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게 문제지요-24] 북한과 달리 구 소련에선 여행도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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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도 대담엔 북한 전문가로 남한 국민대 교수인 안드레이 란코프 박삽니다. 안녕하세요. 란코프 박사님은 구소련 출신으로 북한에서 유학도 하셨는데요. 구소련과 오늘날 북한을 비교하면 여러가지로 비슷한 점도 있고 차이도 많을 텐데요. 어떻습니까?

란코프: 물론 북한도 소련도 처음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이것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북한은 소련 군대가 창설한 국가였습니다. 해방 직후 김일성과 같은 북한 공산주의 자들은 힘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들은 원래 소련 군대가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1940년대 말 소련은 불가피하게 북한에 소련식 정치, 사회, 경제제도를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 말부터 북한과 소련이 점차 달라 지기 시작했습니다. 1953년 스탈린 사망이 후 소련은 자유화와 개혁정치를 실시하였습니다. 북한은 이 정책을 김일성 개인 정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북한은 인민들에 대한 감시를 더 강화했고, 경제 부문에서도 정부의 역할을 많이 강화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1950년대 중엽부터 북한 체제는 스탈린식 소련체제보다 많이 엄격해졌습니다. 반대로 그때부터 소련체제는 많이 완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라난 소련, 즉 1970년대와 1980년대 소련은 북한과 거리가 먼 사회였습니다. 너무나 차이점이 심하고 많았습니다.

변: 그러니까 소련은 50년대부터 스탈린에서 벗어나 완화하는 추세였지만 북한은 거꾸로 강화하는 등 다른 길을 갔다는 말인데요. 교수님이 보시기에 두 나라는 당시 어떤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고 봅니까?

란코프: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제일 중요한 차이점은 아마 여행자유입니다. 당시 소련에서 국민들은 국내의 어디에나 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일반인들이 가지 못하는 지역이 있었지만 많지 않았습니다. 주로 국경지역이나 군수 기업소, 군대 장비가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이런 곳을 빼면 대부분의 경우에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나 갈 수 있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우리 가족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아버님이 안 계시고 어머님은 버스운전수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여름마다 흑해지역 즉 소련 남방지역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방을 임대해 1~2달 정도 살았습니다. 여행증, 통행증 등이 전혀 필요 없었습니다.

변: 그러니까 구소련 당시에도 여행은 완전히 자유였다는 말씀이군요.

란코프: 물론 완전한 자유여행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일반인들이 갈 수 있는 지역이 많지 않았지만, 있었습니다. 단기 여행은 문제가 없었지만 이사는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수도인 모스크바나 레닌그란과 같은 대도시로 이사 가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였습니다. 그보다 조금 더 작은 도시로 이사가는 것도 사전에 당국자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물론 외국 여행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변: 이처럼 국내여행은 비교적 자유로웠는데요. 당시 소련 시민들이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나요?

란코프: 물론 구 소련에서 외국여행은 여러 제한이 있었지만 가능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당시 소련 사람들이 마음대로 외국으로 나갈 수 없을 줄 알지만 이것은 과장된 이야기입니다. 물론 구 소련은 오늘날 한국이나 미국, 아니면 중국처럼 누구나 아무 때나 열흘이나 보름 정도 여권을 쉽게 받을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또 수 많은 소련 사람들은 여권을 받을 권리가 없었습니다.

변: 그럼 누가 해외 여행을 맘대로 할 수 없었나요?

란코프: 군대, 경찰, 군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여권을 못 받았습니다. 외국은 출장으로만 갈 수 있었습니다. 중급, 고급 간부들도 해외여행에 제한이 많았습니다. 반 공산당, 반 정부활동에 참가했던 사람들도 외국여행은 못 갔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외국으로 가지 못했던 사람들은 전체 소련 인구의 1/4정도 였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여권을 신청해야 외국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한이 많았습니다. 먼저 무조건 출장이 아니면 먼저 다른 공산주의 국가로 가야 했습니다. 갈 나라에서 초청장을 보낸 보증인이 있어야 했습니다. 보증인이 없으면 단체여행만 가능했습니다. 현대 러시아나 한국에 비하면 그건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소련에서의 해외 여행은 북한보다 자유로웠습니다. 1970년대 소련 사람들은 폴란드, 독일, 불가리아를 비롯한 여러 동유럽 국가로 많이 갔습니다.

변: 구소련 당국의 입장은 어땠습니까? 일반 소련시민들이 잘 사는 서방 국가에 대해 알게 되고, 그 때문에 정치적 불안정이나 문제를 일으킬까봐 두려워하진 않았나요?

란코프: 물론 객관적으로 말하면 이와 같은 외국여행 때문에 소련사람들이 외국생활 특히 자본주의 생활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소련체제가 더 빨리 무너졌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소련정부는 북한 정부 만큼 외국 지식의 확산을 무섭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제 고향은 레닌그라데입니다. 제가 중학교에서 대학교를 다녔을 때 즉 1970~80년대 레닌그라데에서 외국 잡지, 책을 파는 서점이 있었습니다. 한 서점은 다른 공산주의 국가의 자료를 팔았습니다. 또 하나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자본주의 국가 서적을 팔았습니다.

변: 그렇군요. 외국 잡지나 서적을 마음대로 사볼 수 있었다는 말인데요. 이런 실정은 북한과는 많이 다르죠?

란코프: 맞습니다. 북한에 비하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날 북한의 평양 거리에서 남한 신문이 팔리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합니다. 남한에서 발간된 소설, 역사책이 팔리는 것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변: 결국 구소련이 북한보다 훨씬 더 자유로왔다는 말씀인데요. 바로 그런 요인 때문에 구소련이 멸망하게 되지 않았나요?

란코프: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소련 정부가 국민들을 더 엄격하게 감시하고, 공산 체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관리소나 감옥으로 더 많이 보냈더라면 소련 체제가 아마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체제 붕괴가 소련 사람 대부분의 입장에서 보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체로 말하면 좋은 것입니다. 현재 러시아를 보면 소련시대 보다 물질적으로 더 잘사는 나라입니다. 현대 러시아 정치를 보면 권위주의 경향이 있기는 있지만 소련시대보다 훨씬 자유로워졌습니다. 물론 소련시대가 없었던 어려움과 잘못이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소련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소련의 부활을 주장하는 공산당이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공산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15%정도에 불과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소련시대로, 사회주의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극소수입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회주의 시대에도 소련은 북한보다 훨씬 더 잘 사는 곳이었습니다.

변: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은 구소련과 북한과의 차이점에 관해 살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