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북조선 내부의 소식과 정보를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건, 사고, 동태, 동향에 관한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청취자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설명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이 시간 함께 합니다. 북한전략센터는 북한 내부의 민주화 확산사업과 한반도 통일전략을 연구하는 탈북자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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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일: 북한의 김정은이 집권을 전후해 지난 9년간 처형한 고위층 간부와 가족이 420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전략센터가 다른 인권단체들과 협력해 북한의 현직 간부 및 고위탈북자, 일반탈북자 등을 대상으로 심층면접 및 서면으로 조사한 결과인데요, 명단에는 아버지 김정일의 넷째 부인 김옥, 고모부 장성택, 암살된 이복 형 김정남 등 친인척을 비롯해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 내각부총리 김용진 등 김정은의 최 측근 참모 들과 핵심 세력 간부들 다수가 잔인하게 처형당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번 조사를 이끈 북한전략센터 강철환 대표와 숙청 처형당한 주요 인물들과 그 배경을 살펴 봅니다.
강 대표님, '김정은 집권 이후 처형 및 숙청자 명단'을 보면 김정은은 공개적으로 친인척과 고위층 간부들을 숙청하고 또 고사총 같은 중화기로 잔인하게 처형시킨 사례가 많은데요, 그것이 아버지 김정일 시대의 숙청이나 인물 제거 방식과 두드러지게 다른 것 같습니다.
강철환: 그렇습니다. 고사총은 전투기 헬기 등을 격추시키기 위한 대공화기입니다. 흉악범죄자 사형에 쓰는 그런 총이 아닙니다.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개인은 물론 그 가족까지 고사총으로 처형한 사례가 빈번합니다. 심지어 화염방사기와 탱크까지 동원해 시신을 훼손한 경우도 있습니다. 공포정치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 이번에 조사한 보고서에는 김정은이 2008년 아버지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직접 국정에 개입한 2010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매년 숙청 처형당한 인물들의 직책과 처형방식 사유 등이 간략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2010년에 처형된 사람들은 주로 대남 공작사업을 주도했던 조선 노동당 통일전선부, 즉, 통전부의 간부들이고, 눈에 띄는 또 다른 인물은 2009년의 화폐 개혁 실패로 처형된 박남기 중앙당 계획재정부장 입니다.
강. 통전부 간부들에 대한 처형사건 배경부터 짚어보겠습니다. 북한에서 2008년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자신들의 체제유지와 연계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통전부는 보수 정당 후보인 이명박이 이른바 BBK 사건 등으로 결국 밀리게 되어 진보 정당의 정동영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김정일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정일도 그렇게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김정일 정권은 1990년대 중반 수백만 아사자들을 내면서 체제붕괴 위기로 내몰렸다가 한국정부의 대북지원으로 겨우 체제가 숨을 돌리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한번만 한국에서
좌파정부가 세워지면 북한이 주도하는 남북통일도 가능할 수 있다고 희망을 가졌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전력을 다해 정동영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도 현금을 포함해 대북지원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김정일이 수락한 것도
좌파세력의 집권을 북한이 우회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520여만표라는 역대 최대 표차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김정일이 불같이 화를 내게 됐고 여기에 연관된 통전부가 쑥대밭이 된 것입니다.
전. 처형당한 인물들의 이름이 남한에서도 익숙할 정도로 남북관계 사업에 관여했던 간부들 아닙니까?
강. 그렇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 남북관계를 주도했던 북한의 통전부 요원들입니다. 한국 언론에도 자주 등장했던 인물들이 대거 처형된 것입니다. 최승철 통전부 부부장은 한국에도 자주 오고 우리측과 회담을 가장 많이 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 말기에 국가보위성 조사를 받게 되면서 아주 침통한 상황에 놓였다고 합니다.
권호응 조평통 서기국 1부국장 박경철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 장우영 조평통 부장 등 한국측과 활발하게 회담장에 나왔던 인사들이 대거 처형장에 내몰린 것입니다.
