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전략적 인내

북한이 정권수립 70주년(9·9절)을 맞아 지난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북한이 정권수립 70주년(9·9절)을 맞아 지난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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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 북조선 내부의 소식과 정보를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건, 사고, 동태, 동향에 관한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청취자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설명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이 시간 함께 합니다. 북한전략센터는 북한 내부의 민주화 확산사업과 한반도 통일전략을 연구하는 탈북자 단체입니다.
전수일: 9.9절 행사에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등장시키지 않은 것에 대해 미국의 주요 언론사를 비롯한 세계 언론은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는 조처로 풀이하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 자신도 종전의 행사와는 달리 ICBM이 빠진 데 대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감사를 표명했습니다. 중국 언론도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지속을 위해 핵과 미사일 위력 과시를 자제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즉흥적인 통치자로 알려진 김정은이 실리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봐야 할까요?

강철환: 김정은과 그의 선친 김정일은 아무리 부자지간이지만 같은 북한을 통치하면서도 그 통치 방식에 극명한 차이를 보여 왔습니다. 서방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아버지 김정일보다 적고, 정책결정도 즉흥적이며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버지와 다른 김정은의 스타일입니다. 이번 9월 9일 화성 15형 개량형의 등장으로 다시 국제사회를 긴장시킬 것으로 봤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비해 즉흥적 행동이 자제되고 실리를 찾는 모습입니다. 김정은은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강경에 또 강경 정책으로 일관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김정은 위원장은 극도의 자제력과 전략적 인내를 보여주며 실리를 취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 보입니다. 시진핑 주석은 약속을 어기고 평양 방문을 하지 않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중국 권력의 3인자를 깍듯이 예우했고 가는 날에도 김여정과 최룡해가 직접 배웅을 할 정도로 세심한 배려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퍼레이드를 할 때 화성 15형 개량형 미사일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했고 북한도 김정은의 지시에 의해 9축 운반차에서 12축 운반차를 새로 만들어 김일성 광장에 등장할 것으로 내부에서는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형 미사일이 등장하지 않아 김정은이 도발보다는 인내를 선택해 내부 권력층에서도 크게 안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전. 최근 평양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의 특사단을 만나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그러니까 2021년 1월 이내에 비핵화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고 하던데요. 그 배경이 무얼까요?

강. 사실 북한내부, 특히 김정은 본인은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일방적인 북핵포기 요구와 경제제재, 또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의 방북 무산 등 골치 아픈 일들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불편한 심사를 감추고 원만하게 풀어보려는 의도는 확실해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까지 보내면서 2차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들이 김정은의 전략적 인내라고 판단됩니다. 북한은 지금 체제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핵 문제는 김정은 본인이 없애고 싶다고 해서 당장 없앨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체제 생존의 전략적 핵심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핵이 사라지면 당장 북한은 안보 위기에 직면합니다. 엄청난 비대칭적 불균형이 발생하기 때문에 인민군대의 사기저하와 실제적 전력 약화로 체제 자체 생존도 불투명해집니다. 그래서 핵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고 이것은 단순한 외부용이 아니라 내부적 요인이 더 간절한 상황입니다. 더 큰 문제는 핵 포기 과정에 심각한 경제적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는 가가 최대의 관건입니다. 북한사람들은 자신들이 목숨과 바꾼 핵무기를 아무런 대가 없이 없앤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김정은이 거짓으로 일부 핵을 감춰놓고 일부를 내놓으면서 거짓말을 해도 사람들은 그 대가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보면 핵을 포기하는 과정도, 북한주민에게 설명하는 것도 매우 복잡하고 중요한 상황입니다. 이런 복잡한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2년 이상의 시간을 요구한 것이라고 저는 풀이합니다.

