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차잡이’ 손에 들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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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현지지도를 하면서도, 어린 딸 앞에서도 김정은 총비서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자주 노출되고 있죠. 김정은 총비서뿐 아니라 북한 남성들 대부분이 담배를 피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는데요. 그래서일까요? 손 기자, 북한에서 담배는 장마당 말고도 판매하는 데가 많다면서요?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에서 판매 장소가 따로 없이 어디 가나 살 수 있는 상품 중의 하나가 담배입니다. 종합시장은 물론, 국영 백화점과 상점, 역전 일대에는 각종 담배를 전문 판매하는 공식 매대, 공식 매장이 있습니다. 하물며 병원과 학교 근처에도 지방정부 허가로 가두여성들이 운영하는 매대가 있는데요. 이 매대 안에는 인조고기밥과 두부밥 등 즉석 음식과 사탕봉지들이 쌓아져 있고, 매대 벽에는 도서실 책장처럼 각종 담배를 진열해 놓고 있어 환자나 학생들이 담배를 사도록 유인합니다.

공식 매대에서 담배 판매량이 이 정도면, 비공식 매대 역시 말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각 지역마다 국영 명의 개인 버스가 밀집되어 있는 정류장이 있는데요. 여기에는 수십 대의 버스가 서 있는데, 버스에서 내리는 손님과 오르는 손님 등 유동인구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담배장사꾼들도 수두룩한데요.

상점을 비롯한 공식 매장에서 담배를 판매하는 상인이 주로 젊은 여성들이라면, 버스 정류장처럼 비공식 장소에서 담배 장사하는 사람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할머니들입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버썩 마른 몸에 각종 담배가 한 벌 깔려 있는 낮고 네모난 상자 모양의 담배 판매함을 목에 걸고 다니며 ‘담배 사라요’ 외치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정말 안쓰럽습니다.

공식 장소든 비공식 장소든 담배를 판매하는 장사꾼들이 많다는 것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역시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담배 판매는 여성이, 담배 소비는 남성들이라는 건데요. 성인 남자가 담배를 안 피우면 어딘가 모자란다는 사회적 인식 또한 모든 남성들을 흡연자로 유인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남존여비 사상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북한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성들만큼 당당한 모습도 보기 드뭅니다.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 김정은부터 어린이가 있는 고아원에서 줄담배를 피우니, 일반 남성들도 공공장소에서 흡연하는 행위를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진행자 :그 정도로 담배를 많이 피우니 북한에서 담배의 가치가 꽤 높은가 봅니다. 북한에선 뇌물을 고일 때 제일 많이 사용되는 게 담배 아닙니까?

손혜민 기자 : 2000년대 만해도 담배는 현금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1990년대 중순 식량 배급이 중단되면서 여성들이 장사에 나서지 않았습니까. 장사 물건을 다른 지역에 팔려면 이동해야 하는데, 국영 철도까지 마비되다 보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고안한 방식이 '차잡이'였죠. 도로에 서서 지나가는 화물차나 승용차를 잡는다고 하여 차잡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나온 건데요. 이때 사용되는 차표 비용이 여과 담배였습니다. 차를 세우려면 낮이나 밤이나 도로에 서서 여과 담배를 손에 들고 흔드는 겁니다.

필터가 달린 여과 담배는 북한에 드물어 가격이 꽤 비쌌습니다. 전통적으로 북한에는 각 지역마다 내각 산하 담배공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산된 담배는 국영 상업망을 통해 남성 노동자들에게 매달 공급됐지만, 그 담배는 필터가 없는 까치 담배, 즉 ‘해당화’ 상품명의 담배였죠. 고위간부들에게만 평양 룡성담배공장에서 생산되는 여과 담배를 공급하여서 중간 간부들에게도 여과 담배는 귀했습니다.

그러나 장마당이 생겨나자 중국에서 수입된 여과 담배가 유통되기 시작했는데요.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1996년도에 저도 여과 담배를 손에 들고 차잡이에 나섰는데요. ‘장미’, ‘장백산’ 이라는 중국산 여과 담배였습니다. 한 갑에 북한 돈 50원이었거든요. 당시 공장 노동자 월급의 가치였습니다. 도로에서 장사꾼들이 적게는 5명, 많게는 열 명씩 무리 지어 서 있다가 멀리서 화물차가 오는 것이 보이면 도로 가운데 한 사람이 대표로 우뚝 서서 담배 여러 갑을 부채처럼 쫙 펴 들고 흔듭니다. 그러면 운전기사가 차 속도를 늦추고, 어디 가냐고 묻습니다.

