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교황 초청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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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 북조선 내부의 소식과 정보를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건, 사고, 동태, 동향에 관한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청취자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설명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이 시간 함께 합니다. 북한전략센터는 북한 내부의 민주화 확산사업과 한반도 통일전략을 연구하는 탈북자 단체입니다.

전수일: 유럽 순방 중인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18일 로마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면담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북한 초청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교황은 '북한의 공식 초청'이 오면 북한에 갈 수 있다는 입장을 문 대통령에게 분명히 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북한 방문 의사를 밝힌 셈인데요, 실질적으로 그리스도 종교를 부정하고 금지하는 북한 체제의 통치자가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을 초청하려는 이유가 무얼지 궁금합니다.

강철환: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약 7년이 지나서 결국 남북, 북미, 북중 정상회담이 열렸고 김정은은 은둔에서 양지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비핵화라는 기본적인 합의를 하면서 남한과 주변국가들이 북한에 대한 신뢰를 어느 정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핵문제로 촉발된 유엔 제재는 미국의 엄격한 감독하에 모든 국가가 북한과의 경제 협력이나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을 순방하면서 유엔의 대북제재 완화를 설득하고 있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은 북한이 선 핵폐기를 완전하게 하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대북 제재를 해제할 뜻이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북한은 스스로 저버린 신뢰 때문에 유럽국가들은 북한을 믿지 않고 있고 이런 상황은 미국 주도의 북한압박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금 유엔제재를 풀고 숨통을 열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과 수단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교황청이 움직인다면 북한으로서는 엄청난 우군을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전. 교황을 북한에 초청하려는 노력은 김정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대에도 추진됐었지만 무산되지 않았습니까?

강. 그렇습니다. 1991년 김일성 통치 시절에 북한은 교황청과 관계를 회복하고 교황을 평양으로 방문하도록 하기 위해 특수대책반을 꾸렸다고 합니다. 태영호 공사도 최근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김일성 정권은 경제난이 심각해지고 공산권이었던 동유럽 국가들이 자유진영으로 편입하자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교황청과 관계를 회복해 고립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김정일은 교황이 북한을 방문할 경우 곳곳에 숨어있는 가톨릭 신자들이 대놓고 신앙생활을 하거나 이들에 대한 통제불능 상태에 빠질 것을 우려해 교황의 평양 방문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전. 김일성이 죽은 뒤, 김정일 집권 시대에도 이른바 '신자'들을 바티칸에 보내고 교황의 평양방문을 계속 추진하지 않았습니까?

강. 그렇습니다. 북한은 지속적으로 평양의 가톨릭 신자들을 로마 교황청으로 파견해 미사에 참석시키고 직접 교황을 예방하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북한은 실제로 가짜 가톨릭 신자들을 만들어 교황청으로 파견해 직접 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한 북한 신도가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자 교황이 안아주는 일도 있었고 북한당국은 그 가짜 신도가 진짜 신도가 아닌가 추궁하기 위해 보위부 조사까지 벌였다고 합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이후 고립에서 벗어나 경제적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교황의 방문을 추진했지만 내부 사정으로 성사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인 종교의 지도자 교황의 방북이 사실 북한 지도부로서는 북한 주민들, 특히 지하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신앙의 자유에 대한 기대와 모험을 걸게 하는 '위험'도 유발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만큼 체제 유지에 자신이 있다는 걸까요?

강. 북한당국은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통해 체제를 손상시키지 않고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5만명이 운집한 5,1일 경기장에서 연설을 했지만 내용은 모두 북한을 지지해주고 남북한이 하나가 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은 북한당국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교황이 평양에 와서 종교의 자유를 촉구하거나 김정은에게 종교박해에 대해 직접적인 비판을 하지 않도록 한다면 교황방문은 그 어떤 정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 보다 더 큰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통해 많은 자신감을 회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자신들의 약점인 인권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아 체제 유지에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북한체제 유지에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교황방문도 잘만 활용하면 북한체제 유지에 결정적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겁니다.

전. 하지만 모든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지향하는 가톨릭의 근본 교리를 교황이 무시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강. 물론입니다. 만약 교황이 평양에 가서 종교탄압에 대한 언급을 직접 김정은에게 한다면 파장은 적지 않게 클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 정권은 교황이 그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철저한 준비 작업을 하겠지만 교황으로서는 평양에 가서 이용만 당하고 온다면 그것은 그 자체가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으로 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상황을 그대로 거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평양시민들에게 직접 교황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김씨 일가 개인숭배 사상으로 일색화된 북한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들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더구나 북한의 평양은 김일성에 의해 공산화가 되기 전에 원래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기독교 복음화가 급격하게 이뤄졌던 지역입니다. 그래서 북한 곳곳에는 기독교인들이 숨을 죽인 채 기도하며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북한 보위성은 숨어있는 기독교인들을 적발하고 그들을 박멸하는 것이 간첩을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간첩보다 기독교인들이 북한체제를 더 위협한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교황을 북한에 초청하려는 그 근본적인 배경에는 북한의 피폐한 경제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세계적 권위를 가진 교황청과 교황의 입을 통해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이 호소되고 경제적 협력이 촉구된다면 북한이 처한 경제적 고립이 풀리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이끌어 내는데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겁니다.

전: 강 대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내부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지금까지 탈북자단체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