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김정은의 광명성절 선물 당과류 , 이미 장마당에 유통 중
진행자 :곧 김일성 생일과 함께 최대 명절로 꼽히는 김정일 생일, 광명성절이 다가오죠. 이맘때가 되면 장마당 매대 곳곳에 선물용 당과류, 사탕과자가 넘친다고 합니다. 손 기자, 그래도 명색이 지도자가 하사하는 선물인데, 장마당에 넘치도록 나오는 이유가 뭡니까?
손혜민 기자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김정일 생일 기념 선물 당과류가 식량을 해결할 대체 상품으로 이용되는 겁니다. 정주에서는 2월 초부터 선물 당과류가 장마당 매대에 나왔다고 하는데요. 식료공장에서 선물 당과류 생산이 끝나고 포장이 들어갔던 시기와 맞물린 겁니다. 공장 종업원들이 생산공정에서는 사탕과 과자를 주머니에 몇 개밖에 넣지 못해 적게 유출하는 정도지만, 포장공정에서는 최소 200g 단위로 유출할 수 있어 선물 당과류가 장마당에 유통되는 량이 늘어난 겁니다.
선물 당과류는 공기관을 통해서도 유출됩니다. 사례를 든다면, 군 식료공장에서 1kg 단위로 포장된 선물 당과류는 군에서 집계된 어린이 통계 숫자에 기초하여 각 지역 탁아소와 유치원, 소학교, 동사무소에 공급됩니다. 이 과정 중에 유출되는 것인데요.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린다면, 평안남도 은산군에서는 지난 10일부터 선물 당과류를 공급한다는 군당 위원회 지시에 따라 각 탁아소, 유치원 등에서 차량을 자체로 준비하여 식료공장에서 선물 당과류를 받아 목적지까지 운송하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각 지역 동사무소는 해당 지역에서 출생한 어린이 숫자대로, 탁아소와 유치원, 소학교에서는 재학하는 어린이 숫자만큼 당과류를 공급받습니다. 하지만 통계로 작성된 숫자 외에 당과류 봉지 수량을 얼마나 더 받느냐는 각 기관의 재량입니다. 통계 숫자를 늘리든, 당과류를 공급하는 간부와 사업하든 각 기관마다 20봉지 정도는 더 받는단 말이죠. 그것이 사업용으로 소비되는데요. 저도 북한에서 살 때 학교 교사로부터 선물 당과류 한 봉지를 받은 적 있거든요. 그렇게 받은 당과류가 장마당으로 유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잣집은 맛 없어서 , 가난한 집은 식량 없어서 내다파는 김정은 하사품
또 돌 전 아기의 부모들은 아기의 이름으로 받은 선물 당과류를 간식으로 먹으면 좋겠지만, 당장 먹을 식량이 급하므로 봉지 그대로 장마당에 넘깁니다. 가난한 살림에서는 당과류를 팔아 식량을 사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죠. 1kg 단위로 포장된 선물 당과류가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1만원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옥수수 쌀 2.5kg 정도 살 수 있는 돈이죠. 반대로 잘 사는 집에서는 선물 당과류가 맛이 없어 장마당에 넘기는 경우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장마당에 나오는 당과류의 유통 경로가 굉장히 많네요. 그런데 잘 사는 집에선 맛이 없어 내다 팔 정도로 당과류 품질이 떨어졌다는 건 과거엔 품질이나 맛이 괜찮았다는 얘기 아닌가 싶은데요. 과거와 달리 당과류 품질이 떨어진 이유가 있습니까?
손혜민 기자 :기존과 비교하면 선물 당과류 품질이 떨어졌다고 보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다른 시선으로 접근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국가 식량배급에 의존해 살았던 1990년대 이전에는 품질이 좋든 나쁘든 당과류 자체가 희소했습니다. 평양 수도 시민들에게는 세대별 식구 1인당 매달 사탕이 500g씩 공급되었지만, 지방에서는 사탕이 공급된다는 개념 조차 없었죠. 오직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에만 어린이들에게 선물 당과류가 공급되다 보니 지방 사람들은 최고지도자의 생일이 당과류를 먹어보는 날로 인식할 정도였습니다.
맛의 품질을 비교할 당과류 자체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가 붕괴되는 동시에 북한 경제구조도 무너지면서 자본주의 공간인 장마당이 등장하자 변화가 생겼습니다. 생산과 공급을 국가가 독점하고 수령의 선물로 주민을 세뇌했던 당과류 상품을 개인이 집에서 직접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무연탄 매장량이 풍부한 서부지역 중심으로 개인 집에서는 사탕과 엿, 단묵(젤리) 등 선물 당과류를 만들어 시장으로 유통했거든요.
