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직맹과 남한의 노조

0:00 / 0:00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은 어디로> 오늘 진행을 맡은 한영진입니다.

세계 최고 부자인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변화 속에 반드시 기회가 있다" "기회를 얻고자 하면 변화를 시도하라". 영어 단어change에서 g를 c로 바꾸면 chance가 됩니다. 철자 하나를 바꿔도 뜻이 달라지는데, 이 말은 곧 변화 속에 반드시 기회가 숨어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크게 성공한 빌 게이츠는 23년 째 세계 최고 부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성공하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는 겁니다.

간추린 토막뉴스 마치며, 지금부터 오늘의 주제 '북한의 직맹과 남한의 노조'를 시작합니다.

공공운수 노조간부 음성 녹취: (여성)노동계약을 막고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는 싸움이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그리고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하는 싸움입니다. (남성)노동계약과 국민피해를 막기 위해 공공운수노력 소속 15개 노조 6만 3천 조합원이 동시에 무기한 전면 총파업에 돌입하고…… 하나, 둘, 셋

이 말은 지난 9월 말 남한의 공공운수 노동조합이 무기한 총파업을 선포할 때 공공운수 노조간부가 한 발언입니다.

남한과 미국 등 민주국가에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만든 노동조합이 있습니다. 북한으로 치면 직업동맹과 비슷한데, 하는 일은 근본 다릅니다. 민주국가의 노조는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금지, 임금협상, 근로복지 등 노동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노조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때는 집단적으로 일하지 않겠다고 거부하기도 합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텔레비전을 통해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남한 노동자들을 보셨을 겁니다. 이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나선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마치 이들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을 신봉하는 것처럼 잘못된 메시지를 주기도 하지요.

그럼 미국 노조의 상황은 어떨까요? 지난해 노동절 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보스톤 노동위원회 연설에서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역설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내 가족의 안정을 보장하는 좋은 직업을 찾는다면, 나는 노조에 가입할 것입니다. 내가 여러 나라를 다녀보니 노조가 많거나 금지한 나라도 많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가혹한 착취가 일어나고 노동자들은 늘 피해를 당하고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노조운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노동자들은 노동법에 의해 보호를 받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가 근로자를 고용하고 일 시켰을 경우 돈을 반드시 지불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북한처럼 무보수 노동을 시켰다가는 회사가 망하기 쉽습니다. 이 과정에 노조가 나서 개별적인 노동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대응을 하는데, 이점에서 북한의 직맹과 다릅니다.

물론, 한국의 현대차 노조처럼 일년에 근 10만달러 버는 노조원들이 지나치게 자기집단의 이익을 추구해 오히려 '귀족노조' '강성노조'라는 비판도 받습니다만, 그래도 회사나 정부에 대고 할 소리는 다 합니다.

이처럼 남한에 노조가 있다면, 북한에도 그와 비슷한 조직이 있는데, 직업동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25~26일까지 평양에서 조선직업총동맹 제7차 대회가 성대히 열렸습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직업동맹 제7차 대회에는 직접 참석하지 않고 대신 축하서한이라는 것을 보냈습니다. 그의 서한에서 눈 여겨볼 대목은 "조선 로동계급의 자존심과 배짱으로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남들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어 냄으로써 수입병이라는 말 자체를 없애버리라"고 주문한 것입니다.

그가 말한 것처럼 북한 노동자들에게 자존심이나 배짱이 과연 있을까요?

북한에서 노동자들이 자존심을 상실한 것은 1945년 11월 30일 직업동맹이라는 정치 조직이 세워진 이후입니다. 북한이 2000년대 발간한 조선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조선직업총동맹은 노동당의 믿음직한 대중교양단체로서 동맹원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여 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 세우고, 당이 내세운 혁명과업수행에로 힘있게 조직 동원한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북한에서 직맹에는 노동당에 가입하지 못한 30세 이상의 노동자·기술자·사무원들이 반강제적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습니다. 2000년말까지 동맹원 수는 약 3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직맹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숫자를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근로자들의 어려움을 풀어줬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직맹원을 지냈던 탈북자 한 모씨는 "북한 노동자들은 일한 것만큼 대가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돈을 가져다 공장에 바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탈북자: 30세 넘어가면 직맹에 넘기는 데, 직맹에 넘어가면 아바이(아저씨) 맛이 나거든요. 한달에 생활총화 한번, 학습회 한번, 강연회나 하면 끝이요. 그리고 충성 다한다는 것뿐이지. 사로청이나 당원이나 다 같아요. 직맹위원장이나 사로청 위원장이 되어야 발언권이 있지, 하바닥에 있는 직맹원이야 다 같지요.

이 탈북자에 따르면 탈북하기 전까지 한 기계공장 노동자로 있었는데, 공장에서 월급이라고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대신 적을 걸어놓고 8.3으로 매달 북한 돈 5만원씩 공장에 바쳤다고 하는데, 북한 돈 5만원으로 장마당에서 쌀 10kg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이 공장에 돈을 갖다 바치는 것을 가리켜 북한에서는 '8.3 인민소비품 생산활동'이라고 합니다. 노동자들이 8.3으로 돈을 갖다 바치면 공장에서는 출근한 것으로 쳐주고, 그 돈으로 공장 지배인, 초급당비서, 직맹위원장 등 간부들의 월급과 공장 운영비로 충당합니다. 직맹위원장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공장 간부들을 향해 투쟁할 대신 여기에 같이 동조합니다.

또 직맹위원장이 하는 역할은 노동자들을 각종 사회노동에 동원시키는 겁니다. 북한은 70일전투, 200일 전투 기간 발전소 건설과 여명거리 공사에 노동자 수만 명씩 동원시켰습니다. 근로자들은 월급은 고사하고, 사고를 당해도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습니다. 돌격대에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고, 돈을 내라고 하면 내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듯이 조선직업총동맹은 노동자들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단체가 아니라 착취하는 단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북한매체는 "8.15 해방 후 김일성 주석이 직업총동맹을 결성한 이후 노동자들의 자주권이 보장되었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북한 중앙tv: (북한 직업동맹 간부)북조선 노동조합 총연맹 창립을 온 세상에 선포한 바로 그때로부터 우리 노동계급은 위대한 당의 영도를 받는 자기의 통일적이고, 혁명적인 대중적인 정치조직을 가지게 되었고, 합법적인 노동운동, 직업동맹 운동의 새로운 장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은 직업동맹에 얽매이게 되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합니다.

이와 관련해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 노동자들도 자주적 권리, 자존심을 찾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박세일 남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말입니다.

박세일 교수: 제가 개성공단에 갔다가 개성시내로 들어가면서 길옆에서 본 북한 동포들의 모습과 표정을 보고 너무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라를 이렇게 운영할 수 없다, 그 동포들의 눈에서 제가 느낀 무력감이랄까, 허탈감이랄까, 좌절감이랄까, 또 공포감이랄까 이런 것들은 제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아프리카 나라에서도 그런 것을 보지 못했어요. 이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 동포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안되겠다, 무엇보다도 우리 동포들을 경제적인 힘듦, 기아, 정치적인 폭압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서 빨리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 민족이 살길이고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가 크게 느꼈습니다.

박 교수는 한반도 선진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북한 당국은 물론, 북한 노동자들도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합니다.

예로부터 주머니가 두둑한 사람의 어깨는 올라가고, 없는 사람의 어깨는 나날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노조처럼 북한 직맹도 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자존심과 배짱'을 살려주는 그런 일을 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해보면서 오늘 순서 '북한 직맹과 남한의 노조'을 마칩니다. 진행에 한영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