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판 내로남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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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어디로> 진행에 정영입니다. 청취자분들은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인데, 주로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비판할 때 씁니다.

그런데 북한에도 주민들더러 지키라고 해놓고도 자기들은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지난 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한 예술공연을 관람한 사람들입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공연이 열리던 날에 “자본주의문화는 근로대중의 혁명의식을 마비시키고, 그들을 억압착취하기 위한 도구”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런 자본주의 문화를 북한의 김정은과 그의 측근들이 구경한 것입니다.

북한의 김정은이 남한 예술을 관람하고, 칭찬까지 하는 모습은 북한이 언제 한국문화를 배척했냐 싶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럼 오늘 <북한은 어디로> 시간에는 이에 대한 탈북민들의 반향을 들어보겠습니다.

<사운드 바이트> 레드벨벳, 조용필 노래 음성 녹취

방금 들으신 내용은 현재 평양을 방문중인 남한 예술단 가수들이 부른 노래 몇곡을 소개한 것입니다. 현재 평양에는 남한 인기 가수 조용필과 백지영 등 190여명의 가수들과 소녀 댄스가요 연예인들이 가서 공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김정은도 부인 리설주와 함께 지난 1일 동평양 대극장에서 공연을 봤습니다. 공연 관람에는 친 여동생 김여정과 북한의 고위 간부들과 1천500명의 관람객도 같이 봤다고 북한 매체는 보도했습니다.

공연이 끝난 다음 김정은은 남한 문화 당국자들과 출연진들을 만나 사진도 찍고, "평양시민들에게 이런 선물을 보여주어 고맙다”고 언급하고, “가을엔 '가을이 왔다'는 공연을 하자”고 깜짝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또 남한의 가수에게 직접 다가가 특정한 곡명을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했고, 인기 소녀 그룹공연을 보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왔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의 이러한 모습을 두고, 남한 사회 여론 일각에서는 “북한 최고 지도자가 남한 공연을 관람한 것은 이번이 최초”라는 찬사의 목소리가 나왔고, 또 일부 시민들 속에서는 “이번 공연을 통해 남북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열띤 반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탈북민들은 김정은의 이러한 파격적인 행보가 보여주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40대의 한 탈북민은 김정은이 참석한 공연장에서 박수를 치는 북한 관람객들을 보면서 대성공이라고 주장하는 남한의 언론을 향해 “기계처럼 박수를 쳐야 하는 1호 행사를 놓고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북한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평가”라고 말했습니다.

김정은이 참석한 1호행사에서 박수를 치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매장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나다 기계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남한 사람들이 너무 모른다는 지적입니다.

이와 관련해 북한 고위 전직 관리는 “공연을 관람한 사람들은 평양시 성, 중앙기관, 간부들이라며, 진정한 남북교류가 되려면 중앙텔레비전을 통해 2시간짜리 공연을 다 공개해야 맞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이 전직 간부에 따르면 2008년 미국 뉴욕필하모닉의 평양 공연 때도 북한 당국은 내각, 성, 중앙기관의 간부들과 평양시 문화예술부문 관계자들, 핵심 가족들에게 표를 발급해 집체적으로 관람하도록 했습니다.

북한은 사상적으로 무장됐다고 하는 간부들과 핵심층에게 관람석을 채우도록 하고, 일반 주민들이 접할 수 있는 텔레비전에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조선중앙 텔레비전이 약 6분짜리 영상을 공개했지만, 대부분 김정은의 행보를 선전하는 내용일 뿐, 남한 공연부분은 무음으로 처리된 자막 몇 개만 공개됐습니다.

북한은 오히려 내부적으로는 부르죠아 반동 문화를 뿌리 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날 공연이 열렸던 1일 노동신문은 “자본주의문화제도는 자본가계급의 리익실현에만 철저히 복무하는 가장 반동적인 문화제도”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자본주의사회를 지배하는 반동문화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착취계급의 리익에 맞게 근로대중의 혁명의식을 마비시키고 그들을 억압착취하기 위한 도구로 리용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자본주의 문화는 남한의 예술로, 체제 경쟁에서 가장 경계하는 대상입니다.

