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 ] 한국 드라마의 이모저모를 알려드리는 시간,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서울에 있는 문화평론가인 동아방송예술대 김헌식 교수와 함께합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한국 방송 채널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잘 나가던 한국프로야구 선수에서 하루아침에 교도소에 가게 된 김제혁 선수의 이야기인데요. 극 중에서 김제혁 선수는 여동생을 강간하려고 한 강간 미수범을 따라가 몸싸움을 벌였고, 싸움 중에 그의 머리를 가격해 과잉방위 혐의를 받았는데요. 김제혁은 이로 인해 1년의 법정구속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 사건 담당 판사 ] 사건번호 2016 고단 1178. 피고인 김제혁이 도망가는 피해자를 쫓아가 폭력을 행사하고 , 위험한 물건인 트로피로 폭행해 상대에게 중상을 입힌 점은 정당방위를 넘어선 과잉방위에 해당한다 . 이에 피고인 김제혁에게 징역 1 년의 법정 구속을 선고한다 .
[ 기자 ] 김제혁 선수 사건의 쟁점은 정당방위였는지 여부인 것 같은데요. 그럼 정당방위와 과잉방위의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 김헌식 ] 정당방위는 자신 또는 타인이 받은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에게 누군가 폭행을 한다든지 살해 위협을 하거나 아니면 자기 지인 또 가족을 (위협할 경우) 그에 대응하는 행위를 했을 때 정당방위가 인정될 수 있는데요. 그렇지만 정당방위가 성립하려면 두 가지 요건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부당한 침해와 행위의 상당성이 있어야 하는데요. 예를 들면 성폭행범이 위해를 가하려고 하는 현장에 있어야 정당방위가 성립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 범인은 도망가다가 격투가 붙었다는 점에서 피해의 현재성도 없고 침해가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범인과의 몸싸움 과정에서 주인공이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잡아서 범인을 가격했는데 이게 유리로 된 트로피였던 거죠. 그러니까 트로피는 너무 과격한 수단이고, 더구나 범인이 뇌사 상태에 빠졌고, (김제혁은) 운동선수였기 때문에 체력 조건이 더 좋았다는 점 때문에 결국 정당방위가 아닌 과잉방위로 법원에서 판결이 났고, 이 바람에 결국 (김제혁이) 교도소에 갇히게 되는 상황이 됩니다.
[ 기자 ] 김제혁 선수가 수감됐던 서부구치소에는 '방장'이라는 역할이 있었는데요.
[ 박도겸 / 서부구치소 교사 ] 김제혁 선수 오늘 잠 못 자겠다 . 요즘에는 방장 이런 것 없죠 ?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
[ 명교수 / 서부구치소 7 하 5 방 방장 ] 제가 방장입니다 . 새로운 식구가 왔네요 .
[ 기자 ] 방장은 구치소에서 어떤 의미죠?
[ 김헌식 ] '방장'은 수감자들 사이의 은어입니다. 교도소에 각 수감실이 있고 여기서 일종의 군기반장 그러니까 질서를 잡는 방장 역할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속어가 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는지에는 물론 차이가 있겠지만, 감옥에 들어온 지 오래된 사람을 '짬밥이 많은 죄수'라고 얘기하는데요.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완력을 쓰는, 힘이 센, 싸움 잘하는 조폭과 같은 사람들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방장을 맡는다고 해도 그 안에서는 대우받는지 모르겠지만 법적으로 가석방 등의 혜택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쨌든 교도소 하루 일과는 군대와 유사해서 취침 전과 기상 후 방별로 점호를 실시해서 방장이라고 불리는 수감자가 총원, 열외 몇 명, 현재 인원 등을 교도관에게 보고하게 되는 역할을 합니다. 그의 오른팔을 보필하는 총무라는 존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기자 ] '방장'처럼 교도소에서 흔히 쓰이는 은어들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 김헌식 ] 교도소를 '큰집'이나 '학교'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고요. 그다음에 '범털'이라는 용어는 교도소 내에서 돈이 많거나 지적 수준이 높은 등 소위 권력층에서 온 사람들을 일컬어서 범털이라고 합니다. '개털'은 돈도 거의 없고 권력도 없고 일반 이하의 재소자를 뜻하는 용어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술'은 마약을 뜻하는 단어가 되겠습니다. '범치기'라고 하는 게 있는데 이 범치기는 불법으로 물건들을 매매하는 것을 말합니다. 몰래 담배 등을 들여오는 경우를 말하고요. 그다음에 '소지'는 청소나 모든 관리를 담당하는 보조 역할을 하는 사람인데 영치물과 접견물을 나눠주거나 배식하는 사람을 뜻하고요. 교도소에 적응하지 못하는 수감자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 '관심 죄수'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고요. 또 법적 지식이 풍부하면서 인맥이 좋은 수감자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요즘 영화와 드라마에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인물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 기자 ] 교도소 은어를 모르면 수감자들 사이에서 하는 말을 알아듣기 참 힘들 것 같은데요. 또 반대로 바깥 사회의 유행어 혹은 은어들을 몰라서 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오는데요. 김제혁 선수가 외부인과 접견을 다녀오자, 방장이던 명교수는 김제혁 선수에게 누구와 만나고 왔냐고 묻습니다.
