남연락부가 강행한 국지도발이었습니다.

김정일 시대 북한의 대남도발은 대량살상무기(WMD)를 활용한 도발로 그 유형이 바뀌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집권 후반기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강도 높은 도발이 이어졌습니다.

2000년 1월 김동식 목사 납북 사건, 2001년 9월 북한군 철원군 휴전선 월경 사건과 11월 27일 북한군 파주군 장파리 아군 초소 기관총난사 사건, 2002년 6월 제2 연평해전, 2003년 1월 북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 같은 해 2월 20일 북한 미그-29기 1대 공중침범 사건, 7월 경기도 연천 DMZ 기관총 발사 사건, 2004년 7월 14일 북한 경비정 NLL 침범 사건, 같은 해 10월 10일 북한 잠수함 동해 침투 사건과 10월 26일 연천군 남측 전방초소 철책선 절단 사건, 11월 1일 북한 경비정 3척 서해 북방한계선 침범 사건이 2000년대 초반기에 강행한 대남도발입니다.

2005년 2월 10일, 핵무기 보유 선언을 한 북한은 5월 11일에는 영변 5MW 원자로에서 8000개의 폐연료봉 인출 작업이 완료되었다고 발표했고 2006년 7월 5일에는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를 포함한 7기의 미사일을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발사장에서 시험 발사하면서 전 세계를 경악케 했습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은 2007년 5월과 9월에는 두 번에 걸쳐 예성강 댐이라고도 불리는 황강댐을 무단 방류하여 남한의 민간인 6명을 실종케 했습니다.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2009년 4월 5일 광명성2호 발사와 같은 해 5월 25일 2차 핵실험, 2009년 11월 10일 대청해전 등은 김정일 집권 후반기의 대표적인 대남도발입니다.

북한은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후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면서 핵무기 개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고 동시에 핵무기를 장착해 발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개발 및 시험에 박차를 가하면서 대량살상무기(WMD)에 의한 도발로 그 유형이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첫 핵실험에 이어 2009년 2차 핵실험을 강행하여 두 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한 김정일은 1998년 첫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에 이어 2006년과 2009년에 2차와 3차 장거리미사일 발사시험을 감행하여 살아있는 생존기간에 핵실험 두 번, 장거리 미사일 3번으로, 모두 5회의 대량살상무기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핵과 미사일 발사 시험, 사이버테러 그리고 언론을 통한 공격적인 ‘말폭탄’ 테러 그리고 생화학무기의 일종인 독총과 독침 등 그 도발양상이 김정일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김정일은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모습을 드러냈던 1980년부터 2011년까지 30여 년 동안에 2번의 핵실험을 강행했지만 김정은은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에 이어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 같은 해 9월 9일 5차 핵실험, 2017년 9월 3일 6차 핵실험을 강행해 정권을 잡은지 6년 동안에 4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하였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오면서 그 도발 양상과 규모가 크게 변했습니다. 1984년 4월에 처음 미사일 발사 시험으로 대한민국을 위협한 북한은 김일성 생존 시에는 8차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김정일 시대에 들어와서는 26차에 달했고 김정은이 집권한 2011년부터 올해 2022년 10월까지 사이에 131차에 달해 김정은은 미사일 광신자라 불리며 미사일 발사시험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2016년에 2번의 핵실험과 23차의 미사일 시험을 강행한 김정은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만해도 27번의 미사일 도발을 강행하면서 막대한 비용을 미사일 무기체제 개발에 탕진하였습니다. 김정은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발사한 11차례의 미사일 비용을 전문가들이 따져본데 의하면 달러로 약 1억 8,500만 달러(한화로 약 2,257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북한에서 개발한 단거리 탄도 미사일인 순항미사일 1대 비용이 약 300~500만 달러, 중거리탄도미사일인 경우 1대에 약 1000~1500만 달러, 대륙간탄도미사일인 경우 1대에 약 2000~3000만 달러가 소요된다는 국제적인 기준으로 추산된 수치입니다.

또 올해 10월까지 27차에 걸쳐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에 들어간 비용을 현재 국제시장 쌀 가격으로 계산하면 약 쌀 100만 톤을 살 수 있는 돈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것은 한 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을 초과한 양으로 김정은이 2012년 4월 북한의 최고 지도자로 집권하면서 북한 주민들을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던 말은 망발 수준이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사이버 테러라는 새로운 유형의 도발이 성행해졌다는 것도 비밀이 아닙니다. 2009년 7.7 디도스 공격, 2011년 3.4 디도스 공격과 대한민국 농협 전산망 파괴 등이 대표적인 북한 도발 사이버테러사건입니다.

북한 대남연락부는 사이버테러를 통해 대한민국의 방송사와 금융사를 마비시키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정부 주요인사들과 탈북민 인권활동가들의 이메일에 접근하여 해킹메일을 통해 사이버 공격의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비해 경제력이 수십 배에 달하고 최강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기술력과 군사력에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잘 아는 김정은은 막대한 돈을 탕진해서라도 현대판 김씨 왕조의 영원한 계승만을 꿈꾸지만, 북한 주민들이라고 하여 영원한 노예로 살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