저도 2000년대 중반부터 사탕과 과자, 빵을 만들어 전국 시장에 도매하는 장사를 해본 적 있는데요. 상품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 지 피부로 깨달았죠. 사탕이든 과자든 조금이라도 맛이 떨어지면 소비자는 귀신같이 알아내고 다시는 사지 않죠. 그러면 시장에서 밀려납니다. 따라서 개인 장사꾼들은 영양가가 높은 빠다(버터)와 계란, 사탕가루 등 최상의 자재를 사용하여 사탕과 과자 등을 만들었는데요. 품질 경쟁으로 만들어진 상품이 장마당에서 판매되니, 주민들은 자연히 김일성과 김정일의 선물로 공급되는 당과류 품질과 비교하는 겁니다.
관련 기사
[ [장마당 돋보기] 간부 아내들이 시장관리원이 된 이유Opens in new window ]
[ [장마당 돋보기] 설 대목 돈을 가장 많이 번 곳은 송변전소?Opens in new window ]
진행자 :그렇게 품질이 비교되면서 자연스럽게 선물 당과류의 질이 낮다는 걸 알게 된 거군요. 그런데 그마저도 중앙에서 공급하지 않고 전부 자력갱생으로 주민들에게 부담시키지 않았습니까?
지도자가 준 선물인데 만드는 돈과 재료는 주민이 다 바쳐 ?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 지방정부의 입장에서 설명 드린다면, 1990년대 중순 이후부터 중앙에서는 선물 당과류를 생산해야 하는 지방 식료공장에 당과류 자재를 공급하지 못했습니다. 지방정부 자체로 당과류 자재를 해결해 생산하도록 강구한 건데요. 이에 지방정부는 김일성과 김정일 생일 전이면 당과류 자재를 해결하기 위해 농촌에 거주한 주민들에게는 세대별 달걀 두 알, 콩 300g 등 농산물 위주로 거두어 들이고, 도시에 거주한 주민들에게는 현금을 세부담으로 거두어들였습니다.
그럼에도 당과류 생산의 주요 자재인 밀가루와 사탕가루는 전적으로 수입해야 하므로 외화가 있어야 하는데, 세부담으로는 부족합니다. 따라서 지방 식료공장에서는 밀가루 대신 옥수수 가루로 과자를 생산하고 사탕가루 대신 옥수수 엿으로 사탕을 생산하니 과거보다 선물 당과류 품질이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결국 선물 당과류가 장마당 상품에서도 하품으로 전락된 거죠.
진행자 :북한 주민들이 재료며 돈이며 다 바쳐서 만든 사탕과자가 어떻게 지도자가 하사하는 명절 선물이라는 건지, 주민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화가 날 법도 한데요. 주민들 돈으로 생색만 내는 선물 정치, 주민 반응도 안 좋을 것 같은데 왜 계속되는 겁니까?
손혜민 기자 :주민 세뇌를 지속하려는 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북한 주민들도 한 목소리로 선물 정치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주머니를 계속 털어 내 생산한 당과류가 어떻게 수령의 선물이 되냐는 건데요. 세뇌 수단으로 지속되고 있는 선물 정치가 나라의 경제를 무너지게 한 원인이라고 말하는 지식인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말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사실 북한의 내각 경제가 파탄되기 시작한 건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정되었던 1972년부터입니다. 이때부터 김정일은 당중앙 조직지도부에서 자신의 권력 기반을 확장하기 위해 외화벌이 기관을 만들기 시작했죠.
인민의 손발을 옭아맨 선물 정치
명분은 당 자금 해결이었습니다. 전국의 도, 시, 군 당위원회마다 5호관리소를 설치하고 비싸게 수출되는 송이버섯 채취를 군중운동으로 전개했습니다. 결국 영토의 70-80%가 산으로 둘러싸인 북한에서의 외화 자원이 전부 수직적 체계로 설치된 5호관리소를 통해 김정일이 관리하는 당 경제로 집계되었습니다. 내각 산하 금광을 비롯한 외화벌이 원천들도 당 경제로 분류된 수령 경제로 귀속되면서 내각 경제가 이원화 되다 보니 인민 경제는 뿌리째 흔들립니다.
그럼에도 김정일은 당 경제 산하 무역관리국과 은행을 개설해 외화를 축적합니다. 대표적인 게 당 39호실 산하 대성무역관리국과 대성은행입니다. 김정일의 비자금은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1977년 김일성의 생일 65돌을 맞으며 전국의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김일성의 이름으로 교복과 신발, 당과류 선물이 시작된 배경입니다. 이러한 선물 정치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수령의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논리로 관통하며 인민대중의 손발을 옭아맸습니다.
특히 선물 정치는 엘리트 권력층에게 집중되었는데요. 지난해 한국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원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김정은이 특권층의 충성을 결집하기 위해 연간 사용하는 선물 정치 자금이 18억 달러로 알려졌습니다. 반 인민성의 산물인 선물 정치가 북한 주민들을 계몽시키는 기회가 될 날도 멀지 않습니다.
진행자 :지도자가 하사하는 당과류 선물의 배경이 지도자 비자금 마련에 있었다니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안 받느니만 못한 지도자의 선물, 올해 장마당에는 또 얼마나 쏟아져 나올까요?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