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당국이 ‘농사 혁명’이라며 밀어붙이는 밀보리 농사, 농민은 왜 반대하나?
-밀보리 농사에서도 가장 문제 되는 것은 ‘인력’과 ‘비료’, 그리고?
-‘주체농법’ 부정하지만 ‘강냉이’가 ‘밀보리’로 대체됐을 뿐 방식 같아
[진행자]지구상에서 가장 폐쇄된 국가 바로 청취자 여러분이 살고 계신 북한입니다.
내부 문서를 통해 오늘의 북한을 만나보는 [문서로 보는 북한] 이 시간, 진행에 안창규입니다.

[진행자]지난 시간부터 알곡 농사 구조를 배와 강냉이(옥수수)에서 밀보리로 바꾸라는 지시와 관련된 강연 제강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의 농촌진흥청은 '2024 북한 식량작물생산량' 추정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총생산량이 478만 톤으로 지난해보다 4만 톤 감소한 가운데 밀보리 생산량은 28톤으로 지난해보다 6만 톤 증가했습니다.
[김지은]북한 당국이 밀보리 농사를 밀어붙인 결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지난 시간에 얘기했듯이 밀보리가 강냉이보다 수확량이 낮다는 점은 농민들이 우려하는 지점입니다. 우리가 농사를 짓는 것은 수확량을 늘리자는 것이지 그 일이 헐고 쉽고 뭐 이런 걸 따지는 것보다 결과적으로 한 해 농사 결실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진행자]그러니까 농민들이 이 문서에 볼 수 있는 것처럼 밀보리 농사에 반발하는 이유는 철저하게 수확량 때문인 게 맞아요.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밀보리 농사를 추진하면서 내세운 당위성을 보면 수확량은 크게 언급이 안 돼 있어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주민들의 식생활 개선'이고 다른 하나는 '농사 혁명'이거든요.
즉 강냉이 농사가 품이 많이 들고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야 되는 게 어려웠기 때문에 이제는 이건 좀 바꿔야 되지 않느냐 이런 방향으로 나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수확량을 조금 손해 보더라도 대신 제대로 농사만 지으면 이 문건을 작성한 사람의 주장대로 정보당 5톤이 아니라 3~4톤이 된다고 해도 오히려 수확량이 느는 것 아닙니까. 대신 노력이 좀 적게 든다면 오히려 좋지 않겠습니까.
[김지은]밀보리 농사가 더 쉽다고 생각을 하는 근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가을 할 때 옥수수는 베어내고 그대로 밭에 눕혀 놓으면 그냥 마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보리나 밀 같은 경우는 수확 적기에서 닷새만 지나면 알이 떨어지고 마디가 끊어지고 이런 현상이 발생합니다.
[진행자]그래서 최근에 북한 당국이 도입하고 있는 게 수확기입니다. 이전에는 수확기가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 농촌에 들어보면 수확기들이 괜찮은 농장들에는 수확기들이 한두 개씩 들어갔거든요.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전망적으로 수확기가 계속 해마다 도입이 되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봤을 때는 밀보리 수확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으로써 밀보리 농사에서 중요한 부분은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되는가 하는 인력 문제인 것 같은데 보름 정도 기간에 끝내야 하는 밀보리 파종도 문제지만 수확은 더 문제인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모든 농장에 트랙터, 종합 탈곡기 파종기 같은 이런 농기계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지 않습니까?
또 강연 자료도 언급돼 있지만 9월 말, 10월 초 밀보리 파종 기간이 벼 강냉이를 수확하는 기간과 겹치고, 6월 밀보리 수확 기간은 뒷그루(2차 수확) 벼, 강냉이의 김매기 시기와 겹칩니다.
