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북조선 내부의 소식과 정보를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건, 사고, 동태, 동향에 관한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청취자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설명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이 시간 함께 합니다. 북한전략센터는 북한 내부의 민주화 확산사업과 한반도 통일전략을 연구하는 탈북자 단체입니다.
전수일: 한국에서 2015년에 상영돼 천만 명 이상이 본 영화 ‘암살’은 일제 강점기 때 항일투사 들의 활약과 암투를 다뤘는데 영화에서 항일운동가 김원봉이 김구 못지않은 인물로 나와 주목을 끌었습니다. 임시정부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였는데 남쪽 출신의 그가 해방 후 귀국해 1948년 남북협상단 일원으로 북한에 갔다가 돌아가지 않고 북쪽 고위급 정치인이 됐습니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 군사위원회 평안북도 전권대표로 훈장까지 받았던 김원봉은 1958년 김일성에게 숙청됐습니다. 그런데 올해 임시정부 수립 백 주년을 맞아 한국 문재인 정부에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유공을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보수 진영에서는 남침에 앞장섰던 인물이라며 반발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북한 지도부에서도 김원봉이 뒤늦게 남쪽에서 부각되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 매체에서는 김원봉 이름 석자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강철환 대표: 김원봉의 존재는 북한 출신인 저도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그가 한때는 북한에서 최고위직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우리에게는 잊힌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영화 ‘암살’을 보면서 새삼 김원봉의 위대한 활약이 드러나고 많은 젊은이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김원봉에 대한 재조명이 일어나고 그에게 서훈해야 한다는 주장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6.25 전쟁에 동참한 그에게 서훈은 가당치 않다는 내부 반발 또한 거셉니다. 항일 영웅인 그가 북한에서는 전혀 존재감도 없고 잊혀진 인물이라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다. 오직 김일성만이 유일한 항일의 영웅이고 그 외의 항일 운동가들은 아무리 큰 업적을 세웠어도 그것은 김일성에 가려 전혀 드러나는 일이 없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영화 암살이 나오면서 김원봉이야 말로 항일운동의 진짜 영웅으로 부각되면서 그를 숙청한 북한 정권에 대해 알게 되고 김일성의 항일투쟁의 허구 또한 드러나기 때문에 북한 정권으로서는 김원봉의 존재가 드러나는 게 달갑지 않은 것입니다.
전. 스스로 북한으로 넘어가 북조선을 위해 활약했던 김원봉이 김일성에게 숙청당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강. 김원봉은 북한에서 반당 반혁명분자로 총살당한 사람입니다. 연안파의 거두 김두봉의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연안파는 김두봉, 최창익, 무정 등 조선의용군 출신의 무장들로 중국 공산당의 비호를 받는 최대 항일세력이었습니다. 이들은 북한에서 김일성이 노동당을 사당화하고 권력을 개인 독점하는 것에 맞서 집단 권력 체제를 요구하며 김일성에게 대항했고 김일성 일당은 이들 때문에 한동안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군권을 가지고 있었던 최용권이 김일성의 손을 들어주면서 결국 쟁쟁했던 항일 운동가들은 김일성 세력에 의해 무참하게 처형당하고 그의 가족들은 대대손손 수용소에 갇혀 가문 자체가 멸족에 이르게 됩니다.
항일 운동가면서 같은 공산주의 계열의 혁명가들이 같은 사회주의자들에게 도륙을 당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김일성 집단의 부도덕성을 여실히 드러낸 것입니다.
전. 그렇다면 김원봉뿐만이 아니라 당시 북한으로 몰려간 쟁쟁한 항일운동가들은 결국 항일투쟁에
별다른 활약이 없었던 김일성에게는 눈엣가시였겠네요?
강. 그렇습니다. 사실 북한은 남한에 친일국가라는 틀을 씌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폄훼합니다. 그래서 한국 내 친북성향의 주사파 세력은 한국의 정통성도 친일로 매도해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항일을 명분으로 국가를 세우고 자신의 통치기반을 만든 김일성 집단이 가장 많은 항일 운동가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그야말로 진짜 친일파는 북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가 있습니다. 일제 해방 이후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 운동가들은 모두 북한으로 몰려갔습니다. 소련파와 국내파까지 가세해서 항일세력이 북한 정권을 세우는 데 많은 역할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항일운동을 주도했던 많은 인물은 대부분 처형당했고 항일운동 자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김일성 집단만이 대단한 항일운동을 한 것처럼 과대 포장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실제로 항일운동을 하고도 북한을 추종해 비참한 최후를 마친 항일 영웅들은 남과 북에서 모두 외면당한 셈입니다.
전. 그걸 들으니까 1930년 공산당원에 암살된 김좌진 장군이 생각납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로서 청산리 항일 전투를 승리한 독립군 지휘관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북한에서는 김좌진 장군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면서요?
강. 그렇습니다. 저도 북한에 있을 때 한국 영화 ‘장군의 아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김좌진 장군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이 영화가 북한 서민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북한 보위성이 영화를 보지 못하게 하려고 혈안이 되어 통제한 적이 있었습니다. 장군의 아들은 실제로 일본 강점기 때기를 그대로 묘사했는데 북한 주민들이 받은 충격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현재 북한에서 시행 중인 연좌제가 일본 강점기 때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김일성 말고도 걸출한 항일 영웅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군을 가장 많이 죽인 김좌진의 아들 김두한이 종로 바닥에서 활개 치고 다녔다는 것 자체가 사실 북한 주민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북한 같으면 역적의 자식으로 수용소에 갇혀야 정상인데 일본 강점기 때기에도 연좌제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위주로 항일운동을 묘사한 북한에서 김좌진과 같은 진정한 항일 영웅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김일성 우상화에 큰 타격을 줄 수가 있습니다.
전. 김일성이 연안파 등의 도전을 물리치는데 큰 도움을 준 최용건도 결국 숙청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지요?
강. 맞습니다. 사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에 있었던 대단한 항일 영웅이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최용건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입니다. 중국 공산당 휘하의 항일군대였던 팔로군 소속으로 참전하고 소련에 가서도 김일성보다 직위가 높아 그가 살아 있을 때는 김일성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최용건이 김씨 왕조에서 숙청된 것은 그가 수령세습을 반대했기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에 막강한 지분이 있고 군사전략가로 북한에서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이지만 결국 숙청당했습니다. 김정일 시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묘비는 구석으로 몰렸고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김정일의 모친 김정숙이 혁명열사능 중심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전. 그러고 보니, 지금 한국의 진보 정부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 운동가들의 공을 인정하고 서훈하려는 움직임이 북한 김씨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만 하겠네요.
강. 그렇습니다. 대단한 항일 운동가들이 모두 북한에 몰려갔지만 북한에서는 사실 이름 존재도 없었던 오씨 가문이나 김책 정도가 항일투사로 알려져 있을 뿐 진짜 쟁쟁한 항일운동가들은 모두 역사에서 사라져버렸고 지금까지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항일하고 북한 재건에도 큰 몫을 했지만, 그들 본인은 물론이고 그 가문 대대로 노예 수용소에서 멸족 당하는 비극을 맞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 운동가들이면서도 김일성 세력에 숙청된 김원봉 같은 인물이 다시 재조명되면 북한 지도부의 죄만 드러나기 때문에 현재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김원봉이 부각되는 것은 정말 원치 않는 일인 것입니다. 진정한 항일 운동가들을 몰살시킨 김씨 집단이야말로 어쩌면 항일을 가장한 친일 행위를 자행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내부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지금까지 탈북자단체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