한국 문화가 북한 주민들에게 침투되면 사상적으로 변질되고, 사회변혁을 추동하는 동력으로 발전할까봐 북한은 최근까지만해도 남한 문화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혁명적인 사회주의 문학예술의 힘으로 부르죠아 반동문화를 짓눌러버려야 한다”고 강조했고, 지난해 12월 24일 진행된 노동당 세포위원장 대회에서는 “우리의 사회주의 문화예술이 썩어빠진 부르죠아반동문화를 압도하여야 사람들이 적들의 문화에 대하여 환상을 가지지 않게 되며 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침투를 짓뭉개버릴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던 김정은이 갑자기 한국 문화의 빗장을 푼 듯한 행보를 보이는 것과 관련해 복수의 탈북민들은 현재 북한이 국제적인 제재망을 빠져나오기 위한 ‘쇼맨십’ 즉 보여주기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미국 남부에 정착한 40대 탈북민의 의견입니다.

박모씨 : 과거 94년 북핵 위기가 와서 미국이 전쟁하겠다고 했잖아요. 그때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같습니다. 역시 북한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 한국에서는 좌파 정권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겉으로는 평화적으로 가려고 하겠지요. 하지만, 내면에는 또 다른 것이 있겠지요. 북한에게 시간을 상당히 많이 벌어주고, 북한에 또 다른 경제지원을 해주려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의 압박도 있겠지만,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또 옛날 방식으로 선대 수령이 했던 것처럼 미국 한국 중국 사이 알륵관계를 이용해 시간을 버는 거죠.

박모씨는 김정은이 지금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자신이 세계적인 지도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남한 공연장을 직접 찾고, 또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박모씨 : 한국과 손을 잡아서 미국으로부터 공격을 막아야 하고, 또 한편에서는 본인 자체도 그런 문화를 접했으니까, 뭔가 자기를 과시하면서 나도 이런 것도 좀 안다는 식으로 본인이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있을 겁니다. 김정일이는 참가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제 기억으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김씨 일가는 남한 노래와 드라마를 무척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남한 가요 ‘사랑의 미로’를 즐긴 것으로 알려집니다.

10년 이상 김정일의 요리사를 지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에 따르면 김정일은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와 연애할 때 벤츠를 타고 밤새도록 남한 노래를 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국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김정은 역시 남한 소녀그룹이 부르는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댄스 뮤직을 좋아하고, 남한 노래의 곡명을 직접 거명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은 바쁜 정치일정 와중에도 남한 소녀그룹 공연을 보러 왔다고 레드벨벳 그룹 가수들에게 말했습니다. 또 김정은은 한국의 가수 최진히씨에게 ‘뒤늦은 후회’를 불러줘서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가장 경계하는 자본주의 문화는 남한의 드라마나 가요 등 한류를 말합니다. 한류는 대한민국의 대중문화가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면서 전세계적으로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경제를 알리고, 유행을 알리게 되면서 생긴 문화적인 힘입니다. 무기로 실현되지 못한 혁명이 문화로 실현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은 한국 드라마를 보거나 한국노래를 유통시킨 주민들을 감옥에 보내고, 공개처형하는 등 혹독한 처벌을 가했습니다.

그러면 왜 북한이 갑자기 이런 한국 문화 공연을 받아들였을까요.

최근에도 북한 주민들과 전화통화했다는 미국 서부 아리조나주에 사는 북한출신 여성은 “현재 북한 내부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조금만 더 지나면 민심이 폭발할 것을 두려워해 김정은이 남한에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고 3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허씨 : 한국의 것을 보지 말라고 해놓은 것은 딱 막아놓았는데, 바깥 뉴스를 보지 못하게 해야 사람들의 머리가 깨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랬는데, 정은이도 이제는 잔머리를 쓰는거지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어려워서 무역을 해서 장사 같은 것을 해야지 인민들이 살 수 있을 텐데요. 돈이 나올데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남쪽에 할 수 없이 머리를 숙이는거죠.

그는 자신이 북한에 있을 때도 보위부 등 통제기관원들이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보았다면서,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한국문화를 접하는 사람들을 정치범 수용소로 끌어가는 등 폭압의 강도는 더 강해졌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어디로> 오늘은 남한 문화를 극도로 경계하던 김정은이 왜 다른 행보를 보여주는지 탈북민들의 반향을 전해드렸습니다. 이상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