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북조선 내부의 소식과 정보를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건, 사고, 동태, 동향에 관한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청취자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설명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이 시간 함께 합니다. 북한전략센터는 북한 내부의 민주화 확산사업과 한반도 통일전략을 연구하는 탈북자 단체입니다.
전수일: 북한의 김정은이 집권을 전후해 지난 9년간 처형한 고위층 간부와 가족이 420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전략센터가 다른 인권단체들과 협력해 북한의 현직 간부 및 고위탈북자, 일반탈북자 등을 대상으로 심층면접 및 서면으로 조사한 결과인데요, 명단에는 아버지 김정일의 넷째 부인 김옥, 고모부 장성택, 암살된 이복 형 김정남 등 친인척을 비롯해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 내각부총리 김용진 등 김정은의 최 측근 참모 들과 핵심 세력 간부들 다수가 잔인하게 처형당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번 조사를 이끈 북한전략센터 강철환 대표와 숙청 처형당한 주요 인물들과 그 배경을 살펴 봅니다.
강대표님,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2013년 12월경 처형된 과정에 대해 지난주 살펴봤습니다. 이번 주에는 김정일이 죽고 나서 김정은의 후견자로서의 고모부 장성택이 어떻게 조카 김정은의 경쟁자로 부상했고 또 그것이 결국 자신과 측근 부하들의 처형으로 결말지게 됐는지, 북한전략센터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살펴보기로 하죠.
강철환: 장성택 사건은 김정은과 장성택 간에 노선갈등과 결정 구조의 엇박자로 불만이 고조되어 있던 상태였습니다. 장성택이 김정은을 너무 우습게 안 것도 한 원인이 됩니다.
2011년 12월 매부 김정일이 죽고 난 뒤, 장성택이 국정 전반을 운영했기 때문에 권력의 무게는 장성택에게 넘어갔고 거기에 붙은 사람들은 사실상 장성택이 대세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동당 54부의 장수길 부부장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북한에서 자금은 노동당 자금 외에 그 누구도 개별적 부서가 마음대로 돈벌이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모두 당 서기실과 사실상 김정일의 개인 자금줄인 노동당 39호실의 통제하에 군부와 각 기관들이 외화벌이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노동당 행정부 54부는 39호실을 능가하는 외화벌이를 시작하면서 김정은과 그 세력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전. 그렇다면 장성택 숙청 사건도 결국 자금력에 결부된 이권투쟁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강. 국가 통치에 자금은 탱크에 기름과 같은 것이니 권력을 부리려면 돈줄이 받쳐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북한도 예외가 아니라고 봅니다. 장성택은 김정일이 사망하고 나서 김씨 일가가 가진 막강한 돈줄을 좀 줄여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일가가 너무나 많은 돈줄을 차지하고 있다 보니 민생을 책임진 내각의 자금이 노동당 39호, 그리고 김정일 개인금고인38호실 자금보다 훨씬 작은 비정상적인 상황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김정은이 아버지로부터 권력은 물려받았지만 아직 물정을 잘 모를 때 노동당 38호실을 해산시키고 김씨 일가의 전용 농장인 8호, 9호농장을 폐쇄 시킵니다. 물론 김정은은 당시에 물정을 잘 모르니까 장성택이 하자고 하는 대로 한 것입니다. 그 결과 김씨 일가에 과도하게 집중된 국가 자금을 내각으로 돌릴 수 있게 되고 당시 장성택의 처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가 책임진 노동당 경공업부가 38호실 자금을 활용하게 되면서 비교적 많은 자금을 확보하게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당 행정부 54부 외화벌이 기관의 대폭 확대였습니다. 이들은 군부가 독점하던 석탄 수출을 가져와 10억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이면서 막강한 자금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리고 행정부 54부를 책임진 장수길의 권력도 덩달아 높아지게 됩니다. 장수길의 사람 됨됨이로 봐서 그가 권력에 도취돼 막무가내로 장성택에게 충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 김정은이 장성택 일파를 숙청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결국 돈줄 확보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는데요, 그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설명해 주시죠.