화물차가 장사꾼들이 가야 하는 방향으로 운행 중이라면, 한 사람당 여과 담배 한 갑씩 받고 승차하도록 합니다. 화물차 트럭에 콩나물 시루처럼 사람들이 타면 30명 정도 승차합니다. 그러면 운전기사는 담배 30갑을 버는 셈이고, 그것을 장마당에 넘겨주면 공장에서 2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버는 겁니다. 가격이 두세 배 비싼 ‘고양이’ 상표 여과 담배를 손에 들고 도로에 서 있으면, 간부 승용차도 어김없이 서서 장사꾼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갑니다.

여과 담배는 뇌물수단으로도 유명했는데요. 안전원들이 장마당 장사를 계속 단속하자, 그 단속을 피하려면 ‘고양이를 잡아다 바쳐라’는 말이 유행될 정도였죠. 앞에서 언급한 가격이 비싼 ‘고양이’ 상표 여과 담배가 뇌물용 담배였습니다. 결국 담배는 화폐이면서 이동 수단이고, 뇌물 수단이면서 권력의 상징이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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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그럼 지금은 어떻습니까? 담배가 뇌물 수단이나 이동 수단으로 쓰이고 있습니까?

손혜민 기자 : 2010년대부터는 담배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중국산 담배를 시장에서 밀어낼 만큼 북한산 담배가 급증한 겁니다. 생산 주체가 급증한 건데요. 현재 북한에는 내각 산하 담배 공장, 당과 군부 등 특권층 산하 담배합영회사, 개인이 집에서 만드는 담배가공기지까지 정말 많습니다. 담배 종류도 '려명', '천지' 등 수백 가지 종류가 있고, 가격도 담배 한 갑에 1천원부터 3만원까지 다양해졌거든요. 따라서 '7.27' 상표처럼 비싼 담배가 아니고는 뇌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린다면, 담배를 손에 들고 도로에 서서 차를 잡던 문화는 2000년대 초반 사라졌습니다. 국영 명의 개인 버스가 늘어나면서 차표 비용은 거리당 화폐로 계산해 현금으로 받는 체계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뇌물도 같습니다. 안전원이나 당 간부 등 권력기관에 바치던 뇌물은 담배가 아니라 빙두(필로폰)로 변했습니다. 지금도 빙두는 언제 어디서나 현금으로 교환이 가능해지면서 화폐 용도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남성들이 담배를 안 피운다는 게 아닙니다. 담배는 여전히 대중 소비품이죠.

진행자 :가난하든 그렇지 않든 대중 소비품이 될 정도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다면 딱친구 같이 따라 붙는 성냥이나 라이터도 동시에 잘 팔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떻습니까?

손혜민 기자 :커피에 설탕을 넣듯이 담배를 피우려면 불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러므로 담배 수요만큼 라이터 수요도 많습니다. 90년대 중반 이전만 해도 북한에서 담배를 피우려면 휘발유로 사용하는 라이터와 성냥으로 불을 붙였습니다. 그러다 중국에서 담배가 수입되면서 가스 라이터가 동시에 수입되어 북한에서 만들던 휘발유 라이터와 성냥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성냥 생산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닙니다. 4호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전쟁 물자로는 라이터가 아니라 성냥을 보관하므로 생산은 합니다. 북한에는 자강도 전천성냥공장이 유명한데요. 이 공장 가동은 거의 마비되었죠. 그런데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되면서 중국에서 수입되던 라이터가 들어오지 못하자 전천성냥공장이 만가동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2022년부터 코로나가 해제되어 중국과의 무역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수출입 무역은 원활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코로나 이전 북한 돈 2천원에 판매되던 중국산 라이터가 5천원(0.3달러)까지 올라갔다고 하는데요. 라이터 가격이 비싸다 보니 농촌에서는 렌즈 밑에 종이를 놓고 햇빛을 받아 불길을 일으켜 담뱃불을 붙이는 원시적인 현상도 나오고 있다고 함경남도 주민이 전했습니다. 쌀과 물, 전기 불에 이어 담배 불 걱정까지 해야 하는 자국민들의 삶을 보면서도 인민의 지도자는 편한 잠을 자는지 안타깝습니다.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