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북조선 내부의 소식과 정보를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건, 사고, 동태, 동향에 관한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청취자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설명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이 시간 함께 합니다. 북한전략센터는 북한 내부의 민주화 확산사업과 한반도 통일전략을 연구하는 탈북자 단체입니다.
전수일: 북한의 김정은이 집권을 전후해 지난 9년간 처형한 고위층 간부와 가족이 420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전략센터가 다른 인권단체들과 협력해 북한의 현직 간부 및 고위탈북자, 일반탈북자 등을 대상으로 심층면접 및 서면으로 조사한 결과인데요, 명단에는 아버지 김정일의 넷째 부인 김옥, 고모부 장성택, 암살된 이복 형 김정남 등 친인척을 비롯해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 내각부총리 김용진 등 김정은의 최 측근 참모 들과 핵심 세력 간부들 다수가 잔인하게 처형당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번 조사를 이끈 북한전략센터 강철환 대표와 숙청 처형당한 주요 인물들과 그 배경을 살펴 봅니다.
강 대표님, 2011년 12월 아버지 김정일이 죽고 그 다음해 김정은의 통치가 시작됐습니다.
집권 첫해 2012년 김정은이 숙청한 핵심 간부로 김철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눈에 띕니다.
강철환: 그렇습니다. 그것도 그가 첫 고사포 처형의 희생자가 됩니다. 김정은이 그에게 고사총을 발사한 것은 김정일 애도기간에 술 먹고 정부와 놀아났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입니다. 모든 군부의 본보기고 김철을 강건 군관학교 처형장에 세워놓고 고사총으로 시체를 아예 사라지게 만들고 장갑차로 다시 그 사체를 짓뭉개 버린 끔찍한 사건입니다.
두 번째로 처형된 간부는 김정일 서기실 재무과장 박용무입니다. 박용무는 김정남과 연계돼 외부 자금을 유용한 혐의를 받아 어린 손자를 포함해 3대가 모두 처형된 화근을 당했습니다.
박용무는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 시대에 가장 신임 받는 인물로 서기실에서 오랫동안 자금관리를 한 인물입니다. 다만 김정일의 지시를 받아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을 도와주었는데 그것이 엉뚱하게 김정은의 진노를 사게 돼 억울하게 가족과 함께 처형당한 것입니다.
전. 은하수 관현악단 처형사건도 2012년에 포함돼 있는데요.
강. 그렇습니다.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그와 결혼한 리설주가 북한 인민들에게 공개됐습니다. 아버지 김정일과는 달리 자기 아내를 처음부터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었습니다. 문제는 리설주가 은하수 관현악단에서 일반 배우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사생활이 노출된 상태에서 갑자기 김정은의 눈에 들어 시집가면서 벼락출세한 것입니다. 당연히 사생활 뒷얘기가 여기저기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고 국가보위성과 창광분주소는 이러한 사태를 김정은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 김정일이 생전에 자주 찾았던 목란각에서 일부 은하수 악단 배우들이 문란행위를 했다는 보고서가 작성돼 그것을 빌미로 리설주와 알고 지내던 12명의 배우들을 모조리 체포해 고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빠 맞은 그들은 생명의 동아줄을 잡기 위해 리설주를 들먹거렸는데 오히려 그것이 그들을 처형장으로 내모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고사총으로 처형됐고 리철 무력부 부부장처럼 장갑차에 의해 산산이 부서진 사체를 다시 짓뭉개는 끔찍한 처형을 당하게 됐습니다.
1970년대 초 영화배우 우인희가 처형된 이후 예술인들이 가장 잔인하게 처형당한 사건으로 남게 됐습니다. 그 이후에도 러시아 주재 김정일 서기길 직원 외 7명이 모두 소환돼 처형당했는데 모두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과 연관된 것이 포착되면서 역적죄로 처벌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 2012년 숙청된 인물 중에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사건은 주변국가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그 배경에 대해서도 말이 많지 않았습니까?
