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텔레비죤의 역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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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이 시간 진행을 맡은 문성휘 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해외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책임지고 체류하던 중 2천년 초에 한국으로 망명한 김태산 선생과 함께 합니다.

기자: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김태산: 네, 안녕하십니까?

기자: 네,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지난 시간 우리는 북한의 텔레비죤 역사, 왜 북한이 1980년대까지 “온 사회의 텔레비죤화”를 실현하지 못했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오늘은 어제 시간에 이어 1990년대 북한의 텔레비죤의 역사를 돌이켜 보려고 합니다. 김태산 선생님은 언제 가정에 천연색 텔레비죤을 놓았다고 했죠?

김태산: 1987년도에 놓았어요. 87년도에 중국산을 놓았다가 그 다음에 일본산으로 바꾸어 놓았죠.

기자: 저희는 ‘고난의 행군’이 끝나자마자 텔레비죤을 재봉기와 맞바꾸었어요.

김태산: ‘고난의 행군’ 이후라면 어느 때를 말합니까? 97년, 98년도 그때를 말하는 거지 않습니까?

기자: 98년도, 그때 ‘소나무’ 텔레비죤을 중국산 재봉기와 맞바꾸었거든요. 그때까지 고장이 한 번도 안 났어요. ‘고난의 행군’ 지나서부터는 전압이라는 게 형편없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처음으로 나온 ‘소나무’ 텔레비죤은 전압이 낮아 도무지 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후에 나온 ‘소나무’라든가 아니면 중국에서 나오는 반도체 텔레비죤들은 전압이 낮아도 볼 수 있게 설계됐거든요. 그때 중국에서 중고 텔레비죤들이 엄청 나왔어요. 그래서 고장 나지 않은 ‘소나무’ 텔레비죤을 팔고 ‘홍매’라는 중국산 텔레비죤을 놓았거든요.

김태산: 아하, ‘홍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네요.

기자: ‘홍매’도 새것이 아니고 중국에서 들여 온 중고 흑백이었어요. 그때 아마 중국은 한창 천연색 텔레비죤이 쏟아져 나와서 흑백 텔레비죤들을 다 버릴 때였나 봐요. 그걸 밀수꾼들이 엄청 들고 왔죠. 그걸 팔아먹었는데 그때 돈으로 중고 텔레비죤이었는데 3천원을 주었거든요. 그게 어느 만한 돈이었냐 하면 그때 술이 (북한 돈) 20원이었어요. 술이 20원이던 시절에 3천원을 주었으니까, 그것도 새것이 아니고 중고 텔레비죤이었죠. 그래서 제가 탈북을 할 때까지 저희 집은 천연색 텔레비죤이 없었습니다. 그냥 ‘홍매’ 흑백 텔레비죤 중고를 놓고 있었죠. “이제는 북한에 텔레비죤이 없는 집은 없다” 최근에 온 탈북자들은 그렇게 모두 말을 합니다.

김태산: 그렇죠. 중국과 일본에서 중고 얼마나 쓸어 나왔습니까?

기자: 네, 중국산 처리 못할 쓰레기들 그게 다 북한에 들어가니까 사람들이 이젠 뭐 시대의 흐름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요. 휴대전화도 다 쓰니까 세상이 어느 정도로 발전했다는 걸 알기는 하겠죠. 다만 자기들이 이런 걸 쓰는데 어느 만한 한계가 있다 이런 걸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런데 북한은 항상 그래요. 북한의 사전들을 봐도 그렇고 한국보다 자기네가 훨씬 텔레비죤 방송을 일찍 시작했다, 이렇게 선전하고 있거든요.

김태산: 아, 그렇군요. 한국의 텔레비죤 역사는 어떻게 봅니까?

기자: 한국의 텔레비죤 역사. 한국은 1956년도에 처음으로 텔레비죤 시험방송을 했습니다. 그리고 60년도에 지금의 KBS 텔레비죤 방송의 모태였죠. 종합방송으로 나왔고 그때부터 벌써 한국은 24시간 방송체계였습니다. 그랬고 벌써 60년대가 되니까 KBS를 비롯해 텔레비죤 방송 통로(채널)들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북한은 제한을 하니까 ‘조선중앙텔레비죤’ 하나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여기는 벌써 그때에 텔레비죤 방송 수십 개 채널이 있었고 텔레비죤에 출연하는 배우들이랑 촬영자들이랑 엄청 늘었다고 합니다. 한 개의 산업, 지금으로 말하면 숱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대 산업으로 발전했다는 겁니다.

김태산: 기존엔 라디오 방송이나 듣던 사람들이 드라마 같은 걸 찍고 보기 시작했다는 거군요.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텔레비죤 생산은 언제부터 시작했다고 합니까?

기자: 1964년~1965년 이때에 금성텔레비죤이라고…

김태산: 자체로 생산했다는 거군요?

기자: 네, ‘금성’ 텔레비죤이 지금의 LG 전자입니다. 지금의 LG 전자가 당시 ‘금성’이었어요. ‘금성’이었는데 전자레인지도 만들고 그 다음에 전기밥솥도 만들고 여러 가지 많이 만들었죠. 그런데 당시 처음으로 ‘금성’에서 텔레비죤을 만들었는데 놀라운 건 전자관식을 생산하다가 벌써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반도체, 한국에선 트랜지스터라고 하는데 ‘소나무’와 같은 반도체 텔레비죤을 만들었다는 거죠.

