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22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북한에서 방송을 듣고 있는 청취자 여러분 모두 올해는 더욱더 희망차고 복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북한을 탈북해서 이곳 미국 시카고에서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글로리아 김 씨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로리아 김 씨는 지난 1997년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리는 큰 기근의 시기에 고향인 함경북도 청진에서 중국으로 탈북을 했습니다. 그 후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 정책에 공포를 느끼고, 2007년 2월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서 미국 중서부 시카고 지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꽃 도매업 사업을 시작으로 현재는 물류, 자동차 부품관련 사업으로 규모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2007년 난민 지위를 받아 미국에 정착한 글로리아 김 씨는 현재 시카고에서 꽃 도매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처음부터 미국정착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글로리아 김 : 왜냐하면 지금 들어오는 탈북민들은 미리 들어온 탈북민들이 있어서 새로 오시면 미리 오신 탈북민들이 도움을 줘요. 정보 음식 등 많은 도움을 받죠.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시카고의 첫 탈북민이죠.
글로리아 김 씨는100달러로 장미 백 송이를 사서 2013년에 꽃 사업을 시작했고, 이제는 중남미와 동남아 등지의 농장에서 꽃을 직접 수입하여 꽃 도매업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장미 한 송이를 1달러에 사다가 2달러에 팔았고, 처음 100송이 장미가 씨앗이 되어 이제는 큰 사업체가 되었습니다.
글로리아 김 씨가 꽃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한국교민 중 한 명이 집에 딸린 차고에서 사업을 하는 것을 보고 미국에서는 소자본과 소규모로도 사업을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용기와 아이디어를 얻어서 꽃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은 보통 사무실과 창고 등의 작업장을 갖추고 해야 한다는 선입관이 있는데 미국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글로리아 김 씨가 꽃 사업을 성공할 때까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꽃 도매업이 정착될 때까지는 미용사 학원, 미국재봉회사 등 3가지 일을 밤잠을 줄여가며 동시에 했습니다. 그리고 100달러라는 소자본으로 시작하니까 사업기반을 만드는 것이 매우 느렸습니다.
보통 꽃가게를 차리고 장사를 하는 꽃 소매업과는 달리 처음부터 꽃 도매업을 선택한 김 씨는 거래처를 만들기 위해서 식료품점, 주유소 등을 직접 찾아 다니면서 개척을 했습니다.
글로리아 김 : 거의 5년정도 지나니까 자리가 잡히고 돈이 벌리더라고요.
글로리아 김 씨는 미국에 오기 전 2006년 태국 난민수용소에서 1년여간 있을 때 대다수 탈북민들이 한국 행을 택했던 것과 다르게 미국 행의 마음이 강하게 주어졌다고 하네요. 글로리아 김 씨는 미국 정착생활과 사업에 성공하게 된 밑거름은 주어진 작은 일부터 성실하게 하다 보면 기회가 오게 되고 그 기회를 만나면 놓치지 않고 꼭 잡아서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글로리아 김씨는 현재 꽃 도매업 이외에 아틀란타에 거주하는 다른 탈북민과 동업을 통해서 더욱더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건축, 물류, 자동차 부품관련 등의 업종인데 이미 올해 말까지의 주문이 다 차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소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글로리아 김 : 이 회사를 하고 싶었던 것은 미국에 아직까지 탈북민이 창립한 기업이 아직은 없죠. 그래서 탈북민 기업창립은 큰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글로리아 김 씨는 처음 미국에 왔을 땐 빈손이었는데, 미국에서 사업의 큰 꿈이 이뤄져 가고 있는 것에 너무 놀랍고 감사하다고 합니다. 미국에 아무런 연고와 자금도 없이 와서 큰 사업을 하는 글로리아 김 씨에게 2022년 더욱 발전하고 성공적인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진행 김성한,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