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소년시대, 지금과 다른 1989년 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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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 한국 드라마의 이모저모를 알려드리는 시간,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서울에 있는 문화평론가인 중원대 김헌식 교수와 함께합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쿠팡플레이 자체 제작 한국 드라마 ‘소년시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드라마의 배경이 됐던 1980년대 남한의 시대상을 알아볼 건데요. 오늘도 김헌식 교수님 모셨습니다. 소년시대는 온양에서 부여로 이사 간 찌질이 장병태가 싸움꾼으로 오해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드라마인데요. 장병태가 이사오기에 앞서 부여농업고등학교에는 ‘아산 백호’ 정경태에 대한 무성한 소문이 돕니다.

[ 박건주 / 부여농고 5 인방 '완쓰강' ] 아산백호 ?

[ 양철홍 / 부여농고 5 인방 리더 ] 아산백호를 모르는겨 ? 나도 그놈 얼굴은 적은 없어 . 듣기로는 공고놈들이랑 17 1 붙은 적이 있는디 . 누군가 모습을 보고 표현하길 양목장에 나타난 호랑이 같다고 그래서 별명이 백호야 . 그놈이 담배는 피를 묻혀야 제맛이 난다는 놈이여 .

[ 윤영호 / 부여농고 5 인방 '쟈니윤' ] 그놈 이름이 뭔디 ?

[ 양철홍 / 부여농고 5 인방 리더 ] 장경태라든가 정경태라든가 정병태라든가 .

[ 강대진 / 부여농고 5 인방 '오함마' ] 아따 , 시방 그럼 그놈이 우리 부여농고로 전학을 온디야 ?

[ 양철홍 / 부여농고 5 인방 리더 ] . 우리 부여가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인해서 고등학교에 빈자리가 없잖여 . 전학 자리가 없다고 농고 삼인방을 보내버렸다는 현재의 정설이여 .

[ 기자 ] 1980년대에는 드라마에서 묘사한 것처럼 지역 혹은 학교마다 싸움꾼이 실제로 존재했던 건가요?

[ 김헌식 ] 당시 특히 남자, 여자 고등학교로 나뉘어져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남성끼리만 있다 보면 거칠어져서 싸움 잘하는 것으로 서열을 정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남녀 공학이 되다 보니까 달라진 풍경들이 있었는데요. 1980년대까지는 싸움 실력으로 우열 또는 서열을 가르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로 갈수록 씀씀이가 커졌기 때문에 갈취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당구나 중국집, 술집에 가기 위해 돈이 필요했는데 그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갈취하는 모습이 소년시대 드라마에도 나왔고요. 그러다가 1990년대가 되면서 학교 폭력이 학급이나 학년이 아니고 외부 세력과 심지어는 조직폭력배와 결탁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1990년대 이후의 작품들을 보면 주로 외부의 조직폭력배를 학교로 끌어들이는 내용이 많은데요. 그런 점에서 1980년대는 아무래도 약간 소박한 면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기자 ] 장병태가 온양에서 부여로 이사하게 된 이유부터 새롭습니다. 바로 아버지가 댄스 교실 다시 말해 춤을 가르쳐주는 학원을 운영하다가 적발돼서 밤에 부리나케 도망치게 된 건데요. 당시에는 병태 아버지처럼 춤을 가르쳐주는 게 금지됐었나요?

[ 김헌식 ] 네, 그렇습니다. 국내에 댄스 스포츠가 들어온 것은 구한말 고종 황제 무렵이라고 알려졌습니다. 당시 러시아 공사에 의해서 처음으로 소개됐고 1920년대는 일본과 러시아에서 돌아온 유학생들이 시범을 보인 것이 최초라고 하는데요. 그러다가 1960년대 이후에 교습이 금지되는 수난을 겪게 됩니다. 1989년 동아일보 사회면을 보면 경찰이 불법 댄스 교습소를 기습해서 춤을 추던 주부들을 단속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이때 당시에 속칭 '제비족'으로 불리던 댄스 강사들이 불법 댄스 교습을 무대로 부녀자들을 유혹해서 금품을 갈취하거나 가정 파탄까지 초래했다는 건데요.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장병태의 아버지도 갈취한 것은 아니고 단지 춤이 좋아서 교습소를 운영하다 법을 위반해서 야반도주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말부터 점차 '사교댄스'라고 불리고, 건강이라든지 인간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시선이 달라졌고요. 그리고 요즘에는 케이팝 활약 때문에 케이팝 댄스학원을 비롯해 다양한 나라의 춤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허용되고 있습니다.

