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2인자였던 황병서, 복권했나

0:00 / 0:00

매주 화요일 북조선 내부의 소식과 정보를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건, 사고, 동태, 동향에 관한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청취자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설명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이 시간 함께 합니다. 북한전략센터는 북한 내부의 민주화 확산사업과 한반도 통일전략을 연구하는 탈북자 단체입니다.
전수일: 작년 10월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실시한 총정치국 검열을 받고 해임된 것으로 알려진 황병서
전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최근 김정일 생일 중앙보고대회와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가 복권이 된 것 아니냐는 일부 북한 전문가들의 시각이 있습니다.

강철환: 복권이 됐더라도 완전한 복권은 아닐 것입니다. 군복이 아닌 양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나온 걸 보면 군이 아닌 당의 간부로 복귀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전. 그렇다면 황병서가 몇 달도 안돼 복권했을 그 배경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강. 공포 통치로 간부들을 숙청 처형하는 행태를 이어가고 있는 김정은이 아마도 참모와 간부들의 불안감과 반감 확산을 차단하고 지도자로서의 영상을 유지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황병서의 인물 됨됨이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평창겨울철올림픽 북한 고위급 대표단장으로 왔던 그는 90대 중반의 나이이지만 자기관리를 잘해서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건강뿐 아니라 아부와 처세술도 뛰어나 그 혹독한 독재자의 하수인을 하면서 가장 오랫동안 단 한 번의 처벌도 받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서울에서도 자기 손녀 뻘인 김여정에게 자리를 양보하면서 주인과 머슴의 위치를 잊지 않았습니다. 과거 김정일을 찾아간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하는 자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지켜봤지만 자기 아들 뻘인 김정일에게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김영남은 아첨과 보신주의의 화신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황병서 역시 철저한 아부와 보신주의로 김영남처럼 장수하면서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황병서가 맡은 자리는 김영남과 달랐습니다. 김영남은 아무런 권력이 없는 무늬만 있는 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원장이지만 황병서는 군대를 총괄하는 총 책임자였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아부의 달인이라고 해도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황병서의 잘못은 너무나 아부를 잘했고 아무 잘못도 없는 게 큰 잘못인 것입니다. 철저하게 김정은에게 충성하는 것이 능사인 김영남의 직책이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군대는 실제적인 권력이 있는 곳이고 잘 못하면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황병서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권력이었고 아무것도 안하고 버티기에는 그 책임감이 막중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이미 죽었지만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와 김정은의 거듭되는 숙청에 환멸을 느낀 여론 때문에 목숨은 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황병서와 같은 특등 아첨꾼까지 죽인다면 여론은 더 나빠질 것입니다.

전: 작년 초 김원홍 전 국가보위성 부상의 경우 해임되면서 숙청설이 나돌았지만 그도 결국 인민군 총정치국 부국장으로 재기용되지 않았습니까?

강: 그렇습니다. 하지만 김원홍은 잠깐만 운이 좋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이름 있는 고위층들이 무더기로 처형당하면서 김정은에 대한 고위층 간부들의 인식이 급격하게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김원홍의 경우에도 보위성 사건의 주동자이고 최고 책임자로서 당연히 숙청되어야 할 처지이지만 하급 간부들만 무자비하게 처형당하고 정작 본인은 멀쩡하게 살아남은 것을 두고 모두 의아해 하고 있습니다. 김원홍이 살아남은 것은 북한체제의 마지막 보루인 국가보위성 조직 전체의 사기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그의 목숨은 거두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전. 하지만 몇 달도 안돼 작년 10월 김원홍은 군 총정치국 숙청사건 때 버티지 못하고 결국 쫓겨나지 않았습니까?

강. 그렇습니다. 아마 김정은 세력은 김원홍을 완전 제거할 기회를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은 보위성 전체 성원들이 보는 눈이 있어 함부로 죽이지 못했지만 이미 총정치국 자체를 검열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김정은 세력은 결국 나중에 죽을 자리인 총정치국 부국장 자리에 김원홍을 앉힌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위성 숙청 때 살아남았던 김원홍이 두 번째 그물에는 결국 걸리고 말았습니다. 김씨 일가에게 찍힌 자들은 예외 없이 살아남기 힘들었습니다.

전. 북한의 권력 서열이 너무 자주 바뀌니까 핵심 참모들도 심리적 고통이 클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최룡해는 한때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위세를 떨치다가 당 근로단체 비서로 좌천돼 얼굴을 구긴 적이 있었는데요, 하지만 지금은 당조직 비서로 권력의 2인자가 됐고 황병서는 초라하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간부들은 권력무상을 매일 되뇌면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강. 사실 김정은이 워낙 철이 없는 것은 이미 북한에서는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절대적 신으로 평가 받는 북한의 최고지도자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출세하다가도 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최룡해는 사실 김정은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의 상징적 이미지와 항일빨치산의 중심이라는 것 때문에 황병서와 그 주변 인물들로부터 많은 모함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김정일 시대에 이어 김정은 시대에도 함경도 농촌으로 쫓겨 가 농사를 짓는 곤혹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권력의 최후 승자처럼 최룡해는 다시 날개를 달고 있는 상황입니다. 황병서가 아무리 아부에 능하고 처세술에 밝지만 권력의 2인자에서 평범한 간부로 내려먹었으면 자존심에 큰 상처가 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을 표면상에 내색하면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어 참고 또 참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전. 지금 북한의 중간 간부층은 사실상 세대교체가 다 됐다고 하지 않습니까?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국정에 전면 등장한 것이 그 신호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강: 그렇습니다. 이제 김정은 체제가 장기 생존한다면 지금의 황병서나 최룡해의 세대는 곧 물갈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아버지 김정일 시대에 인물들인데 아직도 김정은 체제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황병서가 뒤로 물러나면 김영남도 뒤따라 물러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여정이 너무나 젊은 나이에 파격적인 역할을 했고 현송월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정은의 입장에서도 권력이 바뀌면 새로운 인물이 전면에 나서야 하지만 북한같이 취약한 나라에서는 안정성을 깰 수 있는 그런 권력이동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유엔제재 고비를 잘 넘기고 북한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조연준 체제에서 조용원 체제로 바뀌고 국가의 주요기관들도 50대 초반의 간부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원하는 것은 당면한 위기를 넘기는데 구 인사들을 활용하고 신체제가 안정되면 본격적인 자신의 시대를 열려고 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능력 없으면 자리를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부들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가차 없이 내치고 새로운 사람을 앉히고 있습니다. 이런 능력위주의 인사는 원칙적으로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김정은 자신이 너무나 무능력자라는 데에 있습니다.

전: 강 대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내부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지금까지 탈북자단체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