[ 명교수 / 서부구치소 7 하 5 방 방장 ] 접견 어떠셨습니까 ? 혹시 여자친구 ?
[ 갈대봉 / 서부구치소 7 하 5 방 갈매기 ] 뭐고 ? 슈퍼스타 씨가 여자친구도 있었는갑네 ? 이거 완전 특종감인데 .
[ 김제혁 / 프로야구선수 ] EX 요 .
[ 갈대봉 / 서부구치소 7 하 5 방 갈매기 ] 어 ?
[ 명교수 / 서부구치소 7 하 5 방 방장 ] 없답니다 . 전혀 .
[ 기자 ] 알고 보면 참 재미있는 장면인데요. 그러니까 김제혁 선수는 전 여자친구라는 뜻의 영어단어인 '엑스걸프렌드(ex-girlfriend)'에서 따온 말인 ex라고 답한 겁니다. 즉, 전에 만났던 여자친구와 접견하고 왔다는 뜻인데 이 말을 모르는 구치소 수감자들은 전혀 없다는 의미의 '엑스(x)'라고 이해합니다. 교수님, 이 같은 상황이 드라마에서 여러 번 등장하죠?
[ 김헌식 ] 네, 그렇습니다. '엑스'는 이전에는 대개 부정의 의미로 사용했었죠. 또 100억을 훔친 죄로 들어온 고 박사에게 같은 방의 이주형이 "리스펙"을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리스펙은 누군가에게 존경의 뜻을 표할 때 영어로 "리스펙(respect)이다"라고 얘기하는데 오랜 시간 수감된 '문래동 카이스트'라고 불리는 강철두는 알아듣지 못하거든요. 최신 유행 단어에 관심 둬야 하는 이유는 뭐냐 하면, 사회에 나갔을 때 신조어 같은 단어들을 이해 못하게 되면 적응하고 조화롭게 생활하는 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교정시설에서) 신조어 등을 많이 알려주는 것도 필요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신조어 자체를 부각하는 것도 있지만, 단어를 몰라서 오해하게 되거나 아니면 서로 지식이나 정보의 수준이 다른 사람들이 뒤섞여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의 언어생활도 (드라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강철두가 김제혁 선수에게 미국의 수도를 묻자 "뉴욕? 양키스?"라고 답하는 것도 결국 지식이나 삶의 양식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서 살 수밖에 없는 교도소 안의 풍경을 그리는 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기자 ] 네 그렇죠.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DC인데 뉴욕이 아무래도 가장 크고 유명한 도시이다 보니 헷갈리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 김헌식 ] 그렇습니다. 또 야구단이 있기 때문에 자기 관심사에 따라 뉴욕 양키스를 떠올려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겠죠.
[ 기자 ] 그럼 잠시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배경음악 듣고 오겠습니다.
( 슬기로운 감빵생활 OST)
[ 기자 ] 다시 드라마 얘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통해 한국 교도소의 체계도 엿볼 수 있었는데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건 수감자들의 명찰 색깔인 것 같아요. 각자 명찰의 색깔이 하얀색, 노란색, 파란색 등으로 다른데 이게 어떤 의미죠?