[ 기자 ] 드라마를 보면 지금과 다른 학교 모습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특히 반마다 학생들에게 상납금을 걷어서 학교에서 싸움을 잘하는 무리 애들에게 바치곤 하는데요. 오늘날에는 이런 행동은 학교폭력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죠. 1980년대에는 실제로 학생들끼리 상납금을 걷는 일이 흔했나요?

[ 김헌식 ] 1980년대 같은 경우에는 '서클'이 있었습니다. '서클'이라는 이름은 공식적으로 좋은 뜻이었지만, 운영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데 돈이 필요하다 보니까 그 서클이 폭력 모임 비슷하게 변질됐죠. 서클에 필요한 돈을 주변 학생들한테 뜯어내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학교에 조직을 만들고 반별로 상납금을 정해서 후배들로부터 매월 돈을 뜯고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잦아지게 됐죠. 상납금과 상납 일자를 지정해 주고 상납이 안 되면 골목길, 인적이 드문 공원 등으로 불러내서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렇게 달라졌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다른 학교까지 (상납) 원정을 가는 일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1989년이 배경인) 소년시대를 보면 다른 학교 학생까지 갈취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다른 학교는 경쟁 상대였습니다. 그래서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출신 학생들끼리 대결을 벌이는 상황이 되거나 웬만하면 다른 학교 학생은 잘 안 건드리는 불문율이 1980년대에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기자 ] 그리고 또 장병태와 아이들 모두 빠짐없이 수업 중 일환으로 농촌봉사활동에 참여하는데요. 북한 학생들이 모심기 등 농촌지원에 동원되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 김헌식 ] 저도 시골에서 학교에 다녔습니다만, 대개 가정실습이나 농번기∙재난 상황이 있을 때 농촌 지역으로 봉사활동을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상 부여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이기 때문에 자기 전공을 살려서 실습을 나간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죠. 대학생들도 실습을 나가기는 합니다만, 대학생 같은 경우는 자기 전공이 아니고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농작물을 망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북한의 대학생들이나 학생들은 남한 학생들의 자원봉사와는 다르게 강제적으로 동원되는 것뿐만 아니고 사회∙정치 활동 차원에서 지원하러 갑니다. 그래서 사상 선전을 위한 정치 활동 차원에서 (농촌지원을) 하고 있는데 남한에서의 농촌 봉사활동은 사상 활동이 아닌 학생들이 봉사 점수를 위한 활동으로 이루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 기자 ] 네, 그럼 잠시 드라마의 배경음악 듣고 돌아와서 내용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 소년시대 OST)

[ 기자 ] 다시 드라마 얘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드라마 속 등장한 1980년대와 현재의 다른 모습 중 하나는 바로 물가 차이인데요. 부여의 소피 마르소 다시 말해 부여에서 가장 예쁜 여학생으로 알려진 강선화한테 한눈에 반한 장병태는 강선화가 먹고 싶다는 돈가스를 사주러 비싼 양식당에 들어갑니다.

[ 장병태 ] 우리 자장면 그릇씩 어때 ?

[ 강선화 / 부여 소피 마르소 ] 자장면 말고 다른 먹으면 되나 ?

[ 장병태 ] 어떤 ?

( 돈가스집에 들어선 병태와 선화 )

[ 장병태 ] 아이 , 돈가스가 1,200 . 돈가스가 제일 거야 . 아이 , 환장하겄네 .

[ 기자 ] 돈가스 1,200원을 감당할 수 없는 병태는 친구들에게 달려가 돈 좀 구해달라 부탁합니다.

[ 장병태 ] 너희 있냐 ?

[ 박건주 / 부여농고 5 인방 '완쓰강' ] 800 있는디 ?

[ 장병태 ] 아이 , 그거 갖고 안돼 . 너는 ?

[ 강대진 / 부여농고 5 인방 '오함마' ] 없어 .

[ 장병태 ] , 내가 너희 믿는 알고 있지 ? 지금 당장 2 원만 구해다 있을까 ? 너희 와가지고 선화 모르게 갖다줘야 알겠냐 ?