북한은 농사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인 가을걷이와 김매기를 전투에 비유하죠. 이 문서에도 이 시기에 농장의 지원 노력이 얼마나 많이 동원됐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문제는 이 농장은 시범으로 지정한 농장이기에 가능했지만 다른 농장에서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김지은]그렇습니다. 이번 강연제강에서 보다시피 황해남도 강령군 읍 농장에서는 300 정보나 되는 농장의 전체 밭 면적에 밀보리를 심는 데서 나서는 난제가 파종을 적게 보장하기 위해서 동원될 수 있는 노력이 농장원 640명과 군당 일꾼 가족 작업반 80여 명이 전부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농장원 1명이 손으로 파종을 하는 경우에 하루에 100평 정도밖에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다행히 김정은의 배려로 보내준 종합 토양관리 기계 2대가 있었으나 턱없이 부족했다고 밝혔습니다.
농장 자체로 파종 기계를 1대 만들었고 연이어 군당위원회의 지원 하에 군 농기계 작업소와 연계하여 밀보리 파종기 2대를 더 마련하여 파종 작업에 도입했다고 합니다. 사실 기계도 문제이지만 이런 기계를 움직일 수 있는 연료도 문제입니다. 이 농장의 경우엔 시범 농장이니 지원을 받았겠지만 다른 농장들은 그럴 수 없을 겁니다.
[진행자]결국 뭐니 뭐니 해도 농기계 이게, 제일 중요하군요.
문건에 이 농장에 지원됐다고 나오는 기계만 봐도 밀보리 파종기 2대, 종합 수확기, 이동식 탈곡기 그리고 가뭄에 대응할 수 있는 양수기입니다. 김 기자도 지적했지만 이것은 농장 자체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국가가 농장의 농기를 보장해 줄 수 있을까요?
[김지은]그렇지 않겠죠? 그 많은 농장에 어떻게, 지금까지 지원하지 않던 그 농기계와 비료를 지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바람이고 농민들의 바람이겠지만 그렇게는 힘들 것 같습니다.
결국 농장들의 자체 해결을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강연제강에도 이 농장이 자체로 뜨락또르 1대, 밀보리 파종기 1대, 종합 수확기 1대를 더 구입하려고 한다고 끝을 맺고 있습니다.

[진행자]또 하나 중요한 것은 비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문서에는 유기질 비료에 대해서도 강조되고 있는데 지금 북한에 질소비료, 인 비료 같은 화학비료가 없다는 걸 시인하는 대목 같아요. 그래서 걱정되는 것이 주민 동원입니다.
수십 년간 북한에서는 농민은 물론 도시 주민까지 겨울에는 퇴비 생산, 여름에는 가루비료 생산에 총동원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지겹고 또 지겨운데 밀보리 농사가 더 본격화 된다면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퇴비 생산이 더 강하게 추진될 것이 예상됩니다. 결국 고생하는 건 북한 주민들이라는 거죠. 북한 농업 부문에 비료 한 톤이 들어가면 알곡 10톤이 생산된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정말 비료가 충분히 뿌려진다면 어떤 농사가 안 되겠습니까? 그렇게 보면 농기계와 함께 비료 보장이 북한이 추진하는 밀보리 농사를 좌우하는 정말 중요하고도 중요한 요소일 것 같습니다.
[김지은]네, 강연 제강은 좋은 종자와 기계 수단의 도입도 비옥한 토양에서만 응당한 결실로 이어진다는 관점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밀보리 농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유기질 비료라고 주장합니다. 식량 2호 발효 퇴비 2톤, 유기질 거름 10톤 이상 무조건 보장하는 것이 철칙이라고 합니다.
당에서 비료 과제가 하달되면 북한 주민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먹은 게 있어야 비료를 내지, 먹지 않고 어떻게 배설할 수 있냐는 설명입니다.
[진행자]맞습니다. 문서에는 또 강냉이 농사에 대한 굳어진 관점을 지적하면서 지금까지 해온 강냉이 농사를 비판하는 대목이 있더라고요. 1970년대 북한에서 주체농법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농민들이 대대로 심어온 작물이 아닌 강냉이 농사를 일률적으로 강요한 게 누구냐, 이 부분을 생각하면 참 씁쓸합니다.
