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청취자 여러분 설 명절 잘 보내셨나요? 풍족한 설 음식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의 가두여성들은 설 음식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을 것 같은데요. 한국에선 음력 설에 온 가족이 모여 떡국에 갈비찜, 잡채, 고기국, 동태전, 호박전, 생선구이 등 잔칫날 같은 명절 음식을 먹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선 만두가 기본 설 음식이라고요?
손혜민 기자: 네, 그렇습니다. 한국에선 떡국이 설 명절에 먹는 기본 음식이라면 북한에서는 송편과 만두국이 기본 음식입니다. 찰떡과 순대, 수육, 낙지회(오징어)도 설 명절 음식으로 상에 오르지만 살림살이 형편이 여의치 못한 주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가격이 비싼 찹쌀과 고기를 살 수 없기 때문인데요. 상대적으로 송편과 만두는 원가가 적게 들어 잘사는 집이든 가난한 집이든 설 명절 음식으로 먹는 겁니다.
밀가루 500그램을 사서 술병으로 반죽을 얇게 밀고, 그 안에 송송 썬 김치에 두부를 넣고 볶은 만두 속을 넣어 만두를 빚으면 30~40개 정도의 만두는 나오죠. 송편도 같습니다. 쌀 500그램만 사도 쌀보다 가격이 싼 앉은당콩을 가마에 푹 삶아 절구에 찧어 속을 만들어 송편을 빚으면 40개 정도의 송편 떡이 나오거든요. 잘사는 집에서도 송편을 해먹는데요. 이 경우 가난한 집에서 해먹는 송편과 속이 다릅니다. 쌀보다 비싼 붉은 팥을 푹 삶아 설탕을 넣고 절구로 찧어 송편 속을 만드므로 맛이 다른 겁니다.
속이야 어떻든 북한 사람들의 설 명절 밥상에 기본 오르는 대중 음식이 송편과 만두국, 반찬은 두부와 콩나물, 인조고기 등입니다. 특히 두부와 인조고기는 가난한 집에서도 사먹을 정도로 가격이 비싸지 않아 설 명절 전이면 장마당 일대는 두부 장사와 인조고기 장사가 급증합니다. 커다란 함지에 가득 담긴 물 속에 두부를 담아 놓고 앉아 있는 상인들과 똬리처럼 둘둘 만 인조고기를 석가탑처럼 높이 쌓아놓고 앉아 고객을 부르는 상인들이 줄을 지어 진풍경을 이루죠.
이 때문에 설 명절 전이면 제분소와 물망, 콩기름 짜는 곳이 흥성입니다. 제분소란 물에 불린 쌀을 로라(롤러) 설비에 넣고 습식으로 갈아주는 영업소이고, 물망은 말 그대로 물에 불린 두부 콩을 기계에 넣고 물처럼 갈아주는 영업소입니다. 콩기름 짜는 곳은 콩으로 식용유를 짜고 나오는 대두박을 다시 설비에 넣어 편으로 길게 뽑은 인조고기 생산지를 말합니다. 식용유와 인조고기 생산지도 많지만, 개인 제분소와 물망 영업소는 동네마다 자리하고 있는데요. 이곳으로 명절 전이면 떡장사와 두부장사, 인조고기 장사꾼은 물론, 집에서 떡과 두부를 해먹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몰립니다. 따라서 해당 영업소들은 명절 특수를 맞이합니다. 문제는 제분소와 물망, 기름 짜는 영업소는 반드시 국가 전기를 공급받아야 가동할 수 있거든요. 전기를 팔고 사는 암시장이 형성되는 배경입니다.
진행자: 북한의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건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모든 주민이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하는 명절에는 좀 넉넉하게 공급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못해서 암시장까지 형성되고 있다고 하셨는데, 국가가 공급해주지 않는 전기를 어떤 식으로 몰래 사고 파는 겁니까?
손혜민 기자: 지방정부 명의 개인 제분소와 물망 영업소는 개인이 투자해 부동산 건물을 임대하고, 그곳에 기계와 설비를 차려놓은 건데요. 해당 영업소들의 수익 창출은 누가 국가 전기를 얼만큼 공급 받느냐의 차이입니다. 북한에서 전기는 전적으로 국가 소유이고, 이를 관리하는 국가 기관은 지역마다 자리한 송변전소입니다. 송변전소는 내각 전력성에서 배분 받은 전기를 산업용 전기와 주민용 전기로 나누어 공급해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의 전기 생산량이 저조하므로 주민용 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산업용 전기도 부족합니다. 그러니 개인 제분소나 물망 등 개인 영업소가 사용할 전기는 없는 거죠. 이 곳은 국가가 전기를 공급해야 하는 산업용 대상도, 주민용 대상도 아니므로 각자 재량껏 명분을 만들어 국가기관에서 전기를 사야 하는 건데요.
