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편견의 그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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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 근데 너 간첩 아니야?

탈북한 게 자랑이냐?

너 할 줄 아는 게 뭐야? 총 쏘는 것밖에 모르잖아.

부르는 게 북한놈이에요.

나라 세금을 축내면서 왜 저렇게 사는지 모르겠다.

불편한 돌덩어리.

우리한테 얹혀 사니까 난 너희가 너무 싫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예진입니다. 탈북민들은 이제껏 귀순자, 북한이탈자, 새터민, 탈북자, 북한이탈주민 등 시대마다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습니다. 바뀌어 온 호칭만큼이나 국가와 사회, 사람들에게 다른 대접을 받아왔죠. 30년 전까지만 해도 간첩 취급을 받던 탈북민들, 지금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쯤 되는 국회의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사이 탈북민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탈북부터 한국정착까지, 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그들의 속얘기를 들어봅니다.

PD: 하나, 둘, 셋.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장세율: 저는 이제 2007년 5월에 이제 북한을 탈출을 해서 2008년 2월에 대한민국 입국한 장세율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민간단체, 북한 인권 그리고 이제 민주화를 위한 그런 NGO 활동을 기본적으로 하고요. 그리고 전기 일을 하고 있습니다.

PD: 한국에 오셔서 살 때 남한 사람들의 편견이 느껴진 적이 있으세요?

장세율: 예. 많죠. 맨 처음에 이렇게 한국에 와서 건설 현장에 나가니까 그저 부르는 게 북한놈이에요. 너 고향 어디야 하면 북한 이제 고장을 딱 부르면 ‘북한 놈이네?’ 이게 그 튀어나오는 말이고 ‘야 너 북한놈이니까 너 땅은 잘 파지?’ 이거예요. 그래서 무조건 삽을 주는 거예요. 아니 이게 전기 공사인데 그래도 내가 전기 기사였는데 여기서는 취급을 안 하고 ‘너는 북한놈이기 때문에 일단 땅 파’ 이러고 뭔가 대개 그 얕잡아 보는 이런 게 있어요.

탈북민연합회 상임대표로 탈북민의 권익과 북한 인권 향상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장세율 씨는 북한에서 인민군 소속 컴퓨터기술전문대학에서 군 복무를 했으며, 청진금속단과대학에서 수학교원으로 일했습니다. 15년 전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그는 전기 기술자로 건설 현장에서 일했지만,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푸대접을 받았죠. 당시만 해도 탈북민을 바라보는 남한 토박이들의 시선은 차가웠던 겁니다. 2008년 탈북, 2009년 한국에 정착해 지금은 용변 후 물로 씻는 장치가 설치된 변기, 비데 사업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서기원 씨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편견 어린 시선을 받는 게 싫어서 고향 말하기를 꺼렸다고 하는데요.

서기원: 일단은 그냥 강원도라고 말을 했어요. 왜냐하면 괜히 말해놓고 뭐라고 하면 선입견 받을 바에는 말 안 하고 선입견 안 받는 게 낫겠더라고요. 그래서 사투리 어디냐고 그러면 강원도 태백입니다. 또 태백이면 태백 어디냐고 굳이 물어보는 사람 있어요. 그쪽에서 살았다고 자기도… 그럼 처음에는 ‘거기 편의점 하나 있잖아요’ 편의점 어디나 다 있으니까. 그러다가 계속 물어봐서 ‘아 잠깐 살다 경상도로 이사 갔다 아닙니까?’ 막 이러죠. 아무튼 굳이 또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1998년 북한을 탈출해 두 번의 강제북송을 겪은 뒤에도 다시 탈북해 2008년 한국에 정착한 김명희 씨는 현재 국민의 삶과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연구하는 사회복지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데요. 그녀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어땠을까요?

김명희: 막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신입사원들한테 ‘김명희 주임이 보라고. 북한에서도 왔는데 막 이렇게 여기 와서 우리 회사에 와서 일도 한다고’ 아니 내가 북한에서 왔으면 이런 회사에서 일을 하면 안 되는 거예요? 밥을 먹는데 이런 얘기를 해요. 북한에 이런 음식이 있냐고, 이런 거 먹어봤냐고. 또 난 지금 현재 주소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거든요. ‘명희 씨는 티비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런 고생 하나도 안 했나 봐요. 그래 보여요’ 이게 칭찬이에요, 욕이에요? 난 이건 진짜 헷갈리는 거예요. 이게 그분들의 생각에는 북한 사람 그러면 이러이러할 것이다, 이게 고정관념이 있고 그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거죠.

한옥정: 2003년도에 대한민국에 와서 방송인과 또 가수로 활동을 했던 가수 한옥정입니다. 반갑습니다.

(옥정 씨 노래)

1998년 탈북해 중국에서 숨어 살다 2003년 한국에 정착한 한옥정 씨는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가수가 되기 위해 무작정 방송국을 찾아갔고, 가수협회를 소개 받아 결국 실력을 인정 받으면서 북한 출신 가수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무대에 설 수 없다는 황당한 통보를 받게 됩니다.

한옥정: 방송이 다 잡혔는데 북한에서 미사일 쐈대요. 제 방송이 다 취소됐어요. 북한이 미사일 쏘는 바람에 제가 탈북자인 바람에 예민하기 때문에 저를 방송에 못 내놓는데요. 음악방송이거든요. 내가 나가 노래를 하면 되거든요. 근데도 예민하대요. 안 된대요. 그래서 그때 큰 벽을 느꼈죠. 아 나는 북한에서 언젠가 뭐 어떤 일이 벌어지면 나는 언제든지 설 수 없는 사람이구나.

2010년 11월, 북한 군이 예고 없이 서해 연평도를 포격해 군인 2명, 민간인 2명이 사망한 연평도 포격 사건. 정전 협정 이래 최초로 발생한 민간 거주 구역에 대한 북한의 공격으로, 북한은 이로 인해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았으며, 한국 해군의 수습이 늦었으면 휴전이 깨질 수도 있었던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한옥정 씨를 포함해 탈북민들의 일상 생활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순희: 연평도 폭격 때 집에서 뉴스를 보다가 나갔거든요. 그래서 미용실에 딱 갔는데 거기 안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그러더라고요. ‘저 북한 사람들 속이 시꺼매가지고 하나도 믿을 게 못 된다’고, ‘속에서 뭔 생각을 할지 어찌 알겠냐’고… 근데 제가 들어가니까 말을 딱 끊어버리는 거예요. 근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 사람들한테 북한을 두둔하거나 북한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수가 없잖아요. 도대체 저게 뭐하는 짓이냐고, 평화로운 그 마을에 폭탄을 던지고. 그 사람들보다 더 격분해서 얘기를 하고 나왔는데, 마음속에서 내려가지 않아서 ‘아 저 사람들은 우리를 겉과 속이 다른 속이 엉큼한 사람으로 보고 있구나’ 이런 생각에 저 그 미용실 다시는 못 갔어요.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종종 이렇게 남한살이마저 팍팍할 수 밖에 없는 탈북민들, 그들이 한국 땅에서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벽은 바로 남한 토박이들의 선입견과 편견이었습니다.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다음 시간에는 이들이 선입견과 편견에 맞서는 방법에 대해 알아봅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