김태산: 그때에 벌써 반도체 텔레비죤을 만들었다고요?

기자: 네, 1975년 4월 한국의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이코노’라는 상표의 흑백 반도체 텔레비죤을 생산했습니다. 처음으로 ‘이코노’를 출시한 1975년에 삼성전자는 3만4천대를 판매했고요. 1978년 한해 동안에 무려 74만6천대를 판매했다고 합니다. 삼성전자에 이어 ‘금성’도 잇달아 흑백 반도체 텔레비죤을 만들었으니까 이미 1970년대에 한국은 “온 사회의 텔레비죤화”를 실현했다는 거죠. 이어 삼성전자는 1977년 3월에 처음으로 반도체로 된 천연색 텔레비죤을 생산했습니다.

김태산: 그런데 북한이 자기들이 먼저 텔레비죤 방송을 시작했다고 하는덴 뭐가 있겠는데요?

기자: 한국은 아쉽게도 삼성전자가 천연색 텔레비죤을 한창 만들어 내고 있던 1980년에야 천연색 텔레비죤 방송을 중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게 북한이 꼬리를 잡고 있는 거죠. 북한은 1974년 4월부터, 그러니까 한국보다 무려 6년이나 앞서 천연색 텔레비죤 방송을 중계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북한이 텔레비죤 분야에서 한국보다 앞선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천연색 텔레비죤을 먼저 중계한 역사일 겁니다. 한국이 왜 천연색 텔레비죤 방송을 1980년부터 시작했는지 그 부분은 아직 제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마치 자기네가 한국보다 먼저 텔레비죤 방송을 시작한 것처럼 선전을 하고 있는데 이건 전부 거짓입니다. 다만 천연색 텔레비죤 방송을 북한이 먼저 중계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1970년대말, 1980년대 초에 한국은 “온 사회의 텔레비죤화”가 완성됐다는 거죠. 한국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그때 벌써 한국에선 텔레비죤을 이용한 오락게임이 유행하는 장면들이 나오질 않습니까?

김태산: 그렇죠. 그때부터 그런 오락을 즐겼다는 거죠.

기자: 사실 그때 걔네들이 놀던 게임 같은 건 아마 ‘고난의 행군’ 이후에 북한에 전파되기 시작한 거예요. ‘람보’, ‘마리오’, ‘탱크놀이’ 이런 건 한국의 젊은이들이 1980년대에 밤을 새워가며 열광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젊은이들은 90년대 말 2천 년대 초에야 열광하게 됐죠. 그것도 단속이 대단했습니다. 이건 자본주의적이다, 이건 퇴폐적이다 해서 또 검열선풍이 불고… 그나저나 지금은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부품들을 들여와 ‘은하수’ 이런 텔레비죤들을 만든다고 합니다.

김태산: 아, 지금 텔레비죤으로 ‘은하수’가 나오는 가요?

기자: 네, 그러니까 텔레비죤도 휴대전화나 꼭 같아요. 북한은 휴대형 노트북이라는 거, 이거 한국의 태블릿입니다. 그리고 정작 진짜 노트북은 ‘노트컴’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북한은 자체로 노트북, 태블릿도 그래, 손전화도 ‘평양’, ‘아침’ 이런 걸 다 중국에서 부품을 들여다 조립하지 않습니까?

김태산: 아, 조립만 하고 명칭은 자기네 명칭을 단 거군요?

기자: 네, 거기다 또 중국에 주문부착 생산을 합니다. 그러니까 중국의 공장들에 돈을 내고 우리가 사겠는데 대신 여기다 ‘평양’이라는 상표를 넣어 달라고 해서 애초 중국에서 나올 때부터 북한의 ‘평양’, ‘아침’ 이런 북한의 상표를 붙여가지고 나온다는 겁니다. 우리는 LCD, LED 텔레비죤을 이렇게 부르는데 북한은 이걸 얇다고 ‘판식 텔레비죤’이라고 부릅니다. 최근엔 중국에서 부품을 들여다 조립한 이런 ‘판식 텔레비죤’들을 대회 참가자들에게 선물로 주고 있다고 합니다.

김태산: 선물로 주기 위해 언제까지 몇 대 생산하라 이런 지령이 떨어지면 거기에 따라 외화를 풀어가지고 부품을 들여다 만들겠죠.

기자: 네, 북한은 이젠 텔레비죤이나 노트북, 휴대전화를 조립을 하는 수준까지는 왔습니다. 하지만 텔레비죤을 만든다고 해도 전기가 없어 지금은 그야말로 텔레비죤이 있으나 마나라고 합니다. 전기를 좀 공급한다는 평양시민들이나 텔레비죤을 좀 시청할 수 있을 뿐 올해 김정은의 ‘신년사’조차도 전기가 오지 않아 시청을 못했다는 게 아직도 “온 사회 텔레비죤화”를 실현 중에 있는 북한의 참담한 현실입니다.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오늘은 북한의 1990년대 텔레비죤 역사와 실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요. 한국에서 텔레비죤을 생산하던 역사도 돌이켜 보았습니다. 오늘 좋은 얘기들 나누게 돼 참 즐거웠습니다. 김태산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김태산: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