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묵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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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교류와 사람들> 시간입니다.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은 지난 2004년 4월 남북이 의향서를 체결하고, 2005년 2월 남과 북의 편찬위원들이 금강산에서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 결성식을 가짐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편찬 사업은 5.24조치 이전까지 계속됐습니다.

5.24조치로 중단되었던 사전편찬 사업이 최근 남측 관계자들의 방북으로 재개됐습니다. 오늘은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김학묵 사무처장을 만나 편찬 사업의 의미와 그 과정을 알아봅니다.

기자: 처장님, 안녕하세요?

김학묵: 네, 안녕하세요. 김학묵입니다.

기자: 지난 6월 25일 개성 시내에서 북측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얼마 만에 만나신 겁니까?

김학묵: 약 7개월 전이죠. 그러니까 2013년 11월 중국 선양에서 북측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다만 개성이나 북측 지역에서 만난 것은 2011년 11월 이후 2년 반 만에 이뤄진 겁니다. 사실 남북관계가 좋은 흐름으로 갈 때는 지역을 크게 가리지 않았습니다만, 남북관계가 순탄하지 않을 때는 그 영향을 받아 주로 해외에서 만났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기자: 이번에 만나서 어떤 얘기들을 나누셨습니까?

김학묵: 이번 만남은 겨레말큰사전 남북 공동편찬회의 개회 일정을 협의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은 2005년부터 시작됐는데요. 2009년까지 매년 4차례씩 남북 양측의 편찬위원들이 정기적으로 공동회의를 열어 함께 편찬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안타깝게도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공동 편찬회의가 열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작년 말부터 회의 재개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이번에 개성에서도 다음 공동편찬회의 일정에 대한 논의를 계속 하게 됐습니다.

기자: 그러면 다음번 만남은 언제 이뤄집니까?

김학묵: 지금 세부 일정을 서신 교환으로 협의 중입니다만, 7월 말에서 8월 초에 중국 선양에서 남북의 편찬위원들이 참석하는 공동편찬회의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 회의가 개최되면 겨레말큰사전 남북 공동편찬사업을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방대한 사업으로 완성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사전 편찬의 의미,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김학묵: 겨레말큰사전은 남북은 물론 해외동포들이 사용하고 있는 겨레어를 보존하는 사업입니다. 남북과 해외동포들의 언어를 포괄하는 최초의 사전이 될 것입니다. 또 남북의 학자들이 남북 언어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언어 동질성을 회복하고 나아가 언어생활의 통일도 준비하게 됩니다. 흔히 언어는 정신과 문화를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은 결국 민족어를 보존하고 가꾸는 작업으로 우리 겨레의 얼과 문화를 지키고 보존하는 의미도 크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기자: 겨레말사전 편찬은 남북이 각각 맡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간 어느 정도 진척됐습니까?

김학묵: 본래 목표는 올해 초에 사전이 나오는 것을 계획했었는데요. 5년 가까이 남북 공동작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업 기간을 2019년 4월까지 연장한 상태입니다. 다만, 남북 공동회의가 열리지 않는 기간 동안, 집필과 연구 등 나름대로 사업을 계속 추진해왔습니다. 현재까지 전체적으로 절반을 넘은(66%) 진행률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남북한 간에 회의가 재개되고 또 안정적으로 지속되어야만 이후의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자: 편찬 작업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김학묵: 어려운 점은 분단의 특수성에서 생기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은 남북의 학자들이 직접 머리를 맞대고 진행하는 사업입니다.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사업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 영향으로 직접 만날 기회가 줄어들고 그 결과 사업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같은 맥락일 수 있습니다만, 필요할 때마다 만나서 의견을 나누고 사전의 원고도 수정하고 개선하고 해야 하는데 남북관계가 좋은 때라고 하더라도 분단 상황으로 그럴 수 없고 1년에 몇 차례만 만나서 짧은 시간에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어려운 점입니다. 애초 사업을 시작할 때 개성에 가칭 '겨레말의 집'이라는 공동사무소를 두어 남북의 학자들이 같이 머물면서 작업을 한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만, 실현되기에는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북의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민족적인 과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남북 간의 어문 규정도 다를 텐데, 이 부분도 짚어주시기 바랍니다.

김학묵: 쉽게 말하면 남과 북의 맞춤법이 많이 다릅니다. 띄어쓰기 방법이나 외래어 표기법(남쪽은 주로 영어식, 북쪽은 러시아식을 따른 데서 오는 차이)이 다르고요. 대표적으로 두음법칙 문제가 큰 차입니다. 예를 들어 남쪽에서는 '여자'라고 하지만 북쪽에서는 '녀자'라고 하는 것이죠. 또 사이시옷 문제도 큰 차입니다. 남쪽은 사이시옷을 붙여서 '시냇가'라고 표기하지만, 북쪽에서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고 '시내가'라고 표기합니다. 이들 차이 중에서 특히 두음법칙 문제와 사이시옷 문제가 남북 사이에 쟁점이 큰 사안입니다. 앞으로 공동회의가 재개되면 서로 의견을 나누며 해결해가야 할 사안입니다.

기자: 편찬 사업을 위한 예산 마련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김학묵: 사전 편찬 사업은 매우 방대한 사업입니다. 또 남과 북이 공동으로 편찬하는 사업이기에 더욱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특히 이 사업은 수익을 올리는 사업이 아니라 공익적인 사업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큰 비용을 민간이 조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점이 충분히 이해되면서 민족적으로 필요한 사업을 남과 북의 당국이 직접 나서서 지원을 하기로 고위급회담(장관급회담)에서 합의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남쪽에서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지원하는 법이 2007년 4월에 제정이 되었고, 그에 따라 매년 사업에 필요한 예산을 남북교류협력기금에서 지원받고 있습니다. 사업이 계속 진행된다면 다행히 예산에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기자: 끝으로 겨레말큰사전을 남북이 함께 편찬하게 된 사연이라고 할까요. 배경은 무엇입니까?

김학묵: 1989년 문익환 목사께서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풀어야겠다는 의지로 방북해서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익환 목사님은, 시인이기도 하셨는데요. 우리말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대단히 크셨습니다. 그래서 그 회담 때 남북이 함께 통일국어사전을 편찬하자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남북관계 상황에서는 사업 진척을 이루기는 힘들었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여러 분야에서 남북교류가 이뤄지면서 이 사업이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2004년에 문익환 목사 기념사회인 통일맞이와 문익환 목사님의 부인이신 박용길 장로님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사업 제안을 다시 하면서 이 사업이 실행에 옮겨집니다. 이후 여러 차례 실무적인 논의 끝에 결국, 2005년 2월에 금강산에서 남북의 언어학자들과 사전편찬인, 그리고 모국어를 다루는 문학인들이 함께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를 결성하고 지금까지 사업을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기자: <남북교류와 사람들>, 지금까지 김학묵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을 만나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처장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학묵: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