이들이 간첩죄에 준하는 죄를 뒤집어 쓰고 처형된 것은 김정일이 내린 지시 때문입니다.
남조선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적들의 손에 놀아난 자들을 조사하라는 김정일의 명령을 받은 국가보위성은 통전부에 대한 대대적인 내사를 벌였습니다.
털면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듯이 사람을 잡고자 작정하면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북한입니다.
결국 최승철 부부장이 가장 먼저 체포돼 처형됐고 그 밑에 조평통 서기국 간부들이 줄줄이 체포돼 모두 처형당했습니다. 장우영 조평통 부장은 가족까지 함께 처형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가 한국 측에 매수당 한 혐의가 추가돼서 그런 가족 몰살형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전: 어떻게 보면, 한국 정치 변화 탓으로 희생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10년간 좌익 진보성향 정권에서 우익 보수 정권으로 바뀐 시기 아니겠습니까?
강.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통전부의 몰락은 김정일이 대남정책을 대화 중심에서 강경 분위기로 바꾸겠다는 신호가 된 것입니다. 통전부는 주요 간부들이 모두 숙청당하고 인원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김정일은 정찰총국을 창설하고 현재 통전부장인 김영철에게 정찰총국장 자리를 내어줍니다. 전면적인 대남 강공무드로 나가기 위한 신호탄을 쏴 올린 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전환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명박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와 압박을 동시에 구사하는 한가한 정책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천안함 사건을 당하고 나서야 대북 강경정책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그로부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통전부는 암흑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남북이 대화국면으로 돌아서면서 통전부가 기구를 확대하고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전. 70살 고령의 박남기 노동당 재정계획부장과 그 가족이 같은 해에 처형됐습니다. 그 배경을 설명해 주시죠.
강. 김정일, 김정은 공동정권은 장마당이 지나치게 확대되자 그것을 억제하기 위해 무모한 화폐개혁을 단행합니다. 화폐개혁으로 생겨난 자금으로 북한정권에 우호적인 노동자, 농민에게 돈 살포를 해서 김정은 체제를 강화하겠다는 발상으로 단행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경제가 완전히 붕괴되는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온 나라가 재산을 잃고 거리에 나앉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김정일, 김정은에 대한 인민들의 인식은 극도로 나빠지고 심지어 군대에 나간 어린 병사들이 고향에서 재산을 잃고 고통 받는 부모들을 보면서 이런 나라를 내가 왜 지켜야 하는가 반문할 정도로 여론이 악화되었습니다.
사실 화폐개혁은 노동당 계획재정부에서 고안한 것이지만 사실상 김정일 부자가 주도해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론이 지나치게 악화되자 그 책임을 박남기 부장과 리태일 부부장에게 뒤집어 씌어 그들을 잔인하게 고사총으로 처형함으로써 실패한 화폐개혁을 덮으려 했습니다.
아무런 실권도 없는 박남기, 리태일 당 계획재정부 부장과 부부장만 억울하게 처형당한 것입니다.
전. 2011년에도 여러 명의 간부들이 처형당했는데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죠.
강. 당시 김정남과 연계되었거나 김정은 후계구도에 걸림돌이 되었던 주요 인사들이 처형당했던 시기입니다. 림꺽정의 저자인 홍명희의 손자, 홍석형 함경북도 당 책임비서가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과의 관계 때문에 간첩죄로 처형당했습니다. 또 김정일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며 국가보위성 반탐부부장으로 보위성내에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던 류경 국가보위성 부부장도 결국 김정일과 장성택에 의해 잔인하게 처형되고 가족들은 모두 수용소에 보내졌습니다. 곽정철 노동당 39호실 부부장과 베이징 고려항공 대표 등 여섯 명도 김정남과의 관계를 유지하다가 결국 김정은에게 미운 털이 박혀 처형당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전: 강 대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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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내부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지금까지 탈북자단체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