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편견의 그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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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 ‘저 북한 사람들 속이 시꺼매가지고 하나도 믿을 게 못 된다’고, ‘속에서 뭔 생각을 할지 어찌 알겠냐’고… 근데 제가 들어가니까 말을 딱 끊어버리는 거예요.

너 고향 어디야 하면 북한 이제 고장을 딱 부르면 ‘북한 놈이네?’ 이게 그 튀어나오는 말이고 ‘야 너 북한놈이니까 너 땅은 잘 파지?’ 이거예요.

‘명희 씨는 티비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런 고생 하나도 안 했나 봐요. 그래 보여요’ 이게 칭찬이에요, 욕이에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예진입니다. 탈북민들은 이제껏 귀순자, 북한이탈자, 새터민, 탈북자, 북한이탈주민 등 시대마다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습니다. 바뀌어 온 호칭만큼이나 국가와 사회, 사람들에게 다른 대접을 받아왔죠. 30년 전까지만 해도 간첩 취급을 받던 탈북민들, 지금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쯤 되는 국회의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사이 탈북민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탈북부터 한국정착까지, 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그들의 속얘기를 들어봅니다.

김혜성: 탈북을 2002년에 했고 그다음에 한국에는 2009년 1월에 입국을 했습니다. 저는 특별 경쟁도 안 했습니다. 내 실력으로 고용노동부를 갔고 공무원을 갔는데… (현장음) 민원들이 오면 탈북자 북한 말소리를 하게 되면 기간제한테 ‘선생님 그거 맞죠?’ 하고 말하지만 나한테는 ‘직원 맞아요? 들어가고 직원 내보내세요. 여기 탈북자 세우지 말고 다른 정규직 공무원 내보내’

김혜성 씨는 한국인도 어려워하는 시험을 통과해 북한의 정무원에 해당하는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시민들의 행정적 문의에 답하고 해결해주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주민센터를 찾은 시민들은 그녀의 말투에 신뢰하지 못하고 다른 담당자를 찾았던 거죠.

김혜성: 처음에 왔을 때는 앞에서 우아하게 ‘난 우리 북한이탈주민 처음 보는데 너무 좋네요’ 뒤에 가서 ‘탈북자들 이해 안 돼. 나 저 사람들 이해 못하겠어. 탈북자들 오면 걱정이야. 어떻게 민원 상담을 할지’ 앞에서 걱정하는 게 차라리 낫죠. 차라리 ‘탈북자가 그래요?’ 앞에서 물어보는 게 나아요. 너무 기분 나빴고, ‘내가 왜 여기 와서 이런 대접 받아야 되지? 내 노력이 왜 이 사람들한테 이렇게 평가돼야 되나?’ 그런 생각 때문에 돌아가는 게 나은 거 아닌가? 거지같이 살아도 밥을 빌어 먹어도 그 땅에 가면 똑같은 거지들이고 북한에선 똑같은 거지들인 거잖아요. 뒤에서 저런 소리나 하고, 여우 같은 것들…(웃음)

목숨을 걸고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현재 3만4천여 명, 이들이 겪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선입견, 차별은 다양했습니다. 2023년 남북하나재단의 탈북민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민들이 차별 당한 이유로 말투나 생활방식, 문화적 소통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72.8%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탈북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전문적 기술이나 지식 등 능력에 대한 편견’ 등이 꼽혔는데요. 2022년 1년간 탈북민이라서 차별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은 16.1%로 조사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탈북민에 대한 인식 개선은 여전한 숙제입니다.

서기원: 말로는 한민족이라고 해요. 그런데 언어가 통하는, 말이 통하고 언어가 통하는 외국인 취급을 하는 순간이 많기 때문에 탈북민이라는 꼬리표가 죽을 때까지 따라붙을 것 같아요. 북한 사람이라서…

조현정: 아마도 탈북민은 이 사회에 존재하는 한 우리는 늘 검증받아야 될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경제적으로도 낮고 문화 의식이 낮은 나라에서 왔다는 이 편견이 이 사회에서 우리가 20년을 살든 30년을 살아가든 그 배경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무엇인가를 우리가 했을 때 일단은 그분들의 편견이 딱 앞에 벽처럼 있기 때문에 이 벽이 허물어지기 전까지는 우리를 온전하게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잘하는 모습, 이런 것들을 인정을 받을 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인정 투쟁을 해야 되고…

인정 투쟁, 탈북민이라는 꼬리표를 떼내야겠다는 생각 대신 이들은 앞뒤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격으로, 사회성으로, 업무 능력으로 인정을 받기로 결심을 합니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욱 하는 순간이 없지는 않죠. 이럴 때 혜성 씨는 특별한 방법으로 그 순간을 참아낸다고 하는데요.

김혜성: 아무리 기분 나빠도 한국은 웃어야 한다 알더라고요. 그런데 ‘기분 나쁜데 어떻게 웃어요?’ 그랬더니 ‘이가 드러나면 웃는다고 생각한다’ 하더라고요. 저는 지금도 금방 나온 북한이탈주민들한테 그 말을 해요. ‘화가 나지’? 그러면 화가 난다고, ‘욕하고 싶지?’ 그러면 이렇게 하라고 해요. 웃으면서 욕을 해. 그러면 눈하고 이가 올라가면 눈이 웃어 보이고 마주 서 있는 사람은 ‘쟤 웃는다고 생각한다. 성격이 좋다고 한다’ 이렇게 웃으면서 저도 욕을 했어요. 처음에 진짜 그랬던 것 같아요.

PD: 그 마음으로 버티니까 15년이 버텨지던가요?

김혜성: 네. 그렇게 하다가 대구 한화 센터에 계시는 상담사분인데 그분은 한국 분이세요. 그분이 정말 저의 은인인데 너무 화가 나서 못 견디겠다고 할 때도 있고, 때려치우겠다고 할 때도 있는데 그분이 그러더라고요. 3일을 견디면 6일을 견디게 되고, 6일을 견디면 12일을 견딘다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한 달이 견뎌지고 3개월이 견뎌진다고 3개월이 견뎌지면 다 견딘 거다 이러더라고요. 근데 그 말이 맞더라고요.

처음엔 깍쟁이 같은 한국사람들이 미웠지만, 결국은 한국 사람에게서 버티고 이겨내는 방법을 얻은 김혜성 씨. 탈북민들의 인정 투쟁은 결국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얘기겠죠. 그렇게 투쟁해서 이들이 얻고 싶은 것은 그저 ‘함께 하는 것’뿐입니다.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다음 시간에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시대를 살았던 탈북민들이 기억하는 북한의 또 다른 모습에 대해 들어봅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