[ 김헌식 ] 수감자들의 옷에는 번호표가 달려 있습니다. 그 번호표가 노란색, 파란색, 흰색 심지어 빨간색도 있거든요. 노란색은 관심 대상 수감자입니다. 조직폭력배와 같은 요주의 인물이 주로 노란색을 착용합니다. 언제 사고를 치고 분란을 일으킬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보시면 되겠고요. 파란색은 마약 범죄 수감자들을 뜻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파란색은 약물을 뜻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가 있겠고요. 그 외에 아직 재판이 확정되지 않았거나 막 재판이 확정된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흰색 명찰이 부여되기 때문에 대부분은 흰색 명찰을 달고 있습니다. 빨간색은 드물지만, 사형 확정 수감자를 뜻합니다. 2006년에 개봉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사형수 연기를 했던 강동원 배우는 빨간색의 수용자 명찰을 달고 있습니다. 또 옷 같은 경우에 어두운 바다 녹색이나 옅은 보라색은 모범 수용자 옷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기자 ] 김제혁 선수가 수감되어 있는 서부구치소에는 다양한 행사가 열립니다. 수감자들을 상대로 한 퀴즈대회, 목공대회 심지어 노래자랑까지 열리는데 실제로도 이런 행사들이 있나요?
[ 김헌식 ] (드라마에) 퀴즈 대회, 목공 대회, 노래자랑까지 등장하는데 너무 짧은 기간에 많이 진행되더라고요. 잘못 보면 짧은 기간 안에 이런 행사들이 진행되는 것 같이 보이는데, 실제로는 간혹가다 예를 들면 일 년 봄∙여름∙가을∙겨울 철마다 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특히 가정의 달 5월같은 경우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가족에 관련된 교화 행사가 이루어지죠. 효도 전화 및 편지 쓰기를 한다든지, 어버이날을 전후해서 합동 접견을 한다든지, 기념 음악회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얼마 전에는 대전의 한 교도소에서 교정작품전시회도 열렸습니다. 교정기관 수용자들이 공예품과 생활용품을 만든 것을 전시하고 판매한 뒤 판매한 액수로 좋은 일도 하는 등 좋은 이미지와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형태로 주로 교정 행사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기자 ] 그리고 김제혁 선수의 교도소에서 한방에 머물렀던 수감자 이주형은 1년이라는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데요. 그를 배웅한 송기둥 교도관은 휴게실로 돌아와 넋두리합니다.
[ 송기둥 / 서부교도소 교도 ] 출소 시간을 새벽 5 시에 하는 게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 이해가 . 옛날처럼 밤 12 시에 하면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좀 좋아요 ?
[ 기자 ] 드라마를 보시던 시청자분들은 왜 출소 시간이 다른 시간도 아니고 새벽 5시일까 궁금할 수도 있겠는데요. 새벽 5시가 출소 시간인 이유는 왜 그런 거죠?
[ 김헌식 ] 2014년 전에는 완전히 형기를 마친 사람들의 교도소 출소 시간이 밤 12시 (0시)였습니다. 왜냐하면 12시 (0시)가 날이 변하는 시점이잖아요. 그러니까 출소일 변환 시점에 딱 나왔었는데 이게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자정에 출소하면 출소한 사람들이 교도소 주변을 배회하는 경우가 있다 보니 주민들이 '혹시 탈옥한 거 아니냐?'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심지어 밤늦은 시각에 출소한 사람을 노리는 범죄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2014년에 시범 운영을 하다가 2015년부터는 모든 교도소에서 새벽 5시에 출소하고 있는데요. 이 드라마에서도 "12시에 출소하면 좋지, 왜 이렇게 새벽에 하느냐"는 얘기가 나오거든요. 보통 교정시설에서 5시에 출소를 하기 위해서는 새벽 4시 20분~30분부터 출소 준비를 해야 하니까 교도관들도 좀 힘든 모양입니다. 그리고 예외적으로 중범죄자인 경우에는 좀 더 시간이 늦춰져서 6시, 6시 반에 출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 기자 ]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김헌식 ] 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 기자 ]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오늘은 드라마를 통해 알 수 있는 한국 교도소의 문화와 체계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도 슬기로운 감빵생활 드라마와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