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숨겨진 진실] 대청해전

사진은 지난 1999년 6월 15일 오전 연평도 인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접지역에서 발생한 제1연평해전에서 해군 고속정(오른쪽)이 선제공격한 북한 경비정과 충돌하는 장면.
사진은 지난 1999년 6월 15일 오전 연평도 인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접지역에서 발생한 제1연평해전에서 해군 고속정(오른쪽)이 선제공격한 북한 경비정과 충돌하는 장면.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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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동포 여러분, 김일성의 한반도 공산화 야망으로 일어났던 6.25남침전쟁으로 남과 북의 온 강토가 잿더미로 변했던 1950년대 초반,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내년까지 70년 동안 북한의 대남도발은 해마다 그 강도가 높아졌습니다. 북한전문가들은 이러한 북한의 대남도발 행태들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오면서 변화했지만 대남도발의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김씨 왕조 독재체제의 영원한 세습을 위한 도발로 남과 북의 무고한 주민들과 군인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지상과 해상, 공중 등지에서 일어났던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인 무력충돌은 항상 북한의 선제적인 대남도발로 일어나곤 하였고 테러, 간첩파견, 납치, 핵실험, 미사일발사 등과 군사비로 천문학적 숫자에 달하는 국고가 탕진되어 북한은 여전히 경제난 회복은커녕 지구상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로 전락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말씀드릴 대청해전도 북한 인민군 해군 경비정 한 대가 서해 앞바다 대한민국 대청도 동쪽 북방한계선을 넘었다가 발생한 도발입니다. 1999년과 2002년에 북한 해군이 대한민국 영해 연평도 해상에서 도발하였던 해상도발에 이어 발생하였기에 대청해전은 다른 말로 제3연평해전으로 불렸습니다.

2009년 11월 10일, 북한 인민군 경비정은 황해남도 앞바다 남쪽 대한민국의 영해상에 있는 대청도 인근 앞바다에서 북방한계선을 넘어왔다가 남과 북의 해군이 해상전투로 맞붙게 되자 8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다른 함선에 예인되어 북상하였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은 한명의 사상자도 나지 않았으며 함선 외부격벽이 파손되었고 교전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되던 11월 17일,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에서 공식적으로 이 해전을 대청해전이라 명명하였습니다. 당시 일부 신문사들로부터 제3연평해전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대청도 인근에서 일어난 해상교전은 연평도 인근에서 일어난 교전이 아니기에 대청해전으로 부르게 되었던 것이죠.

좀 더 구체적으로 당시의 북한 해군 경비정의 침범행위와 그로부터 벌어진 해상교전 실태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2009년 11월 10일 오전 11시 27분, 북한 경비정 한 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여 대한민국 영해에 있는 대청도 동쪽 11.3 km 지점까지 남하하였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은 남침한 북한 경비정에 5차례 경고방송을 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자 경고사격을 가하였습니다. 경고사격은 조준을 북한 경비정이 아닌 허공에 대고 하는 사격이었기에 그때만이라도 북한 경비정이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갔더라면 교전으로까지 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지난 시간들에 했던 방송을 통해 제1연평해전과 제2연평해전도 북한 해군의 선제도발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1999년 제1연평해전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의 해상도발에 대한 대한민국 해군의 대응규칙은 경고방송에 이어 퇴각요구 -> 시위기동-> 차단기동-> 경고사격 -> 위협사격 -> 격파사격 순이었습니다.

결국 7가지의 순차적인 대응 교전규칙대로 하려고 한다면 상부에 대한 보고와 위에서 하달되는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시간은 물론 순차가 많다보니 먼저 선제공격을 당하고도 보복하기에는 시간적으로 제한이 있었습니다.

제1연평해전에서 교훈을 찾은 대한민국 해군은 해상 교전규칙에서 종전의 2가지의 순서를 없애고 경고방송에 이어 시위기동-> 차단기동-> 경고사격-> 격파사격'으로 변경했으나 2002년 북한 해군의 제2연평해전 도발 이후에는 다시 교전규칙을 더 간소화하였습니다. 제2연평해전이 있은 후 2년이 지난 2004년에 대한민국 해군이 변경한 해상 교전규칙은 종전의 7가지에서 3가지 순차로 축소한 규칙으로 경고방송 이후에 북한이 응하지 않고 도발을 가해온다면 경고사격 -> 격파사격' 순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북한의 대남도발에 대한 강한 응징을 결정한 대한민국의 교전규칙으로 북한 해군은 대한민국 해군에 완전히 압도당하면서 대패하였던 것입니다.

