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중서부 시카고 지역은 가끔씩은 따뜻한 바람이 불면서 꽁꽁 얼어있던 얼음이 녹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곳 미국은 직업의 귀천이 없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엄밀히 따지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 중산층은 직업을 놓고 높낮이를 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오늘은 북한에서 의과대학을 나와 의사생활을 하다가 이곳 미국 중서부 시카고에 정착해 여러 직종의 일을 하다가 이제는 북한에 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꿈을 가진 김마태 씨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지난 2014년 미국 시카고에 난민으로 온 김마태 씨의 초기 미국 정착은 다른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쉽지 않았습니다.
김마태 : 영어를 손에서 놓은 지가 오래돼서 영어를 배우는데, 영어회화가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난민센터에서 소개해주는 직업이 잘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김 씨는 언어의 어려움과 초기이민자로서 난관이 있었지만 과거 한국정부에서 탈북민을 지원하고 후대하는 정책덕분에 한국정부와 연결돼 있는 단체들에게서 물심양면으로 미국정착 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게 됩니다. 마태 씨는 상당히 노동을 필요로 하는 세탁소 일을 시작했지만 시카고 지역유지 분들의 따뜻한 도움으로 좀더 육체 노동의 강도가 덜한 가발 가게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 후 교회 관리집사와 노인을 돌보는 요양원 등에서도 일했습니다.
마태 씨는 북한 난민으로 미국에 입국했습니다. 미국정착 과정에서 교회 소개로 결혼도 하게 되고 가정도 꾸리게 되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의사였지만 미국에 와서부터는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겸손히 일을 했다고 합니다. 김마태 씨의 말을 좀더 들어 보시죠.
김마태 : 제가 북한에서는 삽 한자루, 망치 한자루 못 잡아 봤어요. 그런데 미국에 가면 낮은 마음으로 미국정착 생활에 적응하려 들고 도전하였더니 일자리들이 너무 많이 보였고 할 일이 태산 같았습니다.
마태 씨는 북한에서 살 때는 자본주의는 돈밖에 모르는 사회라고 나쁘게 듣고 교육받아왔는데 막상 미국에 와보니 열심히 일을 하면 돈을 벌고 그 돈을 가지고 생활을 편안하고 안정되게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하네요. 특히 생활이 안정되고 여유가 생기니까 북한에서부터 앓았던 여러가지 지병들이 낫고 없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마태 씨는 미국에 살면서 한인교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김마태 : 한인분들이 도와주셨고 일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시고, 이곳 미국은 이역 땅이지만 같은 코리안으로 도와주셔서 정착을 참 잘하게 되었습니다.
마태 씨는 탈북 할 때 브로커를 통하지 않고 무작정 북한을 떠나는 바람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 과정 중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났고 기독교를 믿게 됐습니다. 북한에서 교육받았던 제국주의자들의 길잡이라는 생각과는 매우 달랐던 것이지요.
이런 탈북 과정과 미국정착 생활 중 현재는 교회의 관리집사로 일하면서 믿음이 두터운 신앙인이 됐습니다. 김마태 씨는 꿈이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서 의대를 나와 의사의 생활을 접고 새롭게 미국에서 많은 난관과 역경을 거치면서 생긴 소망이죠. 바로 북한땅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라고 하네요. 하루빨리 북한과 남한에 평화가 정착되고 마태 씨의 꿈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진행 김성한,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