강. 그렇습니다. 저희가 고위 탈북자와 북한 현직 간부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장성택과 김정은 세력간의 긴장과 알력에 기폭제가 된 사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황해도 지역에서 노동당 54부 산하 외화벌이 기관과 군부 산하 레이더 기지에서 외화벌이 영역을 놓고 싸움이 벌어졌는데 김정은 휘하 인민군대가 장성택이 주도하는 노동당 행정부 54부에 밀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인민군 총참모장 리영길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가 인민보안부, 인민내무군 등 무력을 대폭 확보한 것은 군에 대한 일관된 지휘체계를 흐트러뜨리고 군대 질서를 문란하게 한다며 인민내무군을 인민무력부로 흡수해야 한다고 김정은에게 제안하게 됩니다. 김정은도 황해도 지역의 외화벌이 싸움 결과를 보고 그 제안에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하지만 당 행정부에서 리영길 총참모장이 김정은 최고사령과의 지시를 하달하는 과정에서 장수길이 그 명령을 거부하고 장성택과 의논해야 한다며 반발하자 김정은 세력은 그들을 반혁명 세력으로 만들어 김정은에게 보고하게 됩니다. 김정은 자신도 그간 고모부 장성택 일파의 거대한 힘에 위협을 느껴왔고 불만이 쌓여왔던 터라 일격에 그들을 소탕하기 위한 비밀 작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전. 숙청작전이란 말인데요, 숙청의 시작은 장성택의 최 측근 참모들로부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강. 그렇습니다. 김정은과 그 일당은 장성택을 제거하려면 그의 오른팔과 왼팔을 먼저 제거한 후 장성택을 제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장성택의 오른팔인 리용하 노동당 행정부 부부장과 왼팔격인 장수길 행정부 54부 부부장을 전격 체포하게 됩니다. 당 행정부에 대한 조직지도부의 일상적 검열이라는 구실을 부쳐 장성택을 안심시켜놓은 후 불시에 들이닥쳐 그들을 체포한 것입니다. 사실 장성택이 장악한 노동당 행정부에는 인민보안부(경찰)와 인민내무군 등 20만 이상의 병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조직적으로 저항한다면 엄청난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고 김정은과 장성택은 명운을 건 건곤일척의 결전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성택이 김정은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결정적으로 큰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전. 체포된 장수길, 리용하 부부장은 참혹하게 공개처형됐다죠?
강. 그렇습니다. 김원홍의 국가보위성이 이 두 사람을 먼저 체포하고 그들의 항변을 듣지도 않고 무자비하게 고문합니다. 그 뒤에 강건 군관학교에서 노동당 중앙 간부들을 총 집결시켜 고사기관총으로 그들을 처형하기에 이릅니다. 2013년 11월 중순으로 전해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장성택도 김정은을 호위하는 974부대에 연행돼 격리된 상태에 있었는데, 두 부하의 처형장에 나가도록 해 그들의 처형을 지켜보게 했다고 합니다. 장성택이 처형장의 가장 앞줄에 앉혀진 상태에서 장수길, 리용하는 240발이 장전되는 고사총 4대에서 발사되는 1000여발의 고사포탄에 맞아 형체도 없이 시체가 갈기갈기 찢어지게 됐다고 합니다. 장성택은 두 부하의 참혹한 처형을 지켜보며 기절했다고 합니다.
전. 장성택의 처형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많았습니다. 일부 외신은 굶주린 개들에게 물어 뜯겼다고 보도했는가 하면,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장성택도 두 부하처럼 기관총 난사로 처형당했을 것이라고 한국 언론에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강. 저희 조사에 따르면 장성택 부장은 공개처형을 당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보위성 비밀 지하실에 비공개 처형장이 있다고 합니다. 많은 요인들이 비공개적으로 처형당할 때 사용되는 끔찍한 곳 중에 하나입니다. 장성택은 이곳에서 AK소총 9발을 맞고 처형당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전. 장성택 숙청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부서는 그가 이끌었던 노동당 행정부가 아니겠습니까? 강. 그렇습니다. 노동당 행정부는 북한의 사법계통을 총괄하는 부서이기 때문에 많은 인원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당시 부부장만 해도 11명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두 명만 빼고 9명의 부부장이 리용하, 장수길에 이어 모두 공개처형 당하는 비극을 맞습니다. 생존한 이 두 명은 바로 현재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겸 당 부위원장인 리수용 당시 행정부 부부장과 성명 미상의 부부장 이었습니다. 리수용 부위원장은 당시 장성택 핵심 세력으로 분리돼 처형자 리스트에 올랐지만 김정은과 스위스에서 오랜 인연을 맺었던 것이 작용해 김정은이 그를 특별하게 사면하게 됩니다. 무명의 부부장은 장성택에 의해 천거돼 갖 행정부에 들어간 인물로 장성택과의 인연이 깊지 않았다는 이유로 겨우 목숨을 건지고 한직으로 좌천됩니다. 당시 처형당한 부부장으로는 량청송과 박춘홍 공병 7총국 정치위원겸 부부장입니다. 량청송 부부장은 가족까지 함께 몰살당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장성택과 함께 북한을 변화시키려고 했던 그나마 북한에서 쓸만한 간부들 9명이 모두 고사총에 맞아 죽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고 그 이후 하부조직으로 이어지는 숙청은 더 처참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
전: 강 대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내부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지금까지 탈북자단체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