2009년 11월 10일 10시 33분 대한민국의 백령도에 있는 레이더기지에서 백령도 동북방향 11km 부근에서 기동하는 인민군 해군 경비정 383호가 포착되었습니다. 그리고 북한 서해바다 영해에 있던 이 경비정이 11시 20분경에 북방한계선을 향해 남쪽으로 남하하는 것이 포착되었습니다.

항시적으로 북한의 해상도발에 대처해 가동되고 있는 레이더로 북한 해상의 배들과 해안에 정박한 북한 경비정들과 심지어 어선들까지 감시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해상경계수준은 최신 장비들을 이용하고 있기에 세계 최첨단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침하자 대한민국 해군은 11시 22분에 국제공동상선통신망을 통해 "귀측은 우리 해역에 과도하게 접근했다. 즉시 북상하라"고 경고했고 이에 응하지 않자 다시 반복하여 경고통신을 전했지만 여전히 북한 경비정은 남침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국제공동상선통신망을 통해 2번에 걸쳐 경고통신을 했지만 응답이 없자 대한민국 해군은 인근 해역에서 경계근무 중인 참수리급 고속정 2개 편대 4척과 울산급 호위함인 전남함 1척을 급파하였습니다. 제1, 제2연평해전에서 패배를 했던 북한 해군은 수치를 만회하려고 이미 계획한대로 남하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11시 27분 경 결국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여 대한민국 해상 수역으로 넘어왔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은 즉시 "귀선은 우리 경고에도 침범행위를 계속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변침하지 않을 시 사격하겠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귀선에 있음을 경고한다"고 2차에 걸쳐 경고 방송을 하였지만 북한 경비정 383호는 이를 무시하고 남하를 계속했습니다.

북한 경비정이 남침한지 5분이 지난 11시 32분에 대한민국 해군은 경고사격을 알리는 경고통신 1회 실시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 경비정은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을 무사하면서 남쪽해상으로 2.2km까지 남하하였습니다. 대한민국 해군 참수리 325호는 북한 경비정에 접근해 전방 1km 지점에서 20mm 4발의 경고사격을 하였고 북한 경비정은 25mm와 37mm 포로 대한민국 함선을 향해 50여 발의 조준사격을 가해왔습니다.

북한 경비정이 쏜 조준사격으로 대한민국 군함의 좌현 함교와 조타실 사이에 포탄들이 명중되었고 이에 대한민국 해군은 새로 교정된 교전수칙대로 즉각적인 격파사격을 가했습니다. 순식간에 20mm와 40mm 함포 등 약 4천여 발이, 남침하여 도발하던 북한 경비정에 가해졌고 북한 경비정 383호는 함포와 기관포들이 파괴되어 더 이상 교전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반파된 북한 경비정은 가까스로 북방한계선을 넘어 퇴각했지만 다른 함선들이 예인해서야 북한의 인근 기지로 귀항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북한 해군 경비정 383호는 완전히 반파되었고 북한 해군 8명이 사망하였지만 대한민국 해군은 1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함선 외벽에 15발의 탄흔자리만 났던 것입니다.

대청해전에서 북한 해군은 먼저 도발을 하였다가 패배를 했지만 이 사실을 북한주민들에게 알리기에는 저들도 창피했던 모양입니다. 당시 북한의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언론매체들은 최고사령부의 이름을 빌어 “남조선 해군 함선이 경고사격은 없이 귀대 중인 인민군 해군 함선을 뒤따르며 발포했고, 교전에서 패하자 달아나면서 불질을 했다”는 황당한 거짓말 보도를 했습니다.

2022년 미국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발표한 세계군사력 순위를 보면 대한민국은 세계 6위인데 비해 북한은 30위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최신 전투기들과 전차들을 뽈스까(폴란드)를 비롯한 전 세계나라들에 수출할 정도로 군사력이 막강한 대한민국에 함부로 덤벼들다가는 그것이 북한의 초토화에 이어 김씨왕조 독재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