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정상회담과 김정은 위상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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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 북조선 내부의 소식과 정보를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건, 사고, 동태, 동향에 관한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청취자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설명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이 시간 함께 합니다. 북한전략센터는 북한 내부의 민주화 확산사업과 한반도 통일전략을 연구하는 탈북자 단체입니다.
전수일: 김정은이 아버지 죽고 집권한 2012년, 봄에 개정된 헌법에 북한이 핵 보유국이라는 걸 처음으로 명시했습니다. 또 김정은 체제의 기조라고 할 수 있는 '10대 원칙'에도 핵 보유가 들어가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과 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의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의제로 삼겠다고 해, 전 세계가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이런 북한 지도부의 180도 입장 변화를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지 궁금합니다.

강철환: 현재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 누구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고 답할 것입니다. 북한에서 핵은 정권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핵 강국을 외치며 큰 소리 쳐왔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집권 이후 인민군대 고위간부들 앞에서 핵을 앞세워 2015년까지는 무력통일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고 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국제사회의 온갖 압박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이 갑자기 비핵화에 대해서 말을 바꾸는 것은 누가 봐도 일시적 위기를 넘기기 위한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 내부 간부 층에서는 이런 상식적인 상황에서 김정은이 왜 갑자기 말을 바꾸는지 그 의도를 간파하느라 분주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핵 개발로 초래된 북한 주민들의 참담한 상황이 앞으로 풀릴 수 있을 것인지, 기대를 해도 되는 것인 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전. 그런 기대가 실현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겠지만, 실제로 김정은의 비핵화 논의 용의 배경에 대해서는 북한 주민들만 아니라 외부세계에서도 가장 궁금해 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강. 물론입니다. 저의 단체와 연계된 북한 내 고위소식통에 따르면 일부 북한 고위 간부들은 이번 김정은의 대담하게 보이는 미국과의 정상회담 제안은 대외적인 쇼, 즉 전시효과를 노리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또 이 쇼는 핵 문제 해결이나 경제제재를 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문제에 더 큰 목표를 두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 내 김정은을 포함한 최 상류층은 유엔제재로 국가전체가 위기에 내몰리고 국가기업들이 휘청거려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북한주민들 수백만이 굶어 죽어도 사치생활은 늘 보장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주민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그런 결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체제 위기라고 느끼는 것은 북한 전반적인 경제적 붕괴도 한몫 하겠지만 그에 따르는 최고 통치자 김정은 자체의 상징성이 추락하고 희망자체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군대의 전투력은 무기와 환경에 좌우되지만 군인들의 정신력에서 좌우되기도 합니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 주민은 고통을 받아도 희망이 있다면 지도자 김정은을 그래도 따라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희망 자체가 사라지게 되면 김정은 정권은 진짜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 최고 지도자에 대한 숭배 사상과 연관이 있다는 설명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니까 국제사회가 김정은을 상대해 주고 인정해 줌으로써 그의 지도력이 북한 주민들에게도 인정받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얘깁니까?

강.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김정은의 선대에서도 그런 위기 극복의 사례가 있습니다.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으로부터 사회주의 이념에 맞지 않게 권력 세습을 하면서도 자신은 수령의 아들이기 때문에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능력 있고 지도력 있는 수령의 전사라고 자신을 추켜세웠습니다. 김일성 시대에는 배급이라도 제대로 주면서 김일성 본인도 경제문제에 일정부분 관심을 가졌지만 김정일은 경제를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1990년대 초 경제위기가 왔지만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국 고난의 행군 시절 수백만이 아사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김일성의 무덤인 금수산 기념궁전을 세우는 데에 약 9억 달러를 탕진했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측근들은 물론 전체 북한주민들로부터 외면당하던 시점에 한국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것입니다. 경제의 완전한 붕괴로 인민군대에서 조차 아사자가 속출하고 그들을 구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한국정부의 생명줄 같은 5억 달러가 김정일 손에 들어가면서 아주 급박한 상황을 넘기게 됐고 그 이후부터 막대한 한국의 경제원조 덕분에 한숨 돌리고 체제 정비를 하게 됩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 방문 그 자체는 김정일에게 수십억 달러의 현금을 준 것보다 더 큰 선물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수령의 상징성과 희망이라는 선물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북한 내 많은 사람들, 특히 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그때 김대중 정부가 북한을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북한정권은 절대로 존재할 수 없었다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김정은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 아버지 김정일처럼 자신이 북한의 상징이고 희망이라는 것을 북한주민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입니다.

전. 북한 국민에게도 남북정상 회담은 아버지인 김정일 때에 이미 두 차례 했으니까 그리 신기할 게 없겠지만, 철천지 원쑤라는 미국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는 것은 진짜 김정은이 위대한 수령이기 때문이라고 선전할 만하겠네요.

강. 그렇습니다. 그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사실 중국이나 러시아의 경우, 시진핑 주석이나 푸틴 대통령도 우방인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만나기를 꺼려해 왔고 사실상 만나는 것 자체를 방치해왔습니다. 그들이 김정은을 회피하는 것은 지도자로서의 역량도 부족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인 철없는 살인마라는 낙인 때문이기도 합니다.

북한은 사실상 중국과 러시아의 지도자들과 김정은의 면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막후 노력을 무진장 해왔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김정은이 만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과거 김일성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났고 김정일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로라 링, 유나 리, 두 미국 기자들이 북중 국경지역에 갔다가 북한 보위성의 공작에 말려 북한에 끌려간 이후 그들을 풀어주는 대가로 평양에 불려간 것입니다. 근데 이 공작을 주도한 류경 전 북한보위성 부부장은 이 공로로 공화국 영웅칭호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김정일도 현직이 아닌 전직 대통령을 만난 것을 최고의 선물로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김정은이 선대에서도 하지 못했던 현직 미국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면 국민 사이에 최고 통치자 수령으로서의 영상은 크게 날릴 것이고 그 위상도 올라갈 것이 뻔합니다.

전. 만일 김정은 개인의 통치 권위와 지도력 영상을 내부적으로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 미-북 정상회담 제안의 주요 배경이라면 이번 정상회담 준비에 엄청 신경을 쓰겠네요.

강. 물론입니다. 지금 북한지도부는 김정은의 남북정상회담, 또 미-북 정상회담 준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북한 같은 수령 독재 국가에서 하급관리들의 역할은 수령의 생각이 어디에 있느냐를
잘 맞추고 따르는 것입니다. 지금 당 조직지도부, 외무성, 통일전선부 등 권력기관들은 모두 김정은의 정상회담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체제 생존을 걸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전: 강 대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내부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지금까지 탈북자단체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