전. 미국 정부는 북한이 제의한 2차 정상회담에 대해 공식적으로 환영했고 구체적인 일정을 북측과 협의하는 과정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2차 회담에 합의하는 데에 미국이 어떤 조건을 내 걸지, 실제 회담에서는 어떤 북한의 조치를 요구할 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북한으로서는 지난 6월 1차 미북 정상회담 전에 한국 문재인 정부의 중재를 활용한 것 처럼 이번에도 9월 18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국정부가 거들어 주길 바라지 않겠습니까?

강. 현재 북한은 문재인 정부에 강렬한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북한의 요구를 그럴듯하게 미국에게 설명하고 트럼프가 거기에 응하도록 하는 한편, 한국의 문재인 정부에게는 그와 공통된 입장을 갖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 특사를 보내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다시 화해의 몸짓을 보내도록 했습니다. 어떻게 하나 여러 문제를 김정은 정권과의 화해협력으로 끌고 가려는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의 전략적 목표가 비슷해졌기 때문에 남한 북한
두 정권은 미국의 트럼프 정권을 설득하면 얼마든지 북한의 현재 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 북한의 현재 위기라면 경제난과 민생난 아니겠습니까?

강. 그렇습니다. 피폐한 북한 경제를 살려야 하는 게 북한이 직면한 최대 과제이고 김정은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추구하는 핵심 요구는 사실 경제적 제재를 풀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에 앞서 체제 보장 조건으로서 종전선언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런 안보적 보장이 최대 과제 자체는 아닙니다. 안보 하나로 북한 주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기 이전에는 그 어떤 보상도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북한과 미국 간의 상충된 요구가 팽팽한 가운데 이번 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 한국의 경제인들이 대거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방북할 것이라고 합니다. 북한의 비핵화 이전에 한국의 경제인들이 북한에 가는 것은
그 자체가 유엔의 대북제재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무리한 경제인들의 방북을 문재인 정부가 성사시키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 이전에 남북 경제협력을 먼저 견인하려는 계산이 있을 겁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그에 대한 보상의 하나로 북한의 철도, 도로와 같은 직접적 현금이 북한정권에 들어가지 않는 북한의 기반시설 구축을 추진하려 하고 있고 미국정부가 이를 수용토록 하려고 할 겁니다. 북한의 필요에 부응하는 남북협력의 큰 그림을 성사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비핵화 이전에는 현금 지원이 대북제재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반시설 구축과 같은 물자 지원은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을 겁니다. 물자는 핵과 미사일에 직접적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물 타기해서 미국이 북한의 경제 회생과 관련된 단계적 보상을 허용할 경우 남과 북이 추구하는 남북 경제협력은 구체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 나아가 유엔제재로 묶여 있는 북한의 광물자원에 대한 수출도 미국이 풀어줄 것을 북한은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른바 핵과 미사일 등 군사력 증강과 관련 없는 민생 경제문제를 풀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측면을 내세울 것이라고 봅니다.

전. 유엔에 제출한4.27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인 ‘판문점 선언’ 에서는 남북이 올해 안에 ‘종전선언’에 합의했다고 돼있는데요, 종전선언부터 미국이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북한측의 끈질긴 주장의 배경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강. 종전 선언은 경제와 안보라는 두 가지 축 가운데 안보적 선물로 북한은 보고 있습니다. 종전 뒤에는 평화협정이 있고 그 뒤에는 주한 유엔사령부 해체, 한미연합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라는 단계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첫 관문으로 종전선언을 요구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한반도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북한이 포함된 한반도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종전선언은 현재 전쟁의 피해 정도와 유사한 반인륜범죄가 자행되고 있는 북한에서 강제수용소 해체와 같은 인권개선과 연계되어야 합니다. 즉, 북한 핵 문제의 해결 과정에 인권 유린문제를 연계시켜 북한에서 적어도 반인륜범죄의 상징인 강제수용소가 해체되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종전선언도 평화선언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면 종전선언과 평화선언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미국은 종전선언을 결정할 때에 북한 인민들의 인권과 자유 보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강 대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내부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지금까지 탈북자단체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