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자유아시아방송의 기획 프로그램 ‘더 나은 보건, 복지 세상’ 시간입니다. ‘더 나은 보건, 복지 세상’은 사람 중심의 보건, 복지, 의료 국가를 만들기 위한 각국의 노력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미국 유수 의학전문지에 게재된 북한 정신의학 연구 논문을 들여다 봅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은 각종 범죄, 경제침체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 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감 등 여러 이유로 정신건강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닌데요, 얼마 전 서울시민 중 5%가 정신건강질환으로 진료를 받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정신건강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서울시민은 52만명으로 서울 전체 인구의 5%가 넘었습니다.

한반도 북쪽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건강 실태는 어떤 수준일까요? 그 해답은 올해 초 세계적인 의학전문지인 ‘미국정신의학회지’에 게재된 한국 인제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박선철 교수의 논문에 잘 담겨있습니다.
박 교수가 책임저자로 발표한 논문 제목은 '21세기 북한의 정신의학 연구'입니다. 일반적으로 유수한 의학전문지에는 수천 건의 논문이 제출돼,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엄격히 검토하고, 이 가운데 소수의 논문만 공식적으로 채택되는데요, 이번 논문이 게재된 후 쏟아진 국제사회의 반응을 박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박선철) 아무래도 북한이 폐쇄적인 사회이다 보니, 여러 연구자들이 후속 연구나 추가자료에 대해 많이 문의했습니다. 예를 들어, 칠레의 한 연구자는 북한 정신과 병상의 구체적인 숫자를 물어보더군요. 하지만, 북한 정신과 현황에 대한 자료는 여전히 구하기가 어려운 터라 구체적인 답변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번 논문은 지난 2001년부터 2017년 사이 북한에서 출판된 47개의 정신의학 논문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했는데요, 박 교수는 북한 정신의학 연구 곳곳에서 전체주의, 사회주의, 고려의학의 흐름이 발견됐다고 설명합니다.
(박선철) 북한 정신의학은 전체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적지 않은 논문에서 연구 목적을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높이 받들고’라고 밝히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문구를 보면서 상당히 당황스럽기도 했고, 북한 연구자들에게 묘한 연민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또, 변증법적 유물론, 즉 역사는 실재하는 물질간의 대립을 통해 발전한다는 사회주의 기초이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정신과 신체 간의 연관성을 다루는 정신신체학 연구나 정신현상을 생리학적 지표로 환원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들이 많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남한의 한의학에 해당되는 고려의학이 정신의학과 이상하게 결합된 연구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조현병 환자에게 사용하는 항정신병 약물, 장기지속형 주사제라는 게 있는데요, 이를 ‘혈자리’라는 곳에 주사해서 그 효과를 평가하는 연구도 있었습니다. 사실, 정신의학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황당한 연구방법이기는 합니다. 또 ‘금강약돌’이라는 광물이 피로회복에 미치는 효과를 연구한 것도 있었습니다.
현대인에게 흔한 정신질환으로는 우울증을 들 수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최근 정두언 전 국회의원이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고, 지난달 말에는 여배우 전미선 씨의 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두 명 다 생전에 우울증을 앓았다는데요, 사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에서는 2017년 기준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68만명이나 됩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불과 5년 새 16%가량 증가한 수치입니다. 북한의 상황은 어떨까요? 박 교수는 북한에서는 우울증이 드물고, 대신 다른 신체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울증은 북한사회에서 낙인이 찍히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박선철) 탈북자 3분의 1 가량이 우울증에 이완됐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런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볼 때, 북한 주민 상당수가 우울증을 앓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의 우울증 유병률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역시나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그런 자료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스런 면이 있습니다. 왜냐면, 북한사회에서는 지상낙원에서 정신질환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이상사회에 대한 도그마가 지배적이어서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심각한 수준일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또, 북한주민들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정신증상보다는 모호한 신체증상을 호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정신증상의 신체화 경향 때문에 북한 주민은 우울증이 실제보다 훨씬 더 적게 진단되고 훨씬 더 적게 치료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여러분께서는 RFA, 자유아시아방송의 기획 프로그램 ‘더 나은 보건, 복지 세상’을 듣고 계십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북한 정신의학이 크게 바뀌고 있다고 박 교수는 평가했습니다. 앞서, 한국의 한 매체는 올 봄 북한의 언론 보도 태도가 '상전벽해' 수준으로 바뀌었다면서, 이런 변화는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국제적 감각이 만들어냈다고 보도하기도 했는데요, 비슷한 맥락일까요? 박 교수의 설명입니다.
(박선철) 김정은 시대 북한 정신의학 논문은 이전 시대에 비해서 특징적으로 미국에서 출판된 논문이나 교과서의 인용 빈도가 현저하게 늘었습니다. 또, 미국 정신의학계가 제정한 진단체계,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도 증가했습니다. 김정일 시대의 논문이 북한이나 중국, 구 소련에서 출판된 논문을 주로 인용했던 것에 비해, 대비되는 특징입니다. 또, 김정은 시대의 논문에서는 과거의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높이 받들고’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 적은 없었습니다. 제가 검토한 논문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서 쉽게 단언하기 어렵지만, 김정은 시대의 논문은 이전 시대에 비해서 그래도 전체주의의 영향을 덜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가올 미래인데요, 박 교수는 유럽의 북아일랜드와 독일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남북한이 공동으로 정신의학 연구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박선철) 정신의학적 접근에 대해 말씀 드리면, 북아일랜드에서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이 남북한 교류에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역사적으로 북아일랜드는 구교도와 신교도가 천 년간 갈등했고, 20세기에 들어서서 30년 동안 서로 죽고 죽이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북아일랜드 정부는 시민들에게 다양한 사회치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에는 통일 이후에 구 동독 주민의 절반 이상이 동서독간의 경제적, 문화적 차이 때문에 굴욕감이나 좌절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또, 구 동독 주민들은 분노, 무기력, 자기비난, 대인관계 회피 등을 흔히 호소했다고 합니다. 이런 임상 양상을 독일의 정신의학자 린덴은 ‘외상 후 울분장애’라고 명명했습니다. 남북한의 경우, 동서독에 비해서 경제적, 문화적 간극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외상 후 울분장애는 더 흔하고, 더 심각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의 외상 후 울분장애를 정신적으로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방법론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OUTRO) RFA 기획 프로그램 ‘더 나은 보건, 복지 세상’, 오늘은 미국 유수 의학전문지에 게재된 북한 정신의학 연구 논문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 새로운 소식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지금까지 기획, 제작,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