[ 강대진 / 부여농고 5 인방 '오함마' ] 선화 걔가 돈이 많이 들어 .

[ 장병태 ] 너희 믿는다 . 2 지금 당장 바로 . 알겠지 ? 간다 .

[ 기자 ] 당시 자장면과 돈가스의 가격 차이는 어느 정도였길래 병태가 돈가스는 감당하기 어려워했던 건가요?

[ 김헌식 ] 그때 당시 1989년에 자장면 한 그릇이 800원에서 1천 원 사이로 한 900원 정도였을 겁니다. 그러면 지금 삼각김밥 수준이라는 건데요. 당시 최저임금은 시간당 600원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1988년이 배경인 <응답하라 1988> 드라마를 보면 이때 돈가스가 2,500원입니다. 정식은 6,000원이고요. 그러니까 900원 정도 되는 자장면과 2,500원~ 6,000원짜리 정식 돈가스를 비교했을 때 '소년시대'에서 장병태가 많이 고민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2배 이상 심지어 4~5배 이상 비싸기 때문인데요. 어쨌든 유럽에서 시작된 돈가스는 튀긴 돼지고기죠. 우리나라에서는 반죽을 입혀서 튀겨내는데 일제강점기로 넘어오면서 1990년대 초 무렵까지 고급스러운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굉장히 강했고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돈가스가 연인과의 데이트 날이나 여유 있는 집안 가족들이 특별한 날에 날을 잡고 혹은 주말에 먹는 이미지가 굉장히 강했습니다. 그렇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식 돈가스가 유행을 타기 시작했고 2010년대에는 어디서라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 기자 ] 자장면과 돈가스 가격이 거의 2배에서 3배 정도 차이가 났던 건데 사실 지금은 비슷한 가격이라고 할 만큼 가격 차이가 별로 없죠.

[ 김헌식 ] 네, 그렇습니다. 예전에 왕돈가스라고 불린 유형의 원조 돈가스는 자장면 가격과 별 차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고급화된 돈가스는 고가의 돈가스로 팔리고 있습니다.

[ 기자 ] 실제 1980~1990년대에는 '아산 백호', '부여 흑거미', '부여 소피 마르소'처럼 각 지역에서 유명한 학생에게는 별명이 붙기도 했었나요?

[ 김헌식 ] 지역마다 (전학 온 학생들을) 대도시에서 이렇게 부를 수 있었죠. 예를 들면 광주광역시로 유학 가는 학생들, 대구광역시 주변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라든지, 대전광역시나 주변 학생들이 해당합니다. 사실 온양이나 아산에서 부여로 혹은 공주로 전학을 가기보다는 오히려 부여나 공주에서 온양, 아산 쪽으로 전학 갈 가능성이 높죠. 그러면 각 지역에서 왔기 때문에 별명을 '어느 지역에 누구다'는 식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여 흑거미', '부여 소피 마르소'로 지을 수 있겠죠.

[ 기자 ] 마지막으로 교수님께서는 이 작품을 보면서 어떤 점이 또 현대와 달라졌다고 보셨는지요?

[ 김헌식 ] 학생들의 복장을 보면 교련복을 입고 나오는데, 교련복이라는 것은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기관에서 학생들한테 실시되는 교육 훈련 과목인데요. 이 수업 시간에 입던 옷이죠. 그런데 교련을 더 이상 가르치지 않아 1997년부터 사실상 폐지가 돼서 그 복장을 볼 수가 없고요. 또 소년시대 드라마에는 선도부가 등장합니다. 선도부도 학생부 소속으로 교사의 지도를 받는 공식 단체인데 주로 학생들을 단속하고 규제하는데요. 지금 대부분의 학교는 선도부를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농고나 상고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부여농고 같은 경우에도 현재는 한국식품마이스터고등학교로 바뀐 상황입니다. 공고, 상고 등은 '인터넷고', '정보고', '생명과학고', '항공고' 등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은 공고, 상고라는 명칭 없이 정보화 시대와 생명과학 시대에 맞게 재능을 살리는 고등학교로 바뀌고 있습니다.

[ 기자 ]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김헌식 ] 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 기자 ]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오늘은 소년시대를 통해 1980년대 남한 시대상 알아봤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도 드라마 소년시대와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