강. 그렇습니다. 북한 내부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리영호의 인민군 총참모장의 처형은 군부는 물론, 북한 전체에도 충격이었습니다. 김정일 사망 운구차를 앞에서 모셨던 인민군 총 대장입니다. 그래서 리영호의 모습은 모든 북한 주민들이 다 알게 됐고 기억하게 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은 강직하고 능력 있는 리영호가 집권 초기 혼란을 막고 군대를 틀어쥐는 적임자로 리영호를 선택한 것입니다. 리영호의 단점은 아부를 모르고 직언을 하는 스타일이어서 폭군이나 어리석은 군주에 입장에서 보면 가장 먼저 죽어야 할 충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은 집권초기 군부가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임명된 최룡해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던 리영호를 김정은은 첫 번째 숙청대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전. 숙청 대상으로 삼았다고 해도 최 측근인 리영호를 처형할 때에는 김정은으로서 도저히 그냥 놔둬선 안되겠다는 그 무슨 결정적인 동기가 있지 않았을까요?
강. 김정일 시대에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인민군대가 막강한 경제 기득권을 가지고 북한경제의 대부분을 소유하면서 사실상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존재가 된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성택과 최룡해는 당시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해 인민군대의 경제 기득권을 축소해 내각경제를 살리는데 동의하고 그것을 추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리영호가 김정일의 유훈이라며 인민군대가 가지고 있는 경제 기득권을 절대 내놓을 수 없다고 버틴 것입니다. 김정은은 권력을 잡고 초기는 모두 장성택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국정운영을 했기 때문에 장성택의 말을 듣고 그대로 시행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리영호가 상관인 최룡해와 맞서고 그것은 김정은 지시에 대한 불복종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김정은이 리영호를 처형할 것을 지시하면서 인민군 총참모장이 새파란 젊은 병사들에게 끌려와 매 맞아 죽는 참사가 발생한 것입니다. 리영호와 그의 측근들도 모두 보위사령부 감옥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 당시 군 간부들이 잇따라 제거된 걸로 봐서는 리영호의 처형이 북한 군부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신호탄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강.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 시대에는 군부 수장을 함부로 죽이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1992년 소련 프룬제 군사학교 유학파 출신 군간부들의 쿠데타 사건과 1996년 6군단 사건 때 정도입니다. 프룬제 유학파 군사정변은1992년 러시아 군사학교인 푸룬제아카데미 출신 엘리트 군 간부들이 인민군 창군 60주년 열병식 때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죽일 계획을 꾸몄다가 실패한 뒤 그 모의가 발각돼 수십 명이 처형당한 사건입니다. 함경북도 지역 6군단 사건은 군단지휘부가 적선과 연계돼 반란음모를 꾸몄다는 증거가 있어 군단 지휘부를 도륙 내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런 굵직한 사건 외에는 김정일이 즉흥적인 감정에 의해 군 고위간부들을 대거 처형하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빈번해졌습니다. 그 이후에 발생한 많은 군 간부들에 대한 숙청은 리영호 사건이 워낙 커서 사건이 가려질 정도로 일반화 됐습니다.
전. 2012년에는 고위간부는 아니지만 전쟁 노병들이 집단적으로 처형당한 사건도 있지 않습니까?
강. 그렇습니다. 당시 평양시 서포구역에 '곱등어관' (돌고래 전시관)을 건설하면서 주택철거를 단행 했는데 주택 가운데 전쟁 노병들이 거주하던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우선 거주지를 마련해 줘야 하지만 부정한 간부들이 아파트를 돈 받고 매매하면서 전쟁노병들이 집 한 채 얻지 못한 채 한지에 나앉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디에 하소연해도 누구도 이들의 딱한 처지를 들어주지 않자 이들은 집단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일종의 시위 같은 것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곱등어 보다 못한 존재들인가 불만을 털어놓자 국가보위성은 이들을 반체제 행동으로 간주하고 김정은에게 보고했습니다. 김정은은 아무리 전쟁 노병이지만 자신의 지시를 불복하고 집단행동 한 것은 용서할 수 없다며 이들을 모두 처형시켰습니다.
전: 강 대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내부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지금까지 탈북자단체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