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 호수와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겨울 추위가 시작된 이곳 시카고에서 오늘은 최근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는 종전선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종전선언이란 1953년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휴전되고 있는 정전 상태를 영구히 중단하자는 취지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남과 북 그리고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들과 관련된 도발, 크고 작은 국지전이 수천 회에 이르고 있는데요.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을 종식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그리고 미국 간의 화해 협력을 하자는 취지를 가진 것이 종전선언입니다. 휴전상태를 끝내자는 좋은 취지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실제 역사적으로 종전선언과 그와 관련된 평화협정 체결 이후 오히려 더욱 큰 전쟁발발이 된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곳 시카고에 소재한 미국의 북한문제관련 연구소인 시카고 카운실 국제문제협의회(CCGA)의 칼 프리도프 연구원에 따르면 실제적으로 한국전 종전선언의 주요 당사국인 미국이 종전선언에 응하지 않을 경우가 많아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하네요.
칼 프리도프 연구원 : 북한은 종전선언 추진을 측면에서 강화하고 있으나 미국 바이든 행정부 말기까지 종전선언의 체결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역사를 들여다 봐도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이 평화를 가져온 사례는 매우 드문대요. 우리가 잘 아는 베트남 공산화 과정도 그렇습니다. 한반도처럼 남.북 자유민주주의, 공산주의 진영으로 갈라져 싸우다 1973년 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과 북베트남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맺습니다.
그후 남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해 버렸고 2년후 1975년 4월 북베트남의 기습 전면 군사공격으로 40일만에 베트남 전체가 공산화 됩니다. 또다른 금세기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허구성이 많다는것을 나타내주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나치독일의 히틀러는 1938년 8월23일 소련과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습니다. 그렇지만 불과 몇년이 않된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기습적 침공으로 소련 서부가 초토화되고 소련 민간인들과 군인들 약 2,000만명이 피를 흘리며 희생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폴란드도 1932년 소련과 34년도엔 나치 독일과 각각 종전선언, 평화협정, 북가침 조약을 맺었는데요. 1939년 9월 1일 독일의 침공에 이어 9월 17일에는 소련의 공격을 받고 나라가 분할 점령되었습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조약이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될수 있음을 잘보여주는 사례들이죠. 인류역사상 수 천차례 이상의 종전선언,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는데 그중 대부분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최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한.미는 각각의 종전선언 조치에 관련하여 한.미가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현재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버린 북한이 계속해서 핵포기를 하지않고 증가시키며 각종 중.장거리 미사일 실험을하고 미국과 대화의 장벽을 높이 쌓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종전선언 참여는 쉽지 않아보인다고 시카고 카운실 연구소의 칼 프리도프 연구원은 말합니다.
칼 프리도프 연구원 : 북한의 종전선언에 관하여 미국에 대한 요구조건은 명백히 너무 높습니다. 북미간이 협상을 위하여 반복적으로 협상전제조건을 요구하나 미국과의 요구조건이 맞지않고 있어서 종전선언 체결을 쉽지 않을것 같습니다.
종전선언에 대한 갑론을박 가운데서 하루빨리 남.북한과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진행 김성한,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