명분은 알아서 만듭니다. 중요한 것은 전기를 정상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기관과 연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송변전소와 가까운 지역에 자리한 개인 영업소는 매달 100달러를 주고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전기를 공급 받습니다. 반면 송변전소와 거리가 먼 개인 영업소는 군수공장과 연결된 고압선에 코걸이 방법으로 도둑 전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 방법은 단속이 심하고 만약 걸리면 영업 설비를 무단 몰수당하는 위험 변수가 따릅니다.
가장 안전한 것이 사법기관과 연계하는 건데요. 북한 전역에는 주민통제 기관인 국가보위부와 사회안전부가 촘촘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법기관 청사에는 국가에서 특별히 24시간 전기를 공급합니다. 여기서부터 틈새가 발생합니다. 국가보위부와 사회안전부에는 근무성원들의 후생을 책임진 후방부가 있는데요. 후방부는 명절마다 고기와 술, 기름, 설탕 등을 마련해 간부들에게 공급해야 합니다. 원래 국가에서 공급해야 하지만, 고위간부를 제외하고 북한의 우대물자공급제도는 마비되었거든요. 후방부 간부가 가장 빠르게 명절 물자 자금을 해결하는 방법은 개인 영업소에 전기를 암시장 가격으로 판매하는 겁니다. 우스운 일이죠. 체제 안전을 지킨다는 사법기관이 설명절을 맞으며 전기 암시장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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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그렇군요. 하지만 변전소에서 제분소 등으로 몰래 전기를 빼돌리면 국가기관이나 공장 등에 줘야 할 전기가 부족해지거나 수치에 차이가 있어 티가 날 법도 한데, 어떻게 이제까지 별 탈이 없었을까요?
손혜민 기자: 평양을 제외한 지방도시에는 공기관이든 개인 살림집이든 전기 사용량을 측정하는 전력적산계가 설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사법기관에 24시간 공급되는 국가 전기가 암시장에 판매돼도 알 수 없는 겁니다. 군수공장 전기도 암시장으로 판매되는 건 마찬가지인데요. 이 문제를 가지고 북한 당국도 주민들에게 시장 가격으로 전기를 판매할지 등 고민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017년 당국이 주민용 전기사용요금을 1kW 당 북한 돈 35원에서 500원으로 올린 것이 대표적이죠. 동시에 평양에서는 주민용 전기사용요금을 징수할 때 누진세를 적용했거든요. 200kW까지는 1kW 당 북한 돈 500원이지만, 100kW를 초과하면 1kW 당 1000원을 징수하는 겁니다.
지방에서도 지방정부가 직접 가정집마다 전력적산계를 설치해 시장가격으로 전기공급을 시도해보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전기 수급에서의 개혁적 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는데요. 사실 북한 주민들도 그것을 원하거든요. 야매가격이라도 전기를 정상적으로 공급받는 것이 좋다는 반응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자면 전력산업 부분에서 전기 생산이 정상화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를 해결하자면 계속 언급되지만 핵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가는 예산의 일부라도 경제 부분에 돌려야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북한에서 전기는 암시장 상품으로 판매되면서 힘있고 돈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상징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진행자: 정당하게 돈을 내고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전기를 공급받고 싶다는 북한 주민들 마음 이해가 갑니다. 그래야 전기 암시장도, 전기가 권력의 상징이 되는 일도 없어지겠죠. 그럼 지금 북한 주민들은 집에서 부족한 전기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손혜민 기자: 일단 명절에는 1~2시간 정도 전기를 공급하기도 합니다. 명절이 아니라도 모내기를 해야 하는 영농철에는 농촌부락에도 전기가 공급되지만, 대부분 한밤중에 전기가 공급되는 경우가 많아 주민들의 실생활에 효과적이지 않죠. 그래서 집집마다 전기를 충전하는 배터리가 있는데요. 밤에 전기 올 때 두 시간만 충전해도 이틀 조명은 해결됩니다. 특히 국가의 전기공급에는 애초에 의지하지 않고 태양광을 설치해 조명과 TV를 볼 수 있는 전기를 해결하는 주민 세대가 도시에선 보편적입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시장환율이 급등하면서 가정용 태양광 가격도 두세 배 급등해 10달러에 판매되던 태양광이 현재 30~40달러에 판매된다고 합니다.
진행자: 어떤 식으로든 다음 설명절엔 북한 주민들이 전기 부족으로 힘든 일이 없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