[김지은]중요한 지적입니다. 과거 '주체농법'이라는 이름으로 밭곡식의 왕, 국가 알곡생산 계획의 주요 작물을 강냉이로 지정한 것은 농민들이 아니라 김일성입니다. 한때 김일성이 시험 포전을 만들고 직접 작물을 재배하여 얻은 결과로 농장들에 도입하게 했다는 것이 주체 농법인데, 할아버지가 내놓은 주체의 농법마저 김정은은 마구 뒤집어 엎고 있습니다.
말끝마다 인민대중제일주의라며 모든 국가의 문제를 인민을 중심에 두고 풀어나간다는 것이 김정은의 정치 이념이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농사 하나만 봐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민의 목소리는 무시당하고 김정은의 독단 정치가 판을 치고 있는 게 북한 정치 또 북한 농사의 현주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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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그렇게 생각하면 이 문서에 지금까지 북한이 그렇게 찬양하던 '주체농법'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군요. 결국 김정일도 없애지 않은 주체농법을 지금 김정은이 없애는 겁니다.
강냉이 위주의 밀식 농법을 주장한 주체 농법이 이제는 바뀔 때가 된 것은 맞지만, 사실 이번 조치 역시 작물만 강냉이에서 밀보리로 바뀌었을 뿐 내용과 방식은 똑같습니다. 국가가 작물을 정하고 그걸 전국의 농장에 심어라 이렇게 내려 먹이는 방식은 여전하다는 겁니다.
수십 년간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에서 농사는 정말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문건에서도 강조하지만 강냉이 또는 밀보리를 심는 것이 단순한 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이 “알곡 생산 구조를 바꿀 데 대한 당 정책의 정당성을 실천으로 확충하기 위한 정치적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결국 김정은이 지시한 정치적 문제니 조건이 맞든 안 맞든 밀보리 농사는 전국적으로 실행될 겁니다.
천편일률식으로 밀보리를 무조건 심어라 이렇게 강요하지 말고 지역과 기후, 지력 등 각 농장의 상황에 따라 벼, 강냉이, 밀, 보리 외에도 감자 그리고 고구마, 콩, 수수, 기장 같은 다양한 작물을 심는 것도 식량 수확량 증대와 주민 편의에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지은]그렇습니다. 강연자는 제강에서 "우리는 물질적으로 또 재정적으로 확고한 담보가 있어서 밀보리 심자로 달라붙은 것이 아니다. 오직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께서 의도하시는 것은 무조건 현실로 펼쳐 놓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밀보리 농사를 본때 있게 지어 나라의 은덕에 보답하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농사를 충성심으로 짓고, 총비서의 지시는 무조건 복종하라는 논리는 여전히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농사는 농민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농민들에게 농사의 자유를 줘야 합니다.
종자를 선택하는 것도, 비료를 구입하는 것도, 농기계를 구입하는 문제도, 거둬들인 알곡을 판매하는 곳도 농민이 주인이 돼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인 된 입장에서 토지에 알맞은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농사를 모르는 김정은이 시킨다고 밭을 갈아엎으면 그 결과는 북한의 식량 부족 사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농장원들에게 농사의 자유를 주고, 더는 농민이 지은 곡식을 강탈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농민을 위한, 인민을 위한 진정한 농사 정책이 될 겁니다.
[진행자]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김일성도 이렇게 말했죠. "땅은 밭갈이하는 농민들에게". 말은 농민들 땅을 농민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하지만 현재는 아니지 않습니까?
북한에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자면 정말로 땅을 농민들에게 주고 농사를 농민들 자체로 결정하고 지을 수 있게 그리고 그 수확량을 본인이 처분할 수 있게 이렇게 한다면 북한에도 식량 문제 해결은 어렵지 않을 거라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과연 언제면 농민들이 이 땅의 주인이 돼서 마음껏 농사를 짓고 농작물을 처분할 수 있는 날이 올지, 그런 날이 빨리 오길 바랍니다. 오늘 이야기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김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김지은]네, 수고하셨습니다.
[진행자] [문서로 보는 북한] 진행에 